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좀 떴다’는 유튜브 스타 3인의 간단 프로필이다. 이들의 나이에서 드러나듯 인터넷 방송은 더 이상 20~30대 전유물이 아니다. 최근 1인 방송 시장에서는 ‘줌머니(아주머니+할머니)’들의 활약이 유난히 두드러진다.
줌머니들의 천연덕스러운 성공기는 기존의 것과 확실히 다르다. 구성진 사투리(“저번에 한 번 발라가꼬야, 깜짝 놀래가꼬야잉 싹 닦아 놓고 다시 해부렀어요. 눈탱이 밤탱이가 됐드라니까”)부터 걸쭉한 욕설(“개성이 다 뒈X다. X놈의 새끼야”)까지, 신선하면서도 친근하다. 방송을 본 젊은이들은 “우리 엄마, 할머니 같아요” “너무 귀여우신 거 아닌가요” 등의 댓글로 환호한다.
◆“젊은 친구들과 대화 더 나누게 돼”=중앙일보가 인터뷰한 세 명의 ‘스타’ 중 구독자 1위인 ‘크리에이터’(유튜브에서 방송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는 박근미(54)씨와 아들 정선호(29)씨다. 모자(母子)의 방송을 40만 명이 넘게 본다. 취미 활동으로 1인 방송을 해 오던 아들이 어머니를 끌어들였다. 정씨는 학업(성균관대 화학과 박사과정)과 1인 방송을 병행하다 어머니와 보내는 시간이 줄어들자 ‘일도 하면서 엄마와 시간을 보내는 방법’을 고민했다.
소소한 일상 소개, 구독자 40만 넘어
“방송할 때마다 활력 얻고 행복 느껴”
최고령 크리에이터 71세 박막례씨
뷰티, 파스타 먹기, 카약 타기 도전
“실물 보러 왔다”며 지방서도 찾아와
그렇게 시작한 시리즈가 ‘엄마 몰카(몰래카메라)’ 시리즈다. 지난해 7월 유튜브에 올라온 첫 몰카 영상을 보면 아들 정씨가 분홍색 머리로 염색을 하고 나타나자 어머니 박씨는 “이게 그지 삼발이 머리지, 사람 머리야?”라고 소리를 지르며 ‘등짝 스매싱’을 날린다. 정씨는 “욕설이 담겨 있어 영상을 공개할 생각은 못하고 그냥 어머니께 영상을 보여 드렸는데 너무 재밌어 하면서 먼저 ‘유튜브에 올려보자’고 하셨다”고 말했다.
이후 엄마와 아들은 몰카로 서로 골려 주거나 고민을 나누는 소소한 일상을 유튜브에 공유했다. 함께 춤을 배우는 영상도 올렸다. 음식점을 운영하고, 보험설계사로 일하며 아들 둘을 키운 박씨에게도 신선한 경험이었다. 박씨는 “영상으로 보이는 나도 몰랐던 내 모습이 신기했다. 방송을 할 때마다 새로운 활력을 얻고 행복을 느낀다”고 말했다. 연예인 부럽지 않게 길거리에서 알아보는 사람도 많이 생겼다. 그는 “젊은 친구들이 길에서 나를 보면 ‘어머니, 저도 욕 좀 해주세요’라고 한다.(웃음) 페이스북에서도 아들 또래의 청년들과 친구를 맺고 댓글도 달아 주며 더 많이 소통하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71세 할머니의 무한도전=‘최고령’ 크리에이터는 박막례(71) 할머니다. 박 할머니의 전공은 주로 ‘뷰티’다. 그의 방송에는 ‘42년째 식당을 운영하며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화장을 한’ 할머니의 내공이 담겨 있다. 귀에 척척 감기는 전라도 사투리는 덤이다.
박 할머니의 1인 방송은 두 달 전 손녀 김유라(28)씨의 제안으로 시작됐다. 병원에서 “치매를 조심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박 할머니가 가족들에게 이 말을 전하자 손녀 김씨는 ‘치매 예방’ 명목으로 할머니를 카메라 앞에 서게 했다. “처음엔 유튜브의 ‘유’자도 뭔지 몰랐시야. 그란디 지금은 내가 애들한테 그래요, ‘고스톱보다 유튜브가 훨씬 재밌다’고.”
‘71세 박막례 할머니의 무한도전, 인생은 아름다워!’ 박 할머니의 채널 소개 첫 문장이다. 요즘 할머니는 화장뿐 아니라 난생처음 파스타 먹기, 카약 타기 등 칠십 평생 해보지 못했던 것들을 하나 하나 방송을 통해 도전하고 있다. 가장 최근에는 ‘세계여행’이라는 꿈도 생겼다. 자신의 방송에서 할머니는 손녀 김씨에게 이렇게 말한다. “처녀 때는 현모양처로 살고 싶었는디 나는 머슴같이롱 살았어. (중략) 뒤도 안 보고 옆도 안 보고, 내가 앞만 보고 꿈도 없이 살았는디 칠십이 넘어가지고 이제 꿈이 생겼나 보다. 꿈을 이뤄줄 것은 내 무릎이야. 내 갈비허고.”
용인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박 할머니는 얼마 전 인스타그램도 배웠다. “요즘 애들이 나처럼 나이 먹은 사람을 사람답게 쳐줘요? 그런데 이제 ‘할머니 실물 보러 왔다’면서 지방에서도 막 찾아와.” 손녀 김씨는 “‘할머니의 행복’이 방송의 궁극적인 목적인 만큼 할머니가 지금처럼 저랑 자꾸 새로운 걸 해보면서 행복해하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쌍둥이 엄마 TV’=“둥둥이 친구들 안녕! 쌍둥이 엄마 TV의 쌍둥이 엄마예요.” 지난해 8월부터 유튜브 방송 ‘쌍둥이 엄마 TV’를 시작한 홍삼인(55)씨는 최근 자신의 팬들에게 ‘둥둥이’라는 애칭을 붙여 줬다. ‘쿡방’(요리 방송)으로 처음 문을 열었던 홍씨의 방송은 이제 ‘우리 둥둥이들이 좋아할 만한 것’으로 대폭 확대됐다. 젊은이들이 좋아한다는 떡볶이 브랜드를 먹어 보고 남편과 함께 요즘 유행하는 ‘상어가족 댄스’를 추기도 했다. 뽑기방에서 방송을 하다 인형 뽑는 재미에 푹 빠지기도 했다.
홍씨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당했을 무렵에는 “어른들이 올바르게 걸어가야 할 길을 못 가서 젊은 세대들에게 미안하다”며 사과 방송을 했다. 홍씨는 “내 방송을 보는 모든 친구에게 ‘엄마’ 같은 존재이고 싶다. 방송을 하면서 30대 초반 새댁으로 돌아간 듯 삶에 활력이 생겼다”고 말했다.
‘쿡방’ 쌍둥이 엄마 55세 홍삼인씨
초기엔 NG 연발, 지금은 대본 없이
“30대 초반 새댁으로 돌아간 기분”
구성진 사투리, 걸쭉한 욕설 인기
젊은 세대들에게 신선한 느낌 줘
2030 “우리 엄마·할머니 같다” 환호
세 사람의 공통점은 그들에게 1인 방송의 세계를 알려준 효자·효녀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박씨는 “평소엔 그냥 지나쳤을 일상을 방송으로 남기니 그게 추억이고 또 행복이더라. 이런 행복을 알려준 아들 선호에게는 늘 고마운 마음뿐이다”고 전했다. 자녀나 손주가 전수한 1인 방송으로 그들은 더 많은 아들·딸들과 교감하고 있다.
배국남 대중문화평론가는 “1인 미디어에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중·노년층이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방송에 드러내는 것이 젊은 세대들에게 친근하면서도 신선하게 다가온다. 세대 간 접점이 확대되는 모양새다”고 분석했다. 처음에는 카메라 앞이 그저 어색하기만 했던 홍씨는 “이제 ‘둥둥이’들 때문에라도 끝까지 방송을 하게 될 것 같다”며 웃었다. 박 할머니는 ‘팬들에게 한마디 해달라’는 부탁에 이렇게 답했다.
“항시 고맙단 말밖에 더하겄어요? 항시 건강하면 더 좋겄지. 시집·장가 안 갔으면 좋은 인연 만나 살고. 그거면 됐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