이사람 이야기

김소희(35) 스타일난다 대표 '로레알그룹' - 2018.2.3.조선外

하늘나라 -2- 2018. 2. 3. 20:43


그녀가 고른 동대문 옷, K패션이 되다



[이혜운의 살롱] '스타일난다' 김소희 대표


자신이 입으려고 산 트위드 재킷
다들 예쁘다고 해 인터넷에 내놨더니 8만원에 팔렸다… 거참 재미있네

21세 여성이 만든 온라인 쇼핑몰이 직원 550명의 1조짜리 기업이 됐다

유커들이 가장 선호하는 브랜드로



日 이세탄백화점도 입주
작년에 연 일본 대형 매장
손님이 골목길 두 개 점령 그걸 보고 다들 울었죠

자체 화장품 브랜드도 대박
26세 때 한국콜마 찾아가 화장품 만들겠다고 하니
다들 황당해했죠 5일 만에 다 팔아 더 놀라

'스타일난다'는 고향 말
가끔 고객들이 항의해요… 라벨이 왜 다 다르냐고?
동대문 옷이니까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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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옷이 제일 좋았던 소녀는 자라서 K패션·뷰티 열풍의 선구자가 됐다. 기업 가치 1조원짜리 패션 뷰티 기업을 이끌지만 ‘성공’이라는 단어는 여전히 부끄럽다는 김소희 스타일난다 대표. 사업 초기 잠을 거의 자지 않았다는 그녀는 “지금도 눈을 뜨면 일 생각만 한다.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아 행복하다”고 말했다. / 정영록 사진작가, 그래픽=이철원

'그냥 남들처럼.'

처음엔 그녀도 그랬다. 인천의 한 상업고를 나와 전문대를 다녔다. 졸업도 하기 전에 취직했다. 일주일도 안 돼 사장님 그랬다. "넌 회사 일이 안 맞아." 그 길로 회사를 나왔다.

'어떤 일을 해야 하나' 고민하다 엄마와 같이 간 서울 동대문시장에서 베이지색 트위드 재킷을 하나 샀다. 사람들이 예쁘다고 했다. 혹시나 하고 옥션에 내놨다. 8만원에 팔렸다. '내가 고른 걸 남이 사주다니.' 그렇게 몇 번을 옷을 사고팔았다. 재미있었다.

어릴 때부터 옷이 좋았다. 초등학교 때부터 집에 있던 미싱으로 애완견 옷을 만들어 입혔다. 고교 시절엔 횟집을 하던 엄마 일을 도와주고 용돈 받으면, 동대문시장에 가서 3시간 넘게 옷을 고르고 놀았다. '옷집 사장'이었다.

인천 부평동 집에서 인터넷 사이트를 만들었다. 스물한 살 때 일이다. 기업 가치 1조원, 매출 약 1300억원(2016년 기준), 유커들이 선호하는 브랜드 1위. CNN이 선정한 한국 10대 브랜드 등에 꼽힌 '스타일난다'의 시작이다.

하루에도 인터넷 쇼핑몰 수십 개가 생겨나고 사라진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인터넷 쇼핑몰 거래 규모는 64조9134억원. 2015년보다 20.5% 증가했다. 스타일난다는 2004년 회사 설립 후 14년 동안 국내 1위 여성 의류 온라인 쇼핑몰 자리를 지키고 있다. 절반은 해외 매출이다.

김소희(35) 스타일난다 대표는 언론에 등장한 적이 거의 없다. 지난달 30일 서울 홍익대 근처에 있는 스타일난다 본사에서 만난 그녀는 발랄한 옆집 언니 같았다. 나팔 청바지에 흰색 블라우스, 갈색 긴 곱슬머리는 상상하던 '난다걸' 모습이기도 했다. 왜 인터뷰를 꺼리느냐는 질문에 김 대표는 의외의 답변을 했다.

"부끄러워서요. 제가 어린 나이에 사업을 시작했잖아요. 고객들하고 '언니' 이러면서 친해졌단 말이에요. 그런데 '성공 비결' 이런 거창한 인터뷰를 하면 고객들이 저를 얼마나 부담스러워하겠어요. 전 그냥 언니로 남고 싶고, 옛날 모습을 지키고 싶었어요."

동대문 옷으로 한류(韓流)를 만든 소녀

그녀가 고른 동대문 옷, K패션이 되다
스타일난다는 동대문 보세옷으로 K패션을, 자체 제작 화장품으로 K뷰티를 이끌었다. 세계적인 화장품 편집숍 '세포라', 글로벌 면세점 체인 'DFS' 등의 입점을 통해 홍콩·싱가포르·중국 등 7개 국가에 59개 매장이 있다. 특히 일본에서는 2016년 도쿄 신주쿠 이세탄백화점에 들어간 데 이어, 지난해 5월에는 하라주쿠에 대형 매장을 열며 '제3의 한류'를 이끄는 국내 대표 브랜드가 됐다.

―한류의 중심이 됐어요.

"언제부터인가 외국 분들이 해외 배송을 많이 물어보셨어요. 유학생을 통해 저희를 알았대요. 그러다 2014년인가 중국의 한 파워블로거가 저희 홍대 매장에서 옷과 화장품을 구매하는 사진을 올렸나 봐요. 그 뒤로 중국인들이 트렁크를 들고 매장에 오기 시작했어요."

―일본에 직영 매장을 낸 것도 화제였어요.

"외국에서 자라 같은 SPA 브랜드 매장을 보면 '우리 옷도 매장에 걸어 놓으면 저 정도는 될 것 같은데. 우리도 저런 큰 브랜드가 되고 싶다' 생각했어요. 지난해 5월 일본에 매장을 냈는데 손님들이 줄을 섰다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직원에게 '뻥치지 마' 했어요. 갔더니 골목길 두 개를 점령했더라고요. 다 같이 울었어요."

―당시 한국에서 보기 드물었던 '센 언니' 콘셉트가 인기 비결이라고들 해요.

"제 원칙은 '세계 트렌드에 맞는 옷을 가장 빠르게 좋은 걸로 사 와서 판다'예요. 처음 창업할 때는 이효리, 패리스 힐턴의 스타일이 유행할 때라 그런 걸 팔았던 거죠. 한국은 옷에 대해 보수적이잖아요. 그런 눈치는 덜 봤던 거 같아요. 같은 옷을 팔아도 느낌을 더 잘 표현하기도 했고요."

―동대문 옷 대신 자체 제작 100%로 할 생각은 없나요.

"모든 옷을 직접 만들면 고객 입장에서는 한 가게와 거래하는 거나 마찬가지인데, 그러면 디자인이 편향될 것 같아요. 동대문시장의 많은 가게에서 물건을 가지고 오는 것이 더 다양하고 좋은 물건을 소개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자체 제작 의류는 국내 생산을 고집한다고요.

"우리 옷을 한국 원단으로 한국에서 만드는 데 자부심이 있어요. 저희가 직접 만든다고 했는데 '메이드 인 차이나' 이렇게 쓰여 있으면 이상하잖아요."

2010년 일부 대기업보다도 앞서 중국어·일본어·영어 등 다국적 홈페이지를 만들어 역직구 시스템을 시작했죠.

"온라인 중심 회사라 더 빨랐던 거 같아요. 중국인 팬들의 요청도 있었고요."


글로벌 면세점 DFS, 화장품숍 세포라도 그녀에게 '러브콜'


―일본 이세탄백화점에는 어떻게 입점하게 됐나요.

"일본 요미우리신문에 일본 10대가 가장 좋아하는 한국 브랜드 1위에 오르자 요청이 왔어요. 저희가 하는 세포라·백화점·면세점 등 모든 유통은 러브콜이 와서 한 거예요."

―연예인들이 많이 찾는 브랜드라는 점도 이미지에 도움이 됐죠.

"저희는 협찬도 잘 안 하고 연예인 할인도 안 해줘요. 김연아씨가 매장에 왔다 가도 몰랐어요. 클라라씨가 시구할 때 입었던 쫄바지가 저희 브랜드였어요. 저희는 홍보 안 했어요. 나중에 클라라씨가 직접 방송에 나와서 말하더라고요."

나는 기본이 '장사꾼'

그녀가 고른 동대문 옷, K패션이 되다
직원들과 회의하는 김소희(오른쪽에서 둘째) 대표. 스타일난다 회의는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이뤄진다. / 김소희 제공

김 대표가 사업을 시작한 2004년만 해도 동대문시장에서 "인터넷 쇼핑몰 해요"라고 말하면, 시장 사장님들은 "그게 뭔데?"라며 되물었다. 그녀는 설명을 하기도 힘들고 해서, 그냥 "부평 지하상가에서 옷 장사 해요"라고 했다고 했다.

―사업 초반 잠을 거의 못 잤다고요.

"1인 기업이었잖아요. 오전 9시부터 전화받고, 배송도 해야 하고, 교환·환불도 해줘야 하고. 사진도 올려야 하고, 촬영도 해야 하고, 그러다 오후 8시면 동대문시장에 옷을 사러 갔어요. 손님 돈을 받고, 물건을 부치기 전까지 잠이 안 왔어요. 엄마도 고생이 많았죠. 제가 옷을 예쁘게 못 개니깐, 엄마가 일하러 가기 전에 주문받은 옷을 다 개 놓고 나가셨어요."

―스타일난다는 소위 라벨갈이(기존 라벨을 떼어내고 다른 라벨을 부착하는 것)를 안 하는 걸로 유명해요.

"그걸 왜 해요? 우리 옷 동대문 옷인 걸 다 아는데요. 가끔 외국인 고객들로부터 문의가 와요. 왜 옷의 라벨들이 다 다르냐고. 그럼 각각 다른 가게들에서 사 와서 팔기 때문이라고 말해요."

'쌍방향 소통' 시스템도 초기에 도입했어요.

"사업 초반부터 고객들과 전화 통화를 1시간씩 하면서 일을 했으니깐요. 어떤 고객은 '와이프가 옷을 너무 많이 사서 그러는데 자동 취소 좀 해주세요'라고 부탁하기도 하고, 다른 고객은 '옷 산 걸 들키면 안 되니 어디에 좀 숨겨주세요'라고 부탁하기도 해요. 가능하면 다 들어 드리려고 해요. 전 장사꾼이잖아요. 손님이 해달라는 대로 해서 하나라도 더 팔면 좋은 거죠."

2009년 김 대표는 자체 화장품 브랜드인 '3CE'를 출시했다. 립스틱을 섞어 모델에게 바른 것을 보고 고객들이 '화장품도 팔아보라'며 제안했기 때문이다. 당시 주변에서는 "안 될 것"이라고 했다. 작은 패션 기업이 화장품을 판다는 것을 상상도 못할 때였다.

―그때도 어린 나이였죠?

"26세였어요. 무작정 1등 화장품 제조 기업이라던 한국콜마를 찾아갔어요. 어린애가 와서 화장품을 만든다니깐 다들 의아해했죠. 그땐 대기업들만 화장품을 만들 때였거든요. '진짜 할 애들인가' 싶었겠죠. 그래서인지 샘플도 좀 늦게 왔고. 저희가 또 열정은 많아서 요구 사항도 많은 거예요. 립스틱 1개당 10번 넘는 수정을 한 끝에 겨우 출시했어요. 5일 만에 다 팔려 모두 놀랐죠."

―겁이 없었네요.

"겁이 많아요. 무모하게 일을 벌이는 스타일은 아니에요. 하고 싶은 걸 조금씩 사부작거리면서 했어요."

―속옷 사업은 왜 중단했나요.

"매출은 좋았는데 모델에게 속옷을 입혀야 하는 걸 못하겠더라고요. 저희 모델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게 싫었어요."

―페르소나인 모델 '난다걸'의 탄생은요.

"'스타일난다'라는 말은 고향인 인천 친구들끼리 자주 쓰던 말이었어요. 첫 모델도 고등학교 때 친구였죠. 직장 다니던 친구라 주말에 만나 놀면서 꾸며주고 사진을 찍고 그랬어요. 수고비로는 옷 주고 그랬지요(웃음). 그 모델을 손님들이 먼저 '난다걸'이라고 불러주셨어요. 지금은 정규직으로 고용된 전문 모델이 하고 있죠."

무(無)스펙으로 이룬 성공

김 대표는 단 한 번의 외부 투자 없이 이익잉여금과 신사업만으로 현재의 회사를 일궜다. 창업자 지분이 100%인 회사는 인터넷 쇼핑몰 업계에서도 드물다. 14년 전 어머니, 이모와 함께 시작한 사업은 이제 직원 550명의 어엿한 패션·화장품 기업이됐다. 어머니는 재무·배송 부사장, 이모는 경영 관리 부사장을 맡고 있다. 김 대표는 경영 총괄과 신사업 등을 진행한다.

―가장 힘들 땐 언제였나요.

"사람들의 오해와 안 좋은 시선요. 저희 기사가 나가면 안 좋은 댓글 달리는 것도 마음이 아팠고. 어린 여자가 사업을 한다고 하니 비하하는 거죠. 그런데 또 그런 기사가 나면 저희 단골 고객들이 카카오톡을 보내세요. '언니, 힘내세요'라고. 그래서 지금까지 온 것 같아요."

―인터넷 쇼핑몰을 하는 여성 대표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있는 것 같아요.

"어릴 땐 공부를 곧잘 했어요. 중학교 때 1등을 한 적도 많아요. 원래 성격이 하고 싶은 건 깊게 파고, 하기 싫은 건 죽어도 못하는 스타일이에요. 갈수록 공부에 흥미를 잃은 건 사실이에요. 사실 엄마는 어릴 때부터 제게 '꼭 네가 서울대를 갈 필요는 없다. 나중에 서울대를 다니는 사람을 부릴 수 있는 사람이 되면 된다'고 가르치셨어요. 제가 공부보단 사업에 재능이 있다는 걸 먼저 알아보신 것 같아요. 부모님은 액서서리·요식업·의류 등 다양한 사업을 하셨는데, 그때마다 용돈은 직접 일을 도우며 벌도록 시키셨어요. 외동딸이라 크게 부족함은 없었지만, 경제관념을 키우도록 하신 거죠. 지금도 일밖에 안 해요.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게 됐으니깐요."

―대표 사무실이 2층에 있네요.

"몰랐어요. 사장님 사무실은 대부분 꼭대기 층이라는 거. 직원들에게 공간을 내주고 저와 이모가 지금 같은 방을 써요. 1년 전에는 책상 하나를 같이 쓰기도 했어요(웃음)."

―경영을 하다 보면 어려운 부분이 있지 않나요.

"엄청 어렵죠. 일하다 모르는 건 막내 직원이라도 물어봐요. 그런 거 전혀 부끄럽지가 않아요. 그냥 '쉬운 말로 해'라고 해요. 저희는 보고 체계가 없어요. 사원도 저에게 바로 의견을 얘기할 수 있어요. 결제 라인이란 건 너무 오래 걸리잖아요."

―올해 매출 목표는 무엇인가요.

"그런 걸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직원들을 그런 걸로 쪼인 적도 없어요. 1년에 한 번 하는 송년파티 때도 전 단상에 올라가 '재밌게 놀자' 하고 내려와요."

―나이 어린 사장이었는데 직원들 관리가 어렵지는 않았나요.

"마음으로 대하려고 노력해요. 보통 미팅 시간이 길어질 때는 12시간씩 연달아 하고 그래요. 그럼 회의실에서 하기엔 너무 피곤하니깐 제가 '우리 집에 가서 하자'고 그래요. 사 먹이는 건 싫고 제가 직접 밥을 해서 같이 먹어요. 그런 거에서 직원들이 제 마음을 알아주는 거 같아요. 제가 외부 약속은 잘 안 잡는 편인데 직원들이 '소주 사주세요' 이러 건 단 한 번도 거절해 본 적이 없어요."

―꼭 지키는 경영 원칙은.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고 생각해요. 사실 이 말씀도 늘 어머니가 해주셨어요. 그렇게만 딱 장사를 하려고 해요 ."

―창업을 꿈꾸는 청년 세대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요.

"사업을 진행할 때 직원이 불가능이라는 답을 가져오면 '세상에 안 되는 것은 없다'고 말을 해요. 남들이 안 될 거라고 하는 말에 쉽게 포기하지 마세요. 제가 처음에 인터넷으로 옷을 팔 거라고 하니 다들 웃었어요. 누가 입어보지도 않고 옷을 사느냐고. 두려워 마세요. 자기가 가는 길이 곧 길이 됩니다."





[다다뷰티] 명동 스타일난다 3CE 핑크호텔 방문기

게시일: 2017. 4. 13.

요즘 난리난리난 핑크호텔 다녀옴
진짜 대박...ㅠ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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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일난다 6000억원대에 매각

“한국 화장품 최고” 3일 서울 마포구에 있는 스타일난다 홍대 플래그십스토어에서 방문객들이 스타일난다의 화장품 브랜드 3CE의 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로레알그룹은 중국 시장에서 인지도가 높은 스타일난다의 지분 100%를 인수해 아시아 고객을 겨냥한다는 전략을 내놨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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