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람 이야기

최창자(71) 대구 서문시장 '주강 주단' - 2016.12.12.조선

하늘나라 -2- 2016. 12. 18. 17:14




"시장엔 큰불 나고 대통령은 탄핵되고… 엎친 데 덮친 격이지예"



[대형 화재 후 '대구 서문시장'… 44년간 장사해온 최창자씨]


"대통령직에서 물러나면 다 살도록 해주는데…
그분이 부모 자식이 있나 뭘 하려고 착복하겠습니까"

"본인의 처지가 딱한데 어떻게 우릴 위로합니까
아직도 박근혜 좋아해요… 정치인들 정말 비겁합니다"



"여길 내려오시겠다고요? 처녀 때라면 몰라도, 내사 쭈글쭈글한 얼굴로 못 내밉니다. 다른 상인들을 만나이소. 이제 됐지예?"

최창자(71)씨와의 통화는 이렇게 끝났지만, 다음 날 대구로 내려갔다. 잿더미가 된 서문시장 4지구는 철제 펜스를 빙 둘러쳐 놓았다. 매캐한 냄새가 여전히 떠돌고 있었다.

시장통에서 3500원짜리 칼국수 한 그릇 사 먹고, 피해 상인들이 모여 있는 농협 3층 사무실로 올라가 최창자씨를 만났다. 그녀는 서문시장 4지구에서 '주강 주단'이라는 상호의 가게를 해왔다. 이번 화재로 1억원쯤 피해를 봤다.

"요즘은 잠자다가 가위에 눌려요. 그 새벽에 불났다는 전화를 받았으니 심장이 얼마나 떨리고, 놀랐겠어요. 새벽 3시 반쯤이었어요. 그 시각에 무슨 일로 급한 전화를 걸겠어요. 처음에는 내 아들과 딸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 싶었어요."

최창자씨는 “잠자리에 누우면 돈이 불타는 장면이 아른거려 심장이 벌떡벌떡 뛴다”고 말했다.
최창자씨는 “잠자리에 누우면 돈이 불타는 장면이 아른거려 심장이 벌떡벌떡 뛴다”고 말했다. /최보식 기자


―누가 전화를 해준 겁니까?

"동료 상인이 '주강 아줌마, 빨리 나와 보이소'라고 연락하데요. 너무 떨려 옷도 제대로 못 챙겨 입고 택시를 타고 갔어요. 도착해 보니 시커먼 연기가 올라오고 있었어요. 가게에는 접근도 못 했지예. 소방차들이 빙 둘러 있었으니까요. 그저 불타는 걸 보면서 다들 주저앉아 펑펑 울기만 했죠. 땅바닥에 뒹구는 이도 있었고, 기절하는 사람에게 찬물을 먹이고 '정신 차리라'며 등허리를 두들겨주기도 했지요."

59시간 만에 불길이 잡혔다. 이미 679개 점포가 모두 불탄 뒤였다.

"연말 대목을 보려고 점포마다 물건을 많이 들여놨을 게 아닙니까. 그걸 다 태워 먹었으니…. 사실 나보다 딱한 사람들이 훨씬 많습니다. 자기 점포 없이 빌려서 장사하던 젊은 사람들이 많아요. 이제 물건까지 다 태웠으니 우짜겠습니까. 나야 자식을 다 키워 결혼까지 시켰으니, 앞으로 나 하나만 먹고사는 게 걱정이지요."

―가게 주인이 아니라 가게에 세 들어 장사하는 사람이 많았군요.

"가게만 세 들어 있는 게 아니라 사는 집도 임대주택이나 사글세일 겁니다. 어중간하게 대학 다니는 자녀가 있으면 정말 죽을 지경일 겁니다. 아마 이들 손에는 단돈 몇 만원의 현찰도 없을 겁니다. 정말 불쌍합니다. 그런 젊은 사람들이 우는 모습 보면 나도 따라 웁니다. 화재를 같이 겪었지만, 내가 '우리 힘내자. 설마 자식들 못 먹여 살리겠느냐'고 달랩니다."

불탄 현장을 막아 세운 철제 펜스에는 '임시 이전'이라는 공고 부착물들이 빼곡히 붙어 있었다.

"새벽 2시 10분에 불났는데 그날 아침 5시부터 점포를 알아보러 다니는 상인들도 있었어요. 나도 오래 장사해왔지만 놀랍심더. 상인에게는 점포를 마련하는 게 제일 우선이지요. 먹고살려면 장사는 해야 되니까요. 장사할 수 있게 대체 상가 문제가 얼른 해결돼야 하는데…."

―생활력이랄까 생존 본능이군요.

"아예 낙담해 집에서 드러누운 사람들도 있겠지요. 장사도 안되는데 이렇게 다 날리니, 생각할수록 아깝지요. 물건도 물건이지만 돈이 탔다는 생각을 하면…."

―돈이 탔다는 게 무슨 말입니까?

"월말에는 물품 대금을 결제해줘야 하거든요. 상인들은 보통 하루 앞당겨 은행에서 돈을 찾아둡니다. 그날(11월 29일) 돈을 찾아 가게에 놔뒀는데 홀라당 다 타버린 거죠. 나는 250만원을 찾아뒀는데 다 타버렸어요. 잠자리에 누우면 그 돈이 불타는 장면이 아른거려 심장이 벌떡벌떡 뜁니다."

―대금 결제는 계좌 이체나 인터넷 뱅킹으로 하면 될 텐데, 세금 문제 때문인가요?

"세금 때문이 아니고, 시장통에서는 늘 이렇게 해왔으니까, 말하자면 습관이지요. 대금을 현찰로 주면 받는 사람의 기분도 좋잖아요. 사업자등록증과 채권 채무 장부까지 다 태워버렸어요. 누구한테 돈을 얼마나 받고 줘야 하는지도 알 수 없게 됐어요."

서문시장 사진


―화재보험은 안 들어 있습니까?

"개별 보험을 넣은 사람들은 아마 몇 안 될 겁니다. 화재보험을 잘 안 받아줍니다. 11년 전에는 제2지구에서 큰불이 안 났습니까. 그 뒤로 가입 조건도 까다롭고. 보험이 적금식이 아니라 매년 소멸됩니다. 나도 보험을 넣어오다가 매년 소멸되니까 5년 전부터 그만뒀어요."

그녀가 서문시장에서 장사한 햇수만 44년째다. 남편과 함께 양복 원단 가게로 시작했다. 그때도 그녀는 화재를 겪었다.

"장사를 한 지 3년이 됐을 때인 1975년 큰불이 나서 홀랑 다 날렸지요. 서문시장에서 나는 두 번 화재를 겪은 것이지예. 그때는 남편이 있었고 자녀 둘이 초등학교도 안 들어간 시절이라, 젊음이 있고 용기와 희망도 있어서 '한번 더 해보겠다'고 했지요. 지금은 이렇게 나이가 들었고 혼자 맞게 됐으니…. 사실 이렇게 평생 장사할 줄 몰랐지요. 거의 매일 시장에서 살았으니까요."

―쉬는 날은 없습니까?

"한 달에 딱 이틀 첫째·셋째 일요일에 쉽니다. 상인들로서는 노는 게 오히려 부담입니다. 먹고살고 자신의 가게도 마련해야지, 자식들은 공부시켜야지요."

―장사는 잘됐습니까?

"다들 기성복을 사 입으면서 양복 원단 장사는 쉽지 않았어요. 1995년부터는 한복 주단으로 바꿨어요. IMF 때까지는 그런대로 잘됐지요. 그 뒤로 경기가 나쁘고 한복을 빌려 입으니까 장사가 어려웠지요. 그렇다고 손 놓고 집에 들어앉아 있으면 뭐합니까. 몇 푼이라도 생활비를 벌어야지요."

―그동안 돈은 좀 모았습니까?

"집 장만하고 아이들을 대학 공부시키고 결혼시켰으면 됐지, 큰돈을 못 모읍니다. 정말 알뜰하게 살았지예. 잘 먹고 잘 입지도 못했고, 남들처럼 흔한 해외여행도 못 갔어예. 십여 년 전 시장 친목계 모임으로 부부 일곱 쌍이 중국에 한 번 놀러갔습니다. 해외여행은 그게 처음이고 마지막입니다. 여고 동창생들은 한 달에 10만원씩 계(契)를 해서 유럽 여행도 갔지만 저는 한 번도 못 갔어요. 우선 먹고살아야 하는데 그럴 여가가 어디 있습니까."

―여유 있게 사는 여고 동창생들과 내심 비교됐겠군요.

"제가 학교 다닐 때는 호강스럽게 살았어요. 그 시절 대학도 나왔어요. 집에서 하라는 결혼을 했으면 달라졌겠지만…. 집안에서 반대가 심했지요. 결혼하고 보니 시어른을 모셔야지, 시누이가 일곱이지, 장사도 함께 해야지요. 하지만 내가 좋아서 한 결혼이라 원망도 못 해요. 돈과 명예는 둘째고, 나는 사람 하나 보고 택했지요. 남편은 워낙 선한 사람이었어요. 시장에서 별명이 '양반'입니다. 평생 내 속을 안 상하게 했고, 내가 잘못을 해도 고함 한번 안 질렀어요."

―저와는 반대되는 분이었군요.

"5년 전에 위암으로 돌아가셨어요. 자식들 다 결혼시키고, 여유를 좀 누려볼까 했는데 저세상으로 가셨어요. 이제 불까지 나고 남편도 곁에 없으니 정말 망연자실입니다. 장사를 더 해야 할지 말지 생각도 합니다."

―이번에 박근혜 대통령이 여기를 방문했을 때는 환영받지 못했지요? 상인들에게 위로의 말도 건네지 않고 15분 만에 떠나 더 그러했다지요?

"환영받지 못했다고 누가 그럽니까. 본인의 처지가 딱한데 어떻게 위로합니까. 우리는 그 심정 압니다. 시장 사람들이 다들 박 대통령 보겠다고 뒤늦게 알고서 몰려들었심더. 나도 그렇고, 늦게 가서 못 봤어요. 아직도 우리는 박근혜를 좋아합니다. 권영진 시장에게 '배신자'라고 욕을 얼마나 하는지 압니까. 문재인이 여기에 왔을 때는 잘도 쫓아가더니, 대통령이 왔을 때는 코빼기도 안 내밀었어요."

농협 사무실에 모여 있는 피해 상인들.
농협 사무실에 모여 있는 피해 상인들.


―권영진 대구시장은 청와대가 나오지 말라고 해서 안 나갔고, 대책본부에서 브리핑하려고 기다렸다고 하더군요.

"변명이지. 대통령이 오시는데…. 나는 정치인들이 비겁하고 수준이 가장 낮다고 봅니다. 필요할 때는 박 대통령에게 기울어지다가 이제 와서는 등을 돌리고…."

―사상 초유의 국정 농단이 드러났는데도, 여전히 박 대통령에 대한 연민(憐憫)이 있는 모양이지요.

"여기서 다 물어보이소. 젊은 사람 몇 명만 대통령 욕하지, 다들 박근혜가 잘못했다는 소리는 안 합니다. 대기업에서 돈 받은 것은 나라를 위한 거지 자기가 잘 먹고 잘 입으려고 한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최순실에게 속은 거지, 결코 돈을 착복했다고 보지는 않아요. 대통령직에서 물러나면 다 살도록 해주는데, 그분이 식구가 있나 부모 자식이 있나, 뭘 하려고 돈을 착복하겠습니까."

―주변 관리를 잘못한 것은 대통령의 책임이고, 이런 결과를 초래할 줄 몰랐다면 대통령 자질에 문제가 많은 것이지요.

"나는 박근혜가 진실하다고 믿어요. 최순실을 너무 믿고 저렇게 넘어간 거지. 과장된 TV 뉴스를 보면 열불이 나서 부숴버리고 싶을 정도였어요. 정말 속상해요. 박 대통령이 탄핵을 받은 게 너무 슬프고 걱정돼요."

―본인의 재산을 다 날렸는데 대통령을 걱정할 때입니까?

"그렇긴 해도 나랏일도 속상하지요. 엎친 데 덮친 격이지예. 피해 상인들끼리는 '박근혜가 힘이 있어야 우리를 좀 도와줄 낀데'라고 말합니다. 지금 나서서 떠드는 정치인들을 보면 저들이 정권을 잡게 되면 나라를 어디로 끌고 갈지 걱정이 됩니다."

대통령 탄핵 가결 뒤 촛불 민심의 승리를 자축(自祝)하지만, 한쪽 구석에서는 이런 상실감을 가진 국민이 있고 이들 또한 위로받을 자격이 있을 것이다.

―점포는 불탔지만 매일 시장에 나오는 모양이군요.

"답답해서 집에 있을 수가 있습니까. 화재를 겪고 난 뒤로 밥을 먹어도 모래알 씹는 것 같고, 하루에 컵라면 하나로 때우기도 했거든요. 고마운 점은 각지에서 온정이 많이 와요. 어제는 포항 죽도시장 상인 대표들이 힘내라면서 과메기를 갖고 오셨어요. 오랜만에 정말 잘 먹었어예. 오늘 속상한 말만 했는데 제 얘기가 신문에 그대로 나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