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지금

박원순 사망에 얽힌 진실 / 오미선 <펌>外

하늘나라 -2- 2020. 7. 13. 11:13

오미선 9시간

 

 

 

《박원순 사망에 얽힌 진실을 밝힌다!!》-펌-

 

 

2020년 7월 8일 오후 박시장 비서 A가 박원순 시장을 성추행 혐의로 고소장을 경찰서에 접수! 같은 날 경찰은 고소인을 밤늦도록 수사!

ㅡ2020년 7월 9일 새벽 청와대로부터 자신이 미투 사건으로 고소되었다는 사실을 전해들은 박원순은 그날의 일정ㅡ

국회의원들과의 모임과, 지역균형발전대책회의 등-을 모두 취소하고 아침 10시 43분 경 등산 차림으로 가회동 관저를 나선다.

2020년 5시 17분 박 시장 딸 박다인으로부터 경찰 112로 걸려온 실종신고는 서울을 뒤집어 놓기에 충분하였다. 아버지가 10시 43분 경 집을 나서며 “ 내 전화로 연락이 안되면 바로 경찰에 신고해라”고 한 말은 자신이 누군가로부터 협박을 받고 집을 나가며 여차하면 신고를 당부한 말로 들렸다.

간간히 아버지와 통화하며 걱정을 하던 딸은 4시부터 5시가 넘도록 통화가 되지 않자 바로 경찰에 신고를 한 것이었다.

신고를 받은 경찰은 CCTV를 검색하여 10시 53분 와룡공원 근처에서 걷고있는 박시장을 포착하고, 대책회의를 열고 5시 30분 경찰 기동대와 소방대원 770여 명을 동원하여 와룡공원 (길이*폭 100*200미터 )을 수색하였다.

저녁 6시경 박시장의 시신을 발견하였고 현장 감식을 하기 위해 감식반이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6시 45분 이미 카톡 등을 통해 와룡공원에서 박시장 변사체 발견됐다는 소식이 퍼지고 있었다.

감식이 끝나고 어두워질 무렵 시신을 실은 구급차는 근처 서울대 병원 응급실로 들어갔고 담당의사가 사망했음을 확인하였다.

9시경 인터넷 상에는 박원순 숨진 채 응급실 도착, 부검지휘 대기 중, 언론 엠바고, 대통령 결재 대기 중이라는 글이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이글은 서울대 병원 응급실에 근무하는 의사가 전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9시 22분에는 경찰, 서울대병원 영안실 예약이라는 글도 올라왔다.

이로 미루어 볼 때 박원순 사체는 6시 이전에 와룡공원에서 발견되었고 8시에서 9시 사이에 서울대학병원 응급실에 도착해 부검 대기 중이었음을 알 수 있다 ㆍ


그런데
언론을 통해 보도된 바로는 770명이 넘는 경찰 병력이 밤새 시신을 찾다가 다음날 0시 01분 숙정문 근처 성곽길 옆 5-6미터 들어간 숲속 나무에 넥타이로 목을 맨 채 숨져있는 박원순처럼 보이는 사람을 소방수색견이 발견했다고 한다.

칠흙같이 캄캄한 밤에 인적 드문 깊은 숲속에서 시신을 찾아낸 것도 용하지만 언론에서는 어떤 기자도 박시장의 시신을 확인한 사람이 없다.

7월 10일 새벽 2시 서울경찰청 형사과장 최익수의 수사결과 발표에 따르면 박시장의 시신은 7월 10일 0시 01분 북악산 숙정문 근처 성곽길 근처 숲속에서 소방대 수색견에 의해 발견되어 감식 중이라고 하였고 박시장 본인과 가족의 명예를 생각하여 상세한 현장 상황이나 사인은 발표하지 않겠다고 하였고,
현장도 공개하지 않겠다고 하였으므로 지금까지 어떤 기자도 사체를 확인한 사람은 없다.

경찰도 발견 현장에서 가방과 약간의 돈, 물통, 안경, 휴대폰과 본인 명함으로 박시장임을 확인하였다고 한다. 시신으로 박시장을 확인할 수 있었냐는 기자의 질문에 최 과장은 말을 더듬으며 분명히 말하지 못하였다.

처음에 최익수 과장은 박 시장이 공관을 나와 와룡공원까지 보도로 이동하였다고 발표하였으나 부하직원의 귀뜸을 듣고는 바로 택시로 이동한 뒤 와룡공원에서 내려 숲속으로 걸어 들어갔다고 정정하였다.

캄캄한 밤에 얼굴이 훼손된 시신이 박시장이었는지는 아직도 확인되지 않고 있다.

감식이 언제 끝났는지 폴리스 라인이 설치되었는지 알려진바 없으나 그의 시신은 시신발견장소에서 도로까지 흰 천에 쌓여져 경찰대원에 의해 운반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도로에 대기하고 있던 구급차는 놀랍게도 소방서 구급차가 아니라 라는 사설업체 스타렉스 차량으로, 차량번호 5637 구급차였고 여자 운전자가 운전하였다.

그러나
막상 3시 20분 경 서울대 응급센터로 들어선 차량은 남자 운전수가 운전하는 71바 9623 차량이었고,
그 차량 뒷문으로부터 흰 천에 싸여 푸른 밴드로 묶인 시신을 빼내 응급실로 들어가는 장면이 포착되었다.

시신 발견부터 응급실 도착까지 3시간 20분 가량 걸린 이유는 감식과 잔존 유류품을 확인하느라 지체되었다고 보도되었다.

(YTN https://www.youtube.com/watch?v=EzrgdhBbDEE)

왜 같은 사건에서 시신 발견시각과 발견장소와 운반 차량이 2개씩 존재해야 하는지 주목해야 한다. 만일 처음 알려진 6시 와룡공원에서 발견된 것이 맞는 것이라면 두 가지 의문이 든다.

우선,
왜 정부는 6시에 와룡공원에서 발견된 박원순의 시신을 6시간이 지난 시각에 더 깊은 산속인 숙정문 근처에서 발견되었다고 거짓말을 해야 했는가?

언론에 알리기 전에 준비해 놓아야 할 것들이 있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박시장의 시신에 총상이나 자상 등 자살로 보기 어려운 흔적이 남아 이를 처리해야할 필요가 있었을까? 두번째 의문은 어떻게 이런 눈속임이 가능하였을까 하는 것이다.



우선
이런 조작이 가해졌다는 사실만으로도 박 시장은 자살한 것이 아니라 살해된 뒤 자살로 위장되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이런 가정을 한다면,
이 6시간은 위조 유서를 만들어 놓기에 충분한 시간으로 보인다. 또한 살해한 흔적을 감출 시간도 필요했을 것이다.

만일 숙정문 근처에서 발견된 시신이 가짜였다면,
가짜 시신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라도 6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사건 당일, 와룡공원과 서울대 병원으로부터 기자들의 시선을 돌려놓기 위해서인지 경찰은 북악 스카이웨이에서 긴급 발표가 있다며 기자들을 불러놓고서 허탕을 치게 만들었다.

그 사이에 박 원순 사체를 응급실에서 영안실로 옮긴다고 의사들을 속이고 응급실에 있던 박시장의 시신을 명성특수 71바 9623에 옮겨 실은 후 와룡공원과 서울대 영안실 사이 모처 다른 곳에 숨어 대기하게 하였다.

숙정문에서 발견되었다는 가짜 시신은 와룡공원 앞길에 대기 중인 명성특수 스타렉스 5637 번에 실려 서울대병원으로 가는 척하다가 다른 곳으로 가 버리고 무전으로 연락을 받은 9623번이 대기하던 곳에서 출발하여 다시 서울대 응급실로 들어간 것이었다.

이 6시간 동안 박원순 사체에 남아있는 살해의 흔적을 지워버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정상적인 변사체 처리 방식이라면 경찰 수사대의 사체 감식 후, 국과수에 넘겨 사체 부검을 요청했어야 함에도 경찰은 이 과정을 생략하고 바로 영안실로 시신을 옮긴 것으로 보인다.

실제 박시장의 사인 무엇이었는지는 확인된 바가 없다는 점도 살해 의혹을 불러 일으킨다.

성추행범이 자살을 하였다면, 구체적인 사인이 무엇인지 책임있는 기관의 검시를 통해 발표되어야 함에도 경찰이나 국과수는 침묵하고 있다.

국민의 알 권리를 무시한 권력기관의 횡포로 볼 수밖에 없고 이런 점도 살해 의혹을 더 가중시키고 있다.



경찰 발표에도 의심스러운 곳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박시장이 마지막으로 CCTV로 확인된 것이 아침 10시 53분 와룡공원 근처였다면서 왜 오후 4시 20분 경 거기서부터 직선거리로 1.5킬로나 떨어진 북한산 골프장 근처에서 핸드폰 신호가 끊어진 것인가? 5시간 30분 동안 박시장이 그 근처를 배회하다가 도로를 따라 또 산길을 따라 북악산 쪽으로 올라가 숙정문 근처에서 목을 매었다면, 그 사이에 CCTV에 찍혔을 터인데 경찰은 그 영상은 왜 공개하지 않는가?


좌파 인물의 죽음은 공통적으로 사인을 밝히지 않고, (심지어 노회찬 처럼 신원 확인도 하지 않은 경우도 있다.)

 

 

 

 

 

 

 

박원순 시장 서울대병원으로 이송..."빈소 마련" / YTN

youtu.be/EzrgdhBbDEE

YTN NEWS

 

[앵커]

실종 신고 7시간 만에 숨진 채 발견된 박원순 서울시장이 서울대병원으로 조금 전 이송됐습니다.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는 박 시장의 빈소가 마련돼, 서울시 관계자들이 나와 있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현장에 나가 있는 취재기자 연결합니다.

손효정 기자! 박 시장이 이송될 서울대병원에 빈소가 마련됐다고요?

 

[기자]

네, 오늘 서울 북악산 숙정문 근처에서 숨진 채 발견된 박 시장이 조금 전 서울대병원에 도착해 응급실로 들어갔습니다.

병원 관계자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2호실에 이미 박 시장의 빈소가 마련돼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미 빈소에 서울시 관계자와 서울시 의원 등이 다수 도착해 있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병원은 아직 유족 측과 연락이 닿지 않고 있다고 말했는데요.

경찰과 병원은 유족의 뜻에 따라 박 시장의 병원 이송이 결정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박 시장은 아직 발견된 현장에 있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경찰은 박 시장을 검시하고, 현장에 미처 발견하지 못한 박 시장의 유류품이 있는지 일대를 수색하고 있는데요.

이 때문에 박 시장이 병원으로 옮겨지는 데 시간이 지체되고 있습니다.

박 시장의 병원 이송이 결정되면, 먼저 서울대병원 응급실에서 의사가 공식적으로 박 시장에 대해 사망 진단을 내릴 것으로 보입니다.

병원 측은 그 뒤 박 시장 시신을 빈소로 옮길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유족의 뜻에 따라 빈소가 꾸려진 뒤, 조문의 시기와 방법이 결정될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까지 서울대병원 응급실 앞에서 YTN 손효정[sonhj0715@ytn.co.kr]입니다.

 

 

 

박원순 전 비서 고소장 접수 20200709 한경 外 http://cafe.daum.net/bondong1920/N5R9/3617

 

 

 

 

응천스님 7시간

 

< 박원순 시장 자살 >

삼청각(三淸閣) 인근 아래에 위치한 숙정문( 肅靖門) 돌담 밑에서 시신이 발견 됐습니다.

 

북한산에 위치한 삼청각 숙정문에 관한 역사적 이야기를 살펴 보겠습니다.

...

1.숙정문 (肅靖門)은 서울 성곽 4대문중 하나입니다. 원래는 북대문. 또는 北淸門이라 했는데 인조 이후에 숙정문이라 부르게 되었다 합니다.

 

남대문. 동대문. 서대문. 북대문.즉 북대문이 숙정문입니다.

 

태조 이성계때 음양오행설에 따라 지어진 북대문이 숙정문으로 이름이 바뀌게된 동기는

 

숙정문, 즉 북대문을 열어 놓으면
숙정문이 陰의 기운이라 조선 여성들이 바람이 나고 남. 녀간에 풍기가 문란해지니 문을 폐쇄하라고 신하가
이성계에게 건의하여 그후부터 약 600년간 숙정문은 세인으로 부터
멀어지게 됩니다.

 

실제로 북한산 북쪽에서 내려오는 계곡에 위치한 숙정문 일대에서 남녀간
밀애를 즐기면 액땜을 한다하여 그곳은 은밀한 남녀간의 情事를 나누던 곳이라
남녀간의 性문제를 엄히 다스리려 했던 장소이기도 합니다

 

그곳에서 性문제로 박원순이 자살 합니다. 박원순이 이 역사적 사실을 알고 자살 장소로 숙정문을 선택했는지 알길이 없습니다.

 

특히 병조호란시에 중국에 조선처녀 유부녀등 50만명이 성노리개 인질 포로로 중국에 끌려갑니다.

 

이 조선 처녀들이 중국에서 탈출 病死 귀국문제.사생아 출생이 사회문제가 되자 북한산 줄기에 흐르는 물 홍제천 연신내 물로 여성 성기를 세척하면 다시
처녀로 인정한다는 인조의 王命을 발표합니다.

 

중국에서 고향으로 귀국한 여성을 환향녀(還鄕女)라 불리었는데 이 발음이 화냥녀로 불리게 되고 자식은 포로로 끌려간 화냥녀 (還鄕女)의 자식이라 하여 胡虜(호란)때 포로로 잡혀간 처녀가 낳은 자식이라 하여 멸시 대상으로 胡虜(호로세끼)라 부르게 됩니다.

 

숙정(肅靖)이란 뜻은 엄히 다스려 편안하게 하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병조호란시 1636년에 조선 처녀들의 性은 무자비하게 중국에
짓밟혀서 조선여인의 성에 관한 정숙한 이미지가 상실되어 그후에 숙정문으로
개명하면서 국가의 기강을 바로잡고 남녀간의 풍기문란도 금지하기 위해 북대문에서 숙정문으로 개명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2.삼청각( 三淸閣) 삼청각은 삼청동에서 성북동으로 넘어가는 숙정문위에 있는 옛날엔 요정입니다 .
(약 6천평)

 

서울에 4대 요정

 

1.오진암 (종로3가)
2.현재의 길상사 자리에 있던 대원각
3.그리고 청운각
4.삼청각이 한때 요정정치의 상징 4대 요정입니다

 

박정희. 김종필. 이후락. 정일권. 차지철 등 실세 정치가 들이 이용했던 요정입니다.

 

성균관대 뒷산 옥류정. 중앙고 후문. 감사원 윗길 와룡공원 위에 자리잡은 삼청각은 경치가 매우좋아 성북동. 동대문이 한눈에 보이고 북악 스카이 웨이등에서 보면 서울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이곳은 인조 반정時 논공행상에 불만을 가진 이괄이 난을 일으킬때 그리고 68년 김신조 일당이 청와대를 습격 할때의
루트입니다.

 

조선시대에는 성균관 유생들이 스트레스를 풀기위해 이용했던 북한산 등반코스입니다

 

삼청각 요정은 그당시 국회에서도 큰 문제가 되었던 오빠의 손에 죽은 정인숙 사건이 발생했던 요정이기도 합니다.

 

정인숙이 낳은 자식이 박정희 자식이냐 총리인 정일권의 자식이냐가 아직도
오리무중입니다.

 

서로가 동서인 그 시절의 요정 정치의 단면을 보여줍니다.

 

북한산 삼청동 반대편 성북동에 위치한 대원각(지금의 길상사)은 약7천평으로 포철 신화 박태준 총리의 단골술집 입니다.

 

길상사는 김영한(女) 이라는 대원각 술집 주인이 법정스님에게 기부하여 길상사로 바뀌었는데 원래는 남로당 당수로 사형당한 박헌영 집이었습니다.

 

어떻게 김영한 이름으로 넘어갔는지 불 분명합니다.

 

박원순이 性문제로 歷史的인 성문제 시비가 있는 陰地인 숙정문. 삼청각 인근에서 자살한 것이 아이러니입니다.

 

< 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