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개 냄비 몇 차례 데워 먹고, 반찬통엔 온 가족이 젓가락질
냉동실엔 버려야 할 식재료들…
가정에 식품위생법 적용하면 적발 안 될 집 거의 없을 듯
'집밥 최고' 프레임 벗어야
사실 '집밥이 정말 건강하고 안전한 음식이냐'고 되물으려면 큰 용기가 필요하다. 어느 전문가도 '집밥'을 건드린 적은 없다. 집밥을 건드리는 순간, 천만이 넘는 대한민국 어머니들을 적으로 만드는 행위임을 알기 때문이다.
몇 달 전 햄버거를 먹고 장출혈성대장균에 감염됐다며 소비자들이 햄버거 회사를 고소한 사건이 있었다. 4건이다. 당연히 사람들은 햄버거 회사를 비난했다. 그 비난에는 '집밥은 몸에 좋고 바깥 음식은 나쁘다'는 믿음이 있다. 게다가 햄버거는 우리가 배운 나쁜 음식 중에서도 대표적으로 나쁜 음식에 속한다.
상식적으로 열 끼 식사 중 햄버거를 한 끼 먹고 나머지 아홉 끼를 집밥을 먹고 장염에 걸렸다면, '용의자'에는 집밥과 햄버거가 모두 들어가야 한다. 그러나 이 소식을 처음 듣는 순간부터 대부분은 햄버거가 주범이라고 생각했다. 햄버거는 무죄 추정의 원칙을 무시당한다.
고소를 당한 햄버거 회사를 압수수색했다는 기사가 나왔다. 합리적이라면 사건 피해자 아이들의 집 냉장고와 주방도 확인해봐야 할 테지만 처음부터 그럴 가능성은 배제된다. 이런 생각을 하는 자체가 외람된 것이다.
우리집에서는 찌개를 냄비째 네댓 번 다시 데워먹는 일이 허다하고, 반찬통에 담긴 김치에 온 가족이 젓가락질을 한 후 식탁에 몇 시간씩 방치하기도 한다. 우리 집 냉동실은 버려야 할 식재료의 '안치실'이다. 식품위생법이 가정에도 적용된다면, 우리 집은 365일 적발 대상일 것이다.
고소를 당한 햄버거 매장의 냉장고 속엔 유통기한 지난 식재료는 없었다고 한다. 먹던 음식은 당연히 폐기처분되기 때문이다. '햄버거 매장의 주방 매뉴얼은 완벽하겠지만 아르바이트생들의 위생관념이 부족할 것'이라는 의심도 물론 합리적이다. 그러나 그걸 일반화하는 것은 열심히 일하는 이 땅의 '알바생'을 모독하는 것이다.
햄버거 패티가 위험한 식재료라면, 지난 추석 때 만들어져 몇 시간을 자동차 타고 달려와 냉장고나 냉동실에 안치된 동그랑땡이 더 위험한 식재료일 수 있다.
조금 어려운 세균 얘기를 좀 해보자. 사람도 여러 인종이 있듯 대장균도 여러 균종이 존재한다. 그중 소의 장에서는 문제가 없지만, 사람에게선 장출혈을 일으키고 심하면 신장까지 망가뜨리는 악당 같은 놈이 있다. 햄버거병의 주범으로 유명해진 이 균의 이름은 '대장균 O157:H7'(장출혈성대장균)이다. 이 대장균은 섭씨 70도면 죽어버리기 때문에 식재료를 충분히 익히거나 깨끗이 씻어 먹으면 아무 문제가 없다. 우리나라에서는 연간 약 50~100명 정도의 환자가 발생한다. 장출혈성대장균에 감염될 확률은 귀를 후비다 고막을 뚫을 확률보다 낮다.
장출혈성대장균 감염이 '햄버거병'이라 불리는 이유는 1980년대 미국에서 발생한 장출혈성대장균 집단감염의 원인이 햄버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2011년 독일에선 햄버거가 아닌 채소에 의해 2000명이 집단 감염되고, 2016년 오키나와에서 사탕수수 주스에 의해 35명이 감염됐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채소병', '생야채주스병'이라 하지 않고 '햄버거병'이라고 한다. 여기에는 채소, 생야채주스는 몸에 좋은 음식이고, 햄버거 패티는 나쁜 식재료라는 편견이 작용한다.
각종 야채와 고기류가 들어가는 구절판과 햄버거, 피자는 사실 재료가 거의 비슷하다. 각종 야채와 고기를 밀전병에 싸 먹는지, 빵 사이에 넣어 먹는지, 도우 위에 얹어 먹는지의 시각적 차이가 있을 뿐이다. 집에서 만든 구절판은 음양오행의 이치가 담긴 완벽한 음식이고, 똑같은 재료로 만든 햄버거는 장출혈성대장균을 옮길 수 있는 나쁜 음식이라는 프레임을 이제는 버릴 때
가 됐다.
집밥은 대한민국에서 한 끼 이상의 의미가 있다. 어머니의 사랑과 정성의 아이콘이다. 인정한다. 하지만 세상 음식을 좋은 음식과 나쁜 음식으로 나누는 식의 발상은 한 번쯤 재고해 볼 시점이다. 집밥은 좋고 바깥 음식이 나쁘다는 프레임을 버리는 게, '매식 시대'에 좀 더 편하게 사는 법 아닐까. 이건 순전히, 우리 집 사정을 비추어 하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