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람 이야기

한형수(74) 서울시립대 명예교수 '삼국지 인물론'-2018.1.16.조선

하늘나라 -2- 2018. 1. 16. 17:03



"중학생 때 빠진 삼국지, 칠순 넘어서도 놓지 못해"


'삼국지 인물론' 낸 한형수 교수

2500쪽 시리즈 5권 중 첫 권 출간, 등장인물 44명 정밀 분석해 엮어
연구모임 만들고 1300여회 강의


국내 필자가 쓴 총 2500쪽 분량 '삼국지(三國志) 인물론' 시리즈 5권이 올해 말까지 출간된다. 최근 첫 권인 '삼국지 군웅할거 인물론'(홍문관)이 나왔다. 저자는 한형수(74) 서울시립대 명예교수다. 고려대에서 박사학위 받은 그는 노인복지와 사회정책을 연구해 온 사회학자다. 고희(古稀)를 넘긴 나이에 왜 '삼국지'에 빠져 있는 걸까?

"60년 전 까까머리 중학생 때 도서관에서 '삼국지'를 처음 만났지요. 그날 이후 여러 밤을 하얗게 새우며 책을 놓지 못했습니다."

도서관 벤치에 앉아 관우의 단기천리(單騎千里·주군에게 돌아가기 위해 적토마를 타고 천리길을 한걸음처럼 달렸다는 이야기) 대목을 읽을 때 바람이 불어 대나무 숲이 흔들렸다고 한다. "순간 '역사는 흐른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어요. 충의(忠義)의 끓는 피와 냉정한 삶의 교훈이 모두 그 책에 담겨 있습니다."

한형수 교수는 “‘삼국지’ 인물의 여러 모습은 인간 본성이 변하지 않는 한 4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했다.
한형수 교수는 “‘삼국지’ 인물의 여러 모습은 인간 본성이 변하지 않는 한 4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했다. /장련성 객원기자


그는 1992년 '삼국지를 사랑하는 교수들의 모임'을 만들고 '삼국지' 연구에 본격 뛰어들었다. 어렸을 때 서당에서 익힌 한문과 대학에서 배운 철학 지식을 바탕으로 공부했지만 중년의 나이에 중국사 개론서부터 읽는 일은 쉽지 않았다. 정으로 돌을 깨듯 진수(陳壽)의 정사(正史) '삼국지'와 배송지(裴松之)의 주석, 이종오의 '후흑론(厚黑論)'과 카를 융의 심리학 서적까지 꼼꼼히 돌파하며 120종의 책을 섭렵했다.

청두·우한·한중 등 중국의 '삼국지' 현장도 20여 회 답사했다. 그는 2009년 퇴직 무렵 일반인 대상 '삼국지' 강의를 시작해 1300회 넘게 이어오고 있다. "일본은 전국적인 규모의 '삼국지학회'가 있는데, 우리는 역사학·문학을 모두 합해도 연구자가 손에 꼽을 정도여서 아쉬워요."

'삼국지 인물론' 시리즈는 '삼국지'의 주요 등장인물 44명을 뽑아 정밀 분석한 책이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리더십을 지닌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에, 한 교수는 "유비(劉備)"라고 답했다. "유비는 오랫동안 무능한 인물로 알려졌습니다. 만약 그가 누구 밑에서 실무자로 일했다면 분명 무능하다는 말을 들었겠지요. 하지만 지도자라는 위치에서 그를 보면 완전히 달라집니다."

유비는 인재를 제대로 알아보는 감식(鑑識) 능력, 한번 그 밑에 들어온 사람이 전폭적 신뢰를 보내며 배신하지 않게 하는 포용력을 갖추고 있었다는 것이다. 조조와 손권도 주목할 만한 장점을 지닌 리더였다. "조조는 정책을 수행하는 전문성을, 손권은 다른 세력들 사이에서 등거리 외교를 펼치는 균형 감각을 보여줬지요."

의외의 인물 분석도 눈에 띈다. "제갈량은 과장돼 있는데, 그의 실제 모습은 전략가라기보다는 상벌(賞罰)에 엄격한 정치가였습니다." 소설 속 활약상에 비해 직급이 낮았던 조운(조자룡)은 큰 군대를 이끈 지휘관이 아니라 일종의 기동타격대장이었던 걸로 봐야 한다고 했다.

한 교수는 현대인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안타까운 인물 유형으로 여포를 꼽았다. "뛰어난 능력만 믿고 눈앞의 이익을 좇아 신의(信義) 없이 좌충우돌했지요. 그것이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한다는 사실을 '삼국지'는 말해 주고 있습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삼국지'는 가치가 있을까. 그의 대답은 이랬다.

"'삼국지'는 세상이 분열하는 격동기를 꿰뚫어 보는 성찰과 그 속에서 명멸하는 다양한 인간 군상(群像)을 보여줍니다. 인간의 의지와 계책이 역사의 흐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도 알 수 있지요. 아무리 인공지능(AI)이 발달한다 해도 인간 본성은 쉽게 변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