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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버려야 남는다 / 조인원 - 2017.5.18.조선

하늘나라 -2- 2017. 5. 23. 23:27



사진, 버려야 남는다


[조인원의 사진산책] 



필름 쓰지 않는 디지털 시대에 스마트폰 사진 쓰임새 확장되고
외장 하드에는 수많은 사진 담겨… 그러나 저절로 추억이 되진 않아
오직 분류와 정리를 통해서만 내 삶에 의미 있는 것으로 남아


조인원 멀티미디어영상부 부장대우
조인원 멀티미디어영상부 부장대우


오래전 찍은 사진 속의 나를 보다가 여러 번 놀란다. 이렇게 촌스러웠나 싶기도 하고 언제 이런 사진을 찍었는지 기억나지 않을 때도 있다. 사람들은 사진으로 기억을 온전히 보존하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사진에 대한 기억도 흐려진다.

지금처럼 사진이 많던 때가 있었을까 싶다. 기념이 될 순간들만 필름을 아껴가며 찍던 것이 디지털시대가 되며 세세한 일상을 촬영하고 저장한다. 스마트폰은 사진의 용도를 더욱 확장했다. 맛있는 음식을 찍고 새로 산 가방을 찍는다. 메모를 찍고, 강의실 칠판을 찍고, 뒤통수에 난 뾰루지를 보기 위해서도 사진을 찍는다. 대형마트 주차장에 차 세운 자리 번호를 찍고, 작은 글씨를 확대해서 보거나, 어두운 바닥에 떨어진 볼펜을 찾을 때도 플래시를 터뜨려 사진을 찍는다. 이렇게 찍힌 수많은 사진은 자동으로 저장된다. 중요하든 아니든 분리되지 않고 대부분 보관된다.

거르지 않고 일상을 모두 기록하는 것을 '라이프로깅(life-logging)'이라고 한다. 30초마다 사진을 찍는 소형카메라를 옷에 달고 움직이는 사이 사진은 계속 촬영된다. 사진뿐 아니라 센서를 달아 심박 수, 운동량, 습관 등도 기록한다. 수개월 동안 저장된 사진과 기록들은 컴퓨터가 분석해서 사람들이 어떻게 보고 행동하며 반응하는지를 예측하는 기초자료로 활용한다. 하지만 이것은 일부 연구 참여자들의 동의하에 이뤄진 것일 뿐이고 실제로는 사생활을 침해하고 너무 많은 데이터를 저장하는 것이 문제였다. 처음에 재미 삼아 소형 카메라로 모든 하루를 촬영하던 사람들도 너무 많은 사진이 쌓여가는 것에 지쳐갔다. 사람들은 기억하고 싶은 것보다 잊고 싶은 것이 많다는 것을 라이프로깅은 알려주었다. 잊는다는 것은 기억하는 것만큼 소중하다.

[조인원의 사진산책] 사진, 버려야 남는다
/이철원 기자


디지털로 저장된 사진들은 얼마나 안전할까? 가끔 사진이 한꺼번에 사라지지 않을지 걱정된다. 필름을 쓰던 시절엔 없던 걱정이다. CD로 구운 이미지 파일 일부가 아무 짓도 안 했는데 지워지듯, 사진 파일은 언제든 사라질 수 있다. 누군가의 실수로 그동안 촬영한 사진이 모두 없어진다면 기억도 함께 사라질 것 같다. 외장 하드나 인터넷 클라우드(cloud)에 여러 개로 나눠 사진을 보관하지만 얼마나 안전할지는 의이다.

한 사진가는 몇 년 전 이사를 하다가 작업한 사진들이 담긴 500기가 외장 하드를 잃어버린 경험을 들려주었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찍은 사진과 아프리카에서 촬영한 수많은 사진이 그 안에 있었지만 몽땅 분실했다. 잡지에 마감용으로 보낸 일부 사진만 남았다. 그 일로 2년 동안 우울증에 시달렸다. 홍수로 스튜디오가 물에 잠겨 필름이 다 떠내려갔다는 누군가의 말도 떠올랐다. 그는 '평생 찍은 사진도 한순간에 날아갈 수 있구나!' 깨닫고 이후 촬영한 사진들을 책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2년 전 조선일보미술관에서 사진전을 열었던 구와바라 시세이(桑原史成)를 만난 적이 있다. 50년 넘게 남북한을 오가며 사진 작업을 해오는 이 사진가는 사진집 출간과 전시를 위해 자신의 집 서재에 천장까지 꽉 들어찬 필름과 프린트 사진들을 전부 꺼내 아내와 함께 두 달을 넘게 골랐다고 했다. 사진가들은 이렇게 책을 만들면서 자신의 사진들을 정리한다. 앨범도 개인의 사진 책이다. 하드케이스에 안전하게 보관된 외장 하드와 클라우드에 저장된 사진들이 저절로 추억을 가져다주지는 않는다. 오직 눈앞에 보이는 사진이 기억을 소환한다.

디지털시대엔 뭐든 정리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버려야 할 사진이 너무 많다. 정리되지 않은 기록들은 쓰레기로 취급되어 진짜 쓰레기와 같이 버려질 수 있다. 그래서 한꺼번에 저장된 사진들은 가끔 정리할 필요가 있다. 잘못 클릭해 캡처한 스마트폰 화면, 여러 장 찍힌 똑같은 사진들, 의미 없이 기록된 이미지들은 과감히 버리자. 버릴 것을 버려야 남은 사진들이 제대로 보인다.

사진기자들은 하루에도 수천 장의 사진을 찍지만 오직 정확한 설명이 달린 사진만 살아남는다. 분류되고 정리된 사진만 다시 사용된다.

2005년 5월의 화창한 봄날 우리 가족은 서울의 어 느 공원에 놀러 갔다. 그날 그 공원에서 사진을 전부 89장 찍었고 CD와 외장 하드에 저장해 두었다. 그중 종이로 인화된 9장만 사진 앨범에 있고, 아이스크림을 입가에 묻힌 여섯 살 아들과 양 갈래로 머리를 묶은 딸이 나란히 어깨동무한 사진 한 장만 내방 책꽂이 액자 속에 10년을 넘게 서 있다. 기록은 기억을 지배하지만 오직 정리된 기록들만 살아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