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지금

천국이 싫단다, 지옥에서 살고 싶단다 - 김수진 外

하늘나라 -2- 2018. 3. 15. 12:58




천국이 싫단다, 지옥에서 살고 싶단다




화가 치밀어 목구멍에 불이 붙는 줄 알았다.
 
수많은 탈북자들의 증언이 한낱 말장난으로 들린단 말인가?


김수진(자유기고가)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어느 날 인사동에서 지인들과 함께 교수, 박사이며 문학평론가라는 긴 명칭을 가진 40대의 한 여인을 만난 적이 있다. 서로 얘기를 나누는 과정에 내가 탈북민이라는 것을 알게 된 그녀는 북한에 대해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다. 한국 사람들은 TV 속에서 보는 것보다 탈북민의 체험담을 직접 듣는 것을 더 실감 있어 한다. 자기들이 모르는 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묻고 또 묻는 사람들도 많다. 사람들은 함께 아파하며 “북한에서 고생했다, 오길 잘했다”고 두 손을 맞잡고 반가워한다.
 
그런데 이 여자는 듣는 내내 표정이 없다. 싸늘한 얼굴빛으로 드문드문 응대하는 말들에 뼈가 있어 보였다. 말을 자기 기분에 따라 표현하는 것은 실례다. 서로 상대방의 감정에 따라 흘러야 교감이 이루어진다. 여자의 눈빛에 따라 내말이 자연히 식어지고 있었다. 대신 그녀가 북한에 대해서 역설하기 시작했다. 북한의 주체사상에 대해서 북한사람만큼이나 잘 알고 있었다.


주체사상이란 자기 운명의 주인은 자기 자신이고 자기 운명을 개척하는 힘도 자기 자신에게 있다는 사상이다.” 이렇게 당당하게 역설하고 나서 북한처럼 골고루 잘사는 세상이 자기가 원하는 세상이고, 북한에 가서 살고 싶은 것이 소원이라고 말했다. 나는 당혹스럽기도 하고 갑자기 어리벙벙해져서 ‘흐흐흐’ 하고 어처구니없는 웃음을 던져버리고 말았다.


북한사람들은 아무 미련 없는 주체사상에 쉰내가 나서 달아나 오고, 이 여자는 그 쉰내를 맞고 싶다니 참 어처구니없는 노릇이었다. 너무 편한 세상에서, 배가 너무 불러서 아주 환장을 한 것 같았다. 대한민국에 이런 사람도 있구나를 처음으로 느낀 날이었다. 대번에 욱하는 감정이 살아 올랐지만 오히려 천연스레 웃으며 말했다.


취미가 남다르네요. 천국보다 지옥이 더 좋으시다구요? 정 소원이라면 북한에 가서 살아보소. 세상 어디나 다 갈 수 있는 이 자유로운 대한민국에서 떠난다고 해서 누가 말릴 사람도 없을 텐데… 가서 북한 정치를 실컷 받아보며 한번 살아보소.”
화가 날 때 두드러지는 북한 사투리가 자연적으로 튀어나왔다.
그러자 그녀는 약간 난감해하면서도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

내가 북한으로 간다면 한국에서는 나를 역적이라 할 텐데, 나는 역적이란 딱지가 붙는 게 싫어서 못가요.”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더욱이 웃기는 것은 북한을 동경하는 말을 할 때마다 여자의 얼굴과 말투가 너무나 진지한 것이었다. 나도 진지하게 한술 더 떠서 말했다.


새벽 5시에 종을 치면 일어날 수 있어요? 북한에선 새벽 5시에 부역 나가야 되요. 5시에 나가서 7시 반에 들어와요. 그리고 또 9시면 종이 울려요. 낮 부역에 나가야 되요. 나가서 하는 일은 공장건설, 도로건설, 농촌지원 이런 일들이에요. 주로 삽으로 땅을 파고 바위를 정으로 쫓고 돌을 등에 지고 날라야 되요. 주로 여자들이 해요. 북한에는 여기처럼 흔한 기계와 트럭 같은 게 없어요. 다 사람의 힘으로 해야 되요. 어떤 날에는 한밤중에도 불려나가서 일할 때가 있어요. 한밤중에 당(黨)에서 검열 온다고 무작정 끌어내요. 그렇다고 해서 배급 주거나 월급 주거나 밥 한 끼 먹여주는 일도 없어요. 먹고 입고 하는 것은 다 자기가 해결하면서 부역에 나가야 되요.


오후 3시가 되면 집으로 돌려보내요. 그때부터는 장마당에서 장사해서 하루 끼니를 벌어야 해요. 그렇게 할 자신 있어요? 대학교수도 예외가 아니에요. 교수를 한다고 해서 배급이 있는 줄 알아요? 쥐꼬리만 한 월급으로 월에 쌀 1kg 사면 다행이에요. 대학교수여서 부역에 못 나가면 돈으로라도 면제를 해야 되요. 그뿐만 아니라 국가건설지원에 달마다 돈을 내야 되요. 안내면 인민반 비판무대에 서고 동사무소에 끌려 나가야 해요. 반항하면 반역죄로 정치범수용소에 가야 해요.”
좀 더 구체적으로 북한실상에 대해 애기를 해주었다.


나를 이 자리로 불러낸 친구도 맞불을 놓았다. 그 친구의 부모님들은 평양사람들이었는데 집, 땅을 다 빼앗기고 한국으로 들어온 사람들이었다. 부모님이 돌아가셨는데 죽을 때까지 그 한이 쌓여있었다고 한다. 그녀는 대답을 못한다. 그러면서도 북한에 가서 살고 싶다는 그 말만은 포기하지 않고 강력한 어조로 자기의 신조를 굽히지 않았다.
 
나는 한국에 와서 북한에 동조하고 지지하는 사람들은 봤지만, 북한에 가서 살고 싶다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요즘 세상에 못나게 유명한 재미동포 아줌마라고 불리는 신은미를 방불케 하는 여인이었다. 신은미도 북한에서 대접을 받을지언정 북한에 가서 살겠다는 말을 내뱉는걸 들은 적이 없다. 이런 별난 사람을 보니 너무 화가 치밀어 목구멍에 불이 붙는 줄 알았다. 풍선을 너무 불면 터져나간다. 배가 너무 부르고 걱정이 없어서 걱정을 만들고 싶어서 환장을 한다는 소리가 아닌가.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 대한민국에 한 사람만 있는 게 아니었다. 그 후에 서울대학교에서 만나 본 한 교수는 우리 탈북자들과의 만남에서 “북한인민들이 그렇게 산다는 것은 처음 듣는 소리다, 그게 이치에 맞는 소리냐”고 오히려 무색케 했다. 또 어떤 한국 사람은 북한의 정치와 한국의 정치를 섞어야만 우리 정치가 바로 선다고 말한다. 수많은 탈북자들의 증언이 그들에게는 한낱 말장난으로 들린단 말인가. 국제적으로 떠드는 북한 인권이 이들에게는 아직 오리무중이고 오히려 독재가 좋아서 신이 나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과연 놀랍다.


대한민국 같은 천국이 싫고 북한 같은 지옥에서 살고 싶다니, 앞날에 놓인 조국 통일이 걱정스럽고 우리 조국의 미래가 걱정된다.





출처:   원문보기  조갑제닷컴





'천국이 싫단다. 지옥에 가서 살고 싶단다.'

게시일: 2018. 3.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