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람 이야기

노성훈(64) 연세암병원장 - 2018.1.27. 조선 外

하늘나라 -2- 2018. 1. 28. 18:31


닥터 몬스터



[박돈규 기자의 2사만루] 노성훈 연세암병원장


위암환자 10000명을 수술했다
생존율 99.5%
암 덩어리에게 그는 저승사자다

2014년 후두암 판정을 받았다
名醫가 졸지에 암환자가 되다니…
왜 나지?
아침마다 방사선 치료를 받으면서
평소처럼 수술했다, 난 외과의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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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로 위암 수술 1만회를 돌파한 노성훈 연세암병원장이 수술실에 서 있다. 자신도 후두암과 싸우며 올린 대기록이다. 외과의사의 한계를 넘어 ‘몬스터(괴물)’라 불리는 노 원장은 “제가 수술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하는 의사에겐 수술실이 열려 있다”며 “해외 의사들을 위해 유튜브에도 공개한다”고 했다. 왼쪽 작은 사진에는 그가 칼 대신 수술 도구로 쓰는 전기소작기가 보인다. /오종찬 기자

전문가가 되려면 1만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하루 3시간씩 적립해도 10년 걸린다. 노성훈(64) 연세암병원장은 지난해 11월 세계 최초로 위암 수술 1만회 고지를 밟았다. 30년 동안 날마다 환자 한 명을 꼬박꼬박 수술해야 닿을 수 있는 숫자다. 위암 덩어리에겐 이 외과의사가 저승사자인 셈이다.

암은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후두암이 2014년 노성훈 원장을 덮쳤다. 세계위암학회장, 대한암학회 이사장을 지낸 명의(名醫)는 졸지에 암 환자가 됐다. "조직검사 후 전신마취에서 깨어나 암 확진 소식을 듣는데 머릿속이 하얘졌다"고 그는 술회했다. '왜 나지?' 하는 원망과 우울감이 밀려왔다. 정체성은 둘로 쪼개졌다. 병원에서 그는 의사이기도 하고 환자이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아침마다 방사선 치료를 받으면서도 평소처럼 일주일에 15회쯤 수술실에 들어갔다. "지방에서 올라와 내 얼굴만 바라보는 환자들을 마다할 수 없었다"고 했다. '위암 수술 1만회'는 그렇게 암과 투병하며 쌓은 대기록이다.

보건복지부가 최근 발표한 국가암등록통계 분석 결과를 보면 위암의 기세는 좀처럼 꺾이지 않았다. 2015년 기준 암 발생자 21만4701명 중 위암이 13.6%(2만9207명)로 가장 많았다. 대장암, 갑상샘암, 폐암이 뒤를 이었다. 남성 암 발생자로 좁히면 위암이 17.2%로 더 꼿꼿한 1위였다(여성은 갑상샘암이 19.4%로 1위).

최근 서울 신촌 연세암병원에서 만난 노 원장은 확률을 믿지 않는 사람 같았다. "암 환자들은 '저는 몇 기입니까? 완치 가능성은 얼마나 되나요?' 묻는데 쓸데없는 질문"이라며 그는 덧붙였다. "위암 4기 생존율이 15%라고 해서 비관할 필요 없고, 1기 완치율이 95%여도 낙관할 건 아녜요. 내(환자)가 어느 쪽에 있느냐가 훨씬 더 중요합니다. 4기라도 15%에 들면 살아남고, 1기라도 5%에 속하면 사망할 테니까요. 상황을 긍정적으로 보고 의사와 치료에 협력하면 좋은 결과가 나오는 분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인기가 폭락한 '내외산소'

1980년대 말까지 의대생들이 몰렸던 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과를 싸잡아 '내외산소'라 불렀다. 인기란 덧없는 것이다. 30년 전에는 내외산소가 다 찬 다음에야 성형외과·피부과로 건너갔는데 이젠 거꾸로다.

―외과 경쟁률은 요즘 어떤가요.

"미달이죠. 전국적으로 외과 전공의가 모자랍니다. 모집 인원을 해마다 줄여도 그래요. 30년 전에는 저희 병원도 2대1 경쟁을 뚫어야 했는데 최근엔 필요한 전공의의 70~75%를 채우는 수준입니다."

―이 세태, 어떻게 보시는지요.

"시대가 변했고 가치관이 달라진 탓이겠지요. 외과 전문의가 된다 해도 개업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됩니다. 마취과도 있어야 하고 입원실도 필요한데 의료 수가(酬價)는 너무 낮아 운영난을 겪을 수밖에 없어요."

―외과는 생명과 직결되는 과목입니다. 전공의가 부족하고 덜 우수한 자원이 온다면 위험한 것 아닌가요?

"국민 건강에 결코 바람직하지 않지요. 의대생들이 사명감보다는 시간과 돈을 우선순위에 놓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요즘 가장 사랑받는 의사는 '외과의사' 이국종 교수입니다.

"헬리콥터 타고 다니면서 응급 환자 구조하고 수술하고 정말 어려운 일을 하시죠. 외상외과만 그런 게 아니라 모든 외과의사들이 힘겨운 여건에서 치료하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어느 쪽이 조명을 받으면 그늘지는 쪽도 생겨요. 흉부외과나 산부인과도 지망자가 적은데 근본적인 대책이 없다면 결국 의료 품질 저하로 이어질 겁니다."

―위암 수술 1만회 축하드립니다.

"기록을 목표로 달려오진 않았어요. 암환자가 대형 병원 네댓 곳으로 몰리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원래 오후 4시 이후에는 수술에 들어가지 않는데, 마취과 선생들과 간호사분들이 기꺼이 도와주셨어요. 마취 안 하면 환자는 온종일 굶다가 수술 연기 통보를 받는 꼴이거든요. 주말에도 '응급' 신청하고 수술했어요. 환자가 퇴원할 때마다 뿌듯했습니다. 병원에서 일하느라 시간을 함께하지 못한 제 아내와 아들딸에겐 많이 미안한 마음이고요."

외과 안에서 위암은 '꽃길'이 아니라 '흙길'인 것 같습니다. 왜 하필 위암을 파고들었나요?

"1987년에 전임강사가 돼 수술을 시작했어요. 80년대 말까지는 외과의사가 위암, 유방암, 갑상샘암 수술을 다 했습니다. 90년대 들어 주임교수님이 '앞으로 갑상샘 쪽 수요가 커질 것'이라며 전문 과목으로 내분비외과를 권하셨는데 제가 고집을 부렸어요. 위암은 당시 가장 흔한 암이었고 걸리면 죽는 병이었습니다. 검진도 활성화되기 전이라 암이 꽤 진행돼서야 병원을 찾았지요. 항암제는 독성은 심한데 효력이 별로 없었습니다. 위암에는 수술이 유일한 방법이었죠. 외과의사를 한다면 가장 궁지에 몰린 환자들을 도와야 한다는 사명감 같은 게 저한테 있었습니다."

위암 수술 혁신의 아이콘

그는 교과서에 갇히지 않고 실전적으로 수술법을 개선했다. 1995년 대한외과학회 때 전기소작기(燒灼器·칼 대신 쓰는 수술 도구로 출혈을 줄일 수 있다)로 위암 수술하는 장면을 촬영해 발표하자 "도대체 무슨 짓을 하는 거냐"며 난리가 났다. 노 원장은 "지금은 그걸 안 쓰는 사람이 없다"며 빙그레 웃었다.

―외과의사에겐 칼과 가위가 대표적인 수술 도구였을 텐데요.

"제 전기소작기가 그 클래식을 건드린 거죠. '전기소작기가 혈관에 닿아 터지면 어떡하냐' '천공이 생기면 복막염이 될 수도 있다' 같은 우려와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그때 저는 5년 넘게 수술할 때 전기소작기를 썼기 때문에 효과를 확신하고 있었고요."

―남보다 너무 앞서가셨군요.

"외과는 서열이 뚜렷한데 선배들의 관행을 제가 너무 많이 깼어요. 위암 4기면 복막(腹膜)에 전이됩니다. 교과서에는 '4기암은 수술하면 안 된다'고 적혀 있었는데, 저는 일본 연수 다녀와서 1993년부터 도전해 또 야단을 맞았지요. 외국 여러 병원에선 수술을 하던 땝니다. 이론적으로도 암세포를 최소화하고 항암제를 써야 효과적이잖아요. 망치로 바위를 깨기는 어렵지만 작은 돌은 부수기 쉬운 것처럼요."

―콧줄과 심지도 없앴다고요?

"수술 후 환자가 가장 불편해하는 게 콧줄과 심지였습니다. 환자 동의를 받아 콧줄과 심지를 넣은 그룹과 그러지 않은 그룹을 비교했더니 효과 차이가 없었어요. 그래서 빼버리고 해외 학회에 발표했지요. 환자의 고통을 줄이려면 크고 작은 도전이 필요합니다."

―수술이 늘 성공적이진 않았겠지요.

"물론입니다. 수술하고 합병증이 생겨 돌아가신 분들도 있어요. 수술 환자 1만명 중에 사망률이 0.5~0.6%쯤 될 거예요. 제가 맡은 환자 50~60분이 수술 때문에 별세하신 겁니다. 대개는 수술로 인한 합병증으로 수술 후 한 달 안에 그렇게 돌아가셨어요. 오랫동안 고생한 분도 있고요."

―자책도 했겠군요.

"마음이 무척 괴로웠습니다. 그 가족들은 어떻겠어요. '의사가 잘못해 저렇게 됐다'는 소리도 들었습니다. 이겨내려고 했어요. 그런 시행착오가 있었기에 불행한 일이 생기지 않도록 더 공부하고 자세를 가다듬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학계에서 '몬스터(monster·괴물)'라 불린다지요?

"위암 수술 1만회가 도저히 믿기 힘든 숫자인가 봅니다. 외과의사의 한계를 넘었다는 뜻이겠지요. 일본은 도쿄 국립암센터가 제일 큰 병원인데 위암 수술은 연간 500건에 불과해요. 지역에 있는 병원들에서 고루 하기 때문입니다. 저희만 기형적으로 서울에 집중돼 있죠. 90년대까지는 일본이 위암 치료에서 가장 앞서 있었는데 2000년대 이후엔 일본 의사들이 저희 병원에 배우러 옵니다."

2008년 어느 날 오전에 수술을 마치고 오후 수술을 기다리며 휴식 중이다. 하루에 4회, 연간 600회 수술한 적도 있다. 그렇게 30년을 달려 위암 수술 1만회를 돌파했다. /노성훈 제공
"암 환자 되니 모든 게 달리 보여"

노 원장은 2014년 말 후두암 2기 진단을 받았다. 연세암병원이 문을 연 지 6개월 만이었다. 목에서 쇳소리가 났다. 그는 "몇 년 전부터 목소리가 나빠졌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정기검진을 안 받다 병을 키운 것"이라고 했다.

―지금은 괜찮으신지요.

"암세포가 사라진 지 3년 지났지만 완치라고 볼 순 없지요. 매사를 긍정적으로 보려 합니다."

―암 확진 판정을 받고 나서 어떤 기분이셨나요?

"분노와 후회, 자책이 밀려왔습니다. 나 자신에 대한 분노, 몸을 돌보지 못했다는 후회, 그리고 가족과 좋은 시간을 보내지 못했다는 자책이지요. '왜 이런 시험을 나한테 주시나'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했고요. 환자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습니다."

―어떻게 변했나요?

"한때는 교만에 빠져 있었어요. 대단한 능력을 가진 줄 착각한 거죠. 그러다 2004년에 안식년 맞아 미국 스토니브룩대학에 갔는데 의사들이 환자들 대하는 모습을 보고 놀란 적이 있어요.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환자와 가족의 얘기를 들어주는 걸 보면서 '난 참 엉터리였구나' 깨달았습니다. '환자 입장에서 진료하자' 다짐했어요. 아마 그래도 부족했을 겁니다. 그런데 후두암 환자가 되고 보니 더 절실해지고 저를 돌아보게 되더군요. 환자들이 재발에 대해 걱정하면 '이 양반아, 나도 암 환자야. 너무 걱정 마시게'라는 말을 속으로 삼켰습니다."

―목숨이 걸린 환자를 수술하는 건 큰 스트레스일 텐데요.

"경험이 쌓이면서 스트레스도 두려움도 줄었고 15년쯤 지나니 일상이 됐어요. 수술은 저 혼자 하는 게 아닙니다. 팀 플레이예요. 선장인 제가 불안해하면 의사들과 간호사들은 더 흔들립니다. 수술할 때 늘 음악을 틀어놓고 전공의들이나 간호사들과 일상적인 대화를 하곤 합니다."

'위암 수술 1만회의 법칙'이랄까, 전문가에게만 보이는 게 있습니까?

"지식이 부족할 땐 암 덩어리 다 들어내면 완치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재발합니다. 수술에 따른 합병증으로 환자들도 고생하죠. 과거에 잘했다고 생각한 일이 지금 보면 시행착오였던 게 적지 않아요. 요즘도 '이게 맞나 틀리나?' 의심의 순간이 옵니다. 가령 저는 국소적인 복막전이암은 적극적으로 치료해 암을 제거하고 항암 치료를 일찍 하면 환자에게 도움이 된다고 믿지만 반대하는 의사들도 있습니다. 식도와 위가 만나는 접합부에서 진행된 암이 있는 경우에도 논란이 있고요. 가장 발전된 치료법에 경험과 노하우를 보태야 나름의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국내에도 인공지능(AI) 의사를 들여온 병원이 있는데요.

"저는 지금도 개복 수술을 합니다. 진행성 위암의 경우는 개복 수술이 표준이에요. 그리고 모든 수술은 로봇이나 복강경이 아니라 결국 사람이 합니다. 같은 위암 2기를 수술했는데 치료 성적이 달라지는 까닭은 의사가 다르기 때문이에요."

노 원장은 내년 2월 정년 퇴임한다. 의대생들에겐 "엎치락뒤치락하는 인기에 연연하지 말고 본인이 하고 싶은 전공을 선택하라"며 "환자의 관점으로 보고, 계속 도전하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암 환자들에게 들려줄 말을 청했다. "진행 암이고 말기라 해도 희망의 끈을 놓지 마세요. 치료는 덧셈이 아녜요. 1 더하기 1이 2보다 커질 수 있어요. 어떤 환자에겐 의사도 믿기 힘든 기적이 일어납니다."





[MY Dream JOBS TV #54] - 위암 전문 외과 의사 / 노성훈 / 연세암병원장 (Doctor / Professor)

게시일: 2013. 8. 14.

http://www.kaicube.org

현재 연세대 의대 노성훈 교수님은 위암 분야에서 독보적인 지위를 가지고 있으며 일본에서도 찾아와 한 수 가르침을 부탁할 만큼 위암 분야의 대가이시다. 환자가 수술 시 받는 신체적 스트레스를 최소화하기 위해 원칙에 충실하면서도 환자의 완치를 위한 노성훈 교수님의 위암 수술법은 가히 국내 최고라고 할 수 있다.





10대 암, 베스트닥터는 누구? - 2018.2.3.동아 外  http://blog.daum.net/soonchang4623/2107

어김없이 베스트닥터에 선정됐다. 최고령인 이수정 영남대병원 교수(65)는 영남대 부총장 겸 영남대병원 의료원장을 지냈으며 유방암학회 회장을 지냈다. 노성훈 교수(64)는 연세암병원장을 맡고 있다. 소의영 아주대병원 교수(64)도 아주대 의무부총장을 지낸 바 있다. 이들 60대 베스트닥터는 총 18명. 전체 베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