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람 이야기

정석모(32) 나주 새암수산 주인‘무태장어’-2019.1.30.중앙外

하늘나라 -2- 2019. 1. 31. 23:09




한때 천연기념물 ‘무태장어’       양식…“자식 키우는 게 이럴까”
 
전라남도 나주에서 장어 양식장을 운영하는 정석모씨가 출하를 앞둔 무태장어를 들어 보이고 있다. [사진 이마트]

전라남도 나주에서 장어 양식장을 운영하는 정석모씨가 출하를 앞둔 무태장어를 들어 보이고 있다. [사진 이마트]



          

경력 7년 청년 어부 정석모씨
제주 천지연에서만 살던 어종
빛·온도·습도 예민해 늘 살펴야
양식장서 24시간 대기조 생활

짧고 두꺼워 씹는 맛 … 고소·담백
대형마트에 설날 선물로 등장




 지난 23일 전라남도 나주에 있는 새암수산. 두꺼운 양식장 철문을 열자 어두컴컴한 내부에서 뜨거운 습기가 몰려나왔다. 입구 근처 수조 안에 플래시를 비추니 흑갈색 반점이 있는 장어 수십 마리가 불빛을 피해 어둠 속으로 숨는다. 이 양식장에선 무태장어 30여만 마리가 자라고 있다. 
 
양식장 주인인 정석모(32)씨는“장어는 주인의 발소리를 먹으며 자란다”고 말했다. 그만큼 손이 많이 간다는 말이다. 정씨는 “장어 중에서도 무태장어는 특히 예민하다”고 혀를 내둘렀다. 빛과 온도, 습도에 민감해 양식장 내부는 연중 내내 섭씨 30도를 유지하면서 외부 빛을 차단해야 한다. 예민한 놈들 때문에 정씨는 7년째 양식장 한편에 딸린 작은 방에서 365일, 24시간 대기조 생활을 하고 있다. 피곤한 삶이지만 그래도 그는 “장어를 키우면서 자식(은 없지만) 키우는 재미가 무엇인지 알겠더라”고 말했다.   
 
정석모씨는 전라남도 나주에서 7년째 무태장어 양식을 하고 있다. 그는 양식장에 딸린 작은 방에서 무태장어와 365일, 24시간 동고동락하고 있다. [사진 이마트]

정석모씨는 전라남도 나주에서 7년째 무태장어 양식을 하고 있다. 그는 양식장에 딸린 작은 방에서 무태장어와 365일, 24시간 동고동락하고 있다. [사진 이마트]

 
정씨는 양식장에서 태어났다. 34년 동안 장어를 키운 아버지 정흥기(60)씨 양식장은 유년 시절의 놀이터였다. 장어 양식은 자연스럽게 몸에 뱄다. 성인이 된 후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 입사하면서 잠시 떠나기도 했지만, 언젠가는 돌아올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 7년 전 양식장이 힘에 부친다는 아버지의 전화 한 통에 그는 망설임 없이 돌아와 가업을 이어받았다. 
 
무태장어는 맛이 좋아 중국에서 ‘화만(花鰻ㆍ뱀장어의 꽃)’이라고 불린다. 정씨는 “대부분의 소비자가 즐겨 먹는 자포니카종은 길고 얇은 데 반해 무태장어는 짧고 두꺼운 편”이라며 “살이 두꺼워서 씹는 맛이 있고, 고소하고 담백하다”고 했다.  
 
그동안 무태장어는 쉽게 맛볼 수 있는 어종이 아니었다. 제주도 천지연에서만 서식했고 1978년 천연기념물 제258호로 지정됐다. 그러다 무태장어 치어가 해외에서 수입되고, 남해안 일부 지역에도 서식하는 것이 확인되면서 2009년 지정 해제됐다.  
 
천연기념물 지정에서 해제 이후에도 대중화는 더뎠다. 양식이 까다로워 시장에 물량을 내놓을 만큼 대량 생산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전국에서 무태장어 양식에 성공한 양식장은 10여 곳에 불과하다. 무태장어는 다른 장어 종보다 수질의 영향을 더 받는다. 물을 가둬놓고 양식하는 기존 지수식 방식의 경우 수질 관리가 어려워 무태장어의 집단 폐사가 잦았다. 위험 부담이 큰 만큼 도전자가 나오지 않았다.    
 
양식장에 돌아온 정씨는 과감하게  순환 여과식 시스템을 도입해 무태장어 키우기에 나섰다. 순환 여과식은 장어를 키우는 수조보다 두 배가량 더 큰 수질 관리 수조를 만들어 놓고, 지속해서 깨끗한 물과 액체산소를 투입하는 방식이다. 시설비가 많이 들지만 깨끗한 물이 계속 공급되면서 장어의 스트레스를 낮춰 생존율을 높인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관리에 사람 손이 많이 간다. 정씨는 “모터가 돌아가면서 액체 산소를 투입하는데 물속에 있는 기계라 고장이 잦다”며 “한밤중에 모터가 멈춰 폐사 직전의 장어를 건져보기도 했다. 어느 날 새벽엔 모터는 돌아가는데 산소 공급 필터가 물속에서 부러져 수조에서 장어를 옮기느라 난리가 났다”고 했다. 새벽 6시와 저녁 6시 하루 두 번 사료를 주고, 1시간마다 수조와 모터를 점검하면서 청소하는 게 정씨의 일과다. 장어를 크기별로 분류하는 작업도 거르지 않는다. 그는 “큰 장어는 작은 장어를 물어뜯고 서로 싸우다 죽는다”며 “양식장에선 예상할 수 없는 온갖 사고가 수시로 발생한다”고 말했다.
 

 
전라남도 나주에 있는 무태장어 양식장 내부. 빛을 싫어하는 장어의 습성때문에 외부 빛을 차단하고 섭씨 30도 정도의 온도를 유지하고 있다. [사진 이마트]

전라남도 나주에 있는 무태장어 양식장 내부. 빛을 싫어하는 장어의 습성때문에 외부 빛을 차단하고 섭씨 30도 정도의 온도를 유지하고 있다. [사진 이마트]

 
장어는 연어와는 반대로 깨끗한 민물에서 살다가 먼바다로 이동해 알을 낳는다. 자연 상태에서 번식 모습을 인간이 관찰할 수 없는 이유다. 이 때문에 장어 양식은 치어(새끼 물고기)를 잡아다가 기르는 형태가 유지되고 있다. 이러다 보니 무분별한 치어 남획과 환경 변화로 장어 출하량은 급감하고 가격이 가파르게 올랐다. 실제로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수산업관측센터에 따르면 국내 장어 출하량(500g 이상 1마리 기준)은 2017년 4214t에서 지난해 1942t으로 줄었으며, 같은 기간 가격은 2만 6508원에서 2만 9409원으로 올랐다. 성냥개비보다 작은 장어 치어 한 마리가 7000원을 넘던 때도 있었다. 요즘도 장어 치어 1kg의 가격은 2000만원을 호가한다. 1300kg에 달하는 아반떼 한 대 값을 훌쩍 뛰어넘는다. 이 때문에 국내에선 장어의 60~90%를 수입해 양식하고 있다.  
 
정씨는 “국내에서 유통되던 자포니카나 비콜라종의 치어 가격이 1kg에 4000만원을 넘기도 했다”며 “필리핀에서 많이 잡히는 무태장어 치어 가격은 기존 유통되는 장어 종의 10분의 1 가격이다. 저렴한 가격에 더 많은 소비자가 장어를 맛볼 수 있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전라남도 나주의 양식장에서 길러지는 무태장어. 흙갈색 반점으로 뒤덮여 있는 것이 특징이다. [사진 이마트]

전라남도 나주의 양식장에서 길러지는 무태장어. 흙갈색 반점으로 뒤덮여 있는 것이 특징이다. [사진 이마트]

          
무태장어는 식탁 위 데뷔 준비를 끝냈다. 정씨와 같은 어부의 노력으로 무태장어 치어의 생존력이 높아지면서 대량 생산이 가능해져서다. 실제로 국립수산물품질관리원에 따르면 무태장어 치어의 국내 반입 물량은 지난해 1만 2369kg으로 2016년(6877kg)보다 80%가량 늘었다. 치어를 들여와 키우는 양식장이 늘었다는 방증이다.
 
국내 유통업체는 발 빠르게 무태장어 물량 확보에 나섰다. 이마트는 2019년 설을 앞두고 무태장어 선물세트를 내놨다. 나주와 해남 등지에 있는 주요 무태장어 양식장을 찾아 계약을 맺고, 2000세트 한정 수량 상품을 준비했다. 이마트의 김승태 수산 바이어는 “기존 양식 장어 물량이 치어 어획 어려움으로 급감하고 있어 맛과 상품성이 좋은 신품종의 대중화를 꾀하고 있다”고 했다.  
 
한편 제주도 서귀포시 등지에선 특화 상품으로 무태장어를 선택해 집중 지원을 하고 있다. 전국적으로 양식장도 점차 늘어나고 있어 향후 무태장어 시장은 더 커질 전망이다.   
 
곽재민ㆍ백희연 기자 jmkwak@joongang.co.kr




천지연 - 무태장어

게시일: 2013. 9. 26.

천지연 무태장어

천지연에는 국내에서는 보기 힘든 무태장어가 산다.
무태장어는 몸이 원통형으로 길고, 꼬리는 옆으로 납작하며 미세한 비늘이 피부 속에 묻혀있다. 대형어종으로 사람 키만 하고 길이가 2미터까지 자라서 물속을 누비는 자태가 마치 용과 같다. 천지연의 무태장어가 특별한 것은 열대성 어종인 탓에 한반도가 무태장어 분포의 북쪽 한계선이다. 국내에서는 탐진강, 섬진강, 영덕오십천 등의 한천에서 발견된다는 보고가 있지만 실제로 확인된 곳은 천지연 한군데뿐이다. 2008년 문화재청이 공식적으로 확인했으며 천연기념물 제27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