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저지주에 있는 아마존 공장에서 한 직원이 로봇이 잘 작동하는지 지켜보고 있다. 로봇을 다루는 기술이 중요해지는 시대다. 뉴욕타임스 홈페이지 캡처
조은아 국제부 기자
지난달 12일(현지 시간) 월마트가 본사 직원을 중심으로 약 1000명을 해고한다는 월스트리트 보도가 나오자 여론이 냉랭해졌다. ‘배신감을 느낀다’는 말까지 나왔다. 바로 전날만 해도 월마트는 트럼프 행정부의 법인세 인하 발표가 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최저임금과 보너스를 올리겠다”고 떵떵거렸기 때문이다. 월마트는 겉으론 절약한 세금을 직원을 위해 베푸는 듯하면서 속으론 조용히 직원을 내보내고 있었던 셈이다. 미국에서 150만 명을 고용하는 ‘유통 공룡’ 월마트의 행보는 기업계 전반으로 확산될 수 있다.
130년 전통의 백화점 ‘시어스’와 할인 소매점 체인 ‘K마트’를 소유한 ‘시어스 홀딩스’도 지난달 말 정규직 직원 220명에게 해고를 통보했다. 이 기업은 지난해 정규직 직원 400명을 자르고 매장 250곳의 문을 닫기도 했다.
미국 유통업계 구조조정 진원지는 아마존으로 꼽힌다. 전자상거래로 유통 비용과 인건비를 획기적으로 감축해 성장하며 유통업의 성공 공식을 다시 쓴 혁신의 아이콘이다. 미국뿐 아니라 세계의 내로라하는 유통기업들은 아마존을 따라잡기 위해 온라인 거래를 활성화해 인건비를 감축하고 있다. 아마존은 지난달 22일 미국 시애틀에서 계산대 없는 무인점포 ‘아마존 고’를 열어 미국 전역의 점원 90만 명의 일자리를 위협하고 있다.
세계 경제 리더들도 지난달 말 세계경제포럼(WEF) 연례총회(다보스포럼)에서 기술 발달로 사라질 일자리를 걱정했다. WEF의 ‘기술 재교육 혁명: 일자리의 미래(Towards a Reskilling Revolution: A Future of Jobs for All)’ 보고서에 따르면 4차 산업혁명 여파로 2026년까지 미국에서만 일자리 140만 개가 사라질 예정이다. 가장 일자리가 많이 줄어들 분야로는 공장 운영자, 기술자를 포함하는 생산직과 단순 사무·행정직이었다.
WEF와 보스턴컨설팅그룹이 이 보고서에서 분석한 업종별 전환 경로를 참고해볼 만하다. 단순 생산직은 유지·보수직이나 건설 관련 기술을 배우면 기존 직업과의 시너지가 좋았다. 사무 및 행정직은 재무 또는 영업 기술을 익히면 적합했다. 공장 조립라인에서 일하는 근로자는 건설 분야로, 품질 감독관이나 시험관은 ‘품질제어 애널리스트’로 전환할 만하다. 사진 인화 관련 직종에서 일했다면 ‘컴퓨터 이용자 컨설턴트’로 활동할 수 있다.
세계 각국 기업들은 이미 발 빠르게 인재를 개조하고 있다. 미국 이동통신사 AT&T는 2013년부터 직원 28만 명에게 클라우드 컴퓨팅과 데이터 과학 분야를 배우도록 장려하고 학습한 결과를 업무 평가에 반영하고 있다. 캐나다 제조·수출협회는 중소기업 10여 곳을 묶어 14개월마다 업계의 신기술을 공유하도록 한다. 싱가포르의 성인 재교육 기관(IAL)은 성인들이 재교육받을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전문강사를 양성하고 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100세 인생 시대’ 인재 양성 정책을 세우기 위해 영입한 린다 그래턴 영국 런던비즈니스스쿨 교수는 지난해 기자와 인터뷰에서 “내가 한국의 교육부 장관이라면 ‘평생 교육’을 정책의 중심으로 삼겠다”고 말했다.
아직 사회로 진입도 하지 못한 청년들의 일자리 문제 못지않게, 고령화 사회의 재교육 문제도 중요해지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선 청년 일자리에 비해 기성세대의 재교육 얘기는 듣기 힘들다. 세계가 ‘재교육 혁명’을 외치는데 혹시 한국 기업과 정부는 이 중요한 흐름 하나를 놓치고 있는 것 아닌지 점검해볼 일이다.
조은아 국제부 기자 ach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