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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근(70)·강선자(66) 부부 '유정식당' - 2018.7.1.가톨릭外

하늘나라 -2- 2018. 7. 9. 20:58



‘피 땀 눈물’로 차린 식당… 방탄소년단 맛집으로


[희년을 사는 사람들]  (1)  유정식당 운영하는 장영근·강선자 부부


▲ 방탄소년단 맛집 ‘유정식당’을 운영하는 장영근·강선자 부부. 십자고상 밑으로 방탄소년단 사진이 빼곡하다.




평신도 희년을 맞아 ‘희년을 사는 사람들’ 연재를 시작합니다. 저마다의 자리에서 하느님 말씀에 따라 살며 모범적인 신앙 생활과 이웃사랑 실천으로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기는 평신도의 삶을 소개합니다.



6ㆍ13 지방선거가 있던 6월 13일 오후 서울 강남구 논현동 유정식당. 25평(82㎡) 남짓한 식당 안은 여대생과 여성 직장인, 소녀들로 꽉 찼다. 가끔 눈에 띄는 외국인들도 모두 여성뿐이다. 식당 밖에도 손님들의 줄이 10m가량 이어져 있었다. 이들은 한국 가수 최초로 빌보드 메인 앨범순위 1위에 오른 남성그룹 방탄소년단(BTS) 팬들.

마침 이 날이 방탄소년단 5주년 기념 콘서트가 열린 날이어서 팬들은 이른 저녁을 먹기 위해 유정식당을 찾았다. 방탄소년단이 인정한 맛집으로 알려진 유정식당 내부는 온통 방탄소년단 사진들과 사인으로 도배돼 있었다. 식당 TV에서 방탄소년단 뮤직비디오가 방송되자 식당은 순식간에 콘서트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열광의 도가니로 바뀌었다. 손님들이 전부 팬이다 보니 식사를 하다가도 거리낌 없이 노래를 따라 불렀다.

된장찌개와 쌈밥 등을 내놓는 평범해 보이는 이 식당이 방탄소년단 팬들의 성지(?)로 떠오른 이유는 방탄소년단이 “무명시절부터 내 집처럼 편안하게 밥을 먹은 곳”이라고 소개했기 때문이다. 방탄소년단 멤버 7명은 10년 전 연습생 시절 유정식당에서 허기를 달래며 가수 데뷔를 꿈꿔왔다. 당시 방탄소년단의 소속사 연습실이 같은 건물 지하여서 멤버들은 유정식당을 사내식당처럼 여겼다. 멤버들이 즐겨 먹었다는 흑돼지 돌솥 비빔밥은 요즘 ‘방탄 비빔밥’으로 불리며 인기 메뉴로 떠올랐다. 팬들은 서울 신사동과 논현동 일대에 있던 방탄소년단 소속사의 옛 사옥과 옛 연습실, 유정식당을 성지처럼 순례(?)하는 것이 일상이다.

유정식당을 운영하는 이는 장영근(토마스, 70, 서울 압구정본당)강선자(크리스티나, 66)씨 부부다. 부부는 “신사동을 거쳐 이곳까지 30년간 식당을 운영했지만, 요즘처럼 손님이 많은 적은 없었다”면서 “방탄소년단 덕을 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웃음 지었다. 유정식당은 평일은 물론이고 휴일엔 식사시간 이외에도 손님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어 늘 줄을 서야 할 정도로 인기다. 중국ㆍ캐나다ㆍ일본ㆍ호주ㆍ홍콩에서도 찾아온다.



기도·나눔·봉사 실천하는 부부

유정식당이 지금처럼 유명해질 수 있었던 비결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부부가 남다른 신심을 바탕으로 ‘정직하게’ 장사한 덕분이다. 남편 장씨는 “우리 식당은 방탄소년단 맛집으로 알려지기 전에도 점심엔 손님들이 줄을 섰었다”며 “지금도 30년간 거래한 사람에게 흑돼지고기를 납품받고, 식당 경영이 아무리 어려워도 음식량을 줄이지 않았다”고 했다. 요즘처럼 맛집이 넘쳐나는 시대엔 유명 연예인이 추천했다고 해서 맛집이 되진 않는다. 맛이 없거나 불친절하면 금세 소문이 난다. 유정식당이 오랫동안 맛집으로 인정받는 비결은 그만큼 정직하게 운영해왔기 때문이다.

특히 부부가 식당 운영 철학을 ‘나눔’으로 삼고 있는 점은 실천하는 그리스도인답다. 장씨는 “형편이 좋지 않은 어르신에겐 음식값을 받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러한 선행이 지역사회에 알려져 ‘구청장 표창’을 받기도 했다. 부부는 음식 판매 수익금 일부를 꾸준히 수도회와 사회복지시설 등 5곳을 지원하는 데 봉헌해왔다. 방탄소년단이 유정식당을 언론에 알린 것은 그들이 이름도 없던 시절부터 오랫동안 밥값을 추가로 받지 않고 마음껏 먹도록 해준 부부의 사랑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다. 부부는 조만간 서울대교구 한마음한몸운동본부의 ‘나눔가게’로 등록해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들을 위한 나눔을 더 늘리는 것이 목표다.

부부는 봉사에도 열심이다. 장씨는 현재 본당에서 가난한 이들을 실질적으로 돕는 평신도 단체인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 회원으로 봉사하고 있다. 30여 년 전인 자양동본당 시절 꾸르실료(서울대교구 남성 85차)를 이수한 뒤부터 봉사에 적극적으로 나서 선교분과위원장과 구역분과장 등을 지냈다. 레지오 마리애 부부 쁘레시디움을 창단해 단장으로 봉사했고, 구역장ㆍ남성총구역장 등 힘닿는 대로 봉사했다. 아내 역시 남편과 함께 레지오 마리애 단원, 반장 등으로 봉사했다. 부창부수가 따로 없다.

기도에도 열심이다. 아내 강씨는 매일 오전 7시에 식당에 나와 음식재료를 다듬고 청소하며 음식을 준비. 오전 10시 식당이 문을 열면 밀물처럼 몰려오는 손님을 맞는다. 문을 닫는 오후 10시까지 음식을 만들고 나르고 청소하는 중에도 매일 묵주기도 100단씩을 바친다. 요리하면서도 속으로는 부지런히 기도하고, 손님들 밥을 뜰 때마다 십자가를 긋는다.

강씨는 “제가 준비한 음식을 먹는 모든 이가 건강해지고 하는 일마다 잘되기를 주님께 기도한다”고 말했다.



고통이 클수록 은총도 커져

지난 20여 년간 부부의 삶은 안정된 삶, 평탄한 삶과는 거리가 있다. 고교생 때부터 배우의 꿈을 키워왔던 장씨는 한 대형 영화사 오디션에 합격해 몇몇 영화에 출연한 것을 계기로 KBS 성우 공채(2기)에 합격했다. 하지만 강원도 홍천에서 공직생활을 하던 아버지의 강한 반대로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이후 일반 대학을 졸업하고 영업사원으로 사회생활을 한 장씨는 30대 때 유통회사를 설립해 잘나가는 사업가로 변신했다. 하지만 이도 잠시. 본당 신자들 돈을 빌려 겨우겨우 버텨오던 회사가 도산해 거리에 나앉은 신세로 전락했다. 지금으로 치면 강남의 대형아파트 한 챗값 정도의 큰 빚만 덩그러니 남았다. 시련의 시기가 시작됐다. 꼭 30년 전인 1988년의 일이다.

장씨는 “그땐 더 살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아 세 번이나 죽으려고 했다”면서 “신앙이 없었다면 주님께서 내 손을 잡아주시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살아있지 못했을 것”이라고 고백했다.

이 시기는 아내에게도 기억하고 싶지 않은 시간으로 남아 있다. 당시 강씨는 큰딸과 12살 터울의 늦둥이 아들까지 임신 중이었다. 강씨는 “불러오는 배를 문지르며 성당으로 가서 ‘예수님’, ‘성모님’ 하고 울며 매달리는 수밖에 없었다”고 회고했다.

부부가 식당을 운영하게 된 것은 사업 실패로 장씨 어머니가 운영하던 식당에서 일하는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장씨는 “당시 아내는 밥도 제대로 지을 줄 몰라 식당에서 일하면서도 ‘음식이 맛있게 되게 주님 도와주세요’ 하고 울며 기도했다”고 말했다. 이렇게 일하며 기도하는 ‘사순’의 시간이 10년간 이어졌다. 그동안 아내 혼자 신자였던 가정은 식구들이 모두 세례를 받아 성가정으로 거듭났다. 장씨는 신자들에게 졌던 빚을 모두 갚았다. 돈 받는 것을 포기하고 다른 곳으로 떠났던 이들까지 수소문해 돈을 갚는 장씨를 보고 감동해 세례받는 채권자들도 생겨났다.

부부는 “그때는 깨닫지 못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고통과 은총은 결국 연결돼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면서 “죽음의 고통을 이기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예수님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글·사진=이힘 기자 lensman@cpbc.co.kr





방탄 `피 땀 눈물`이 고스란히…어려운 이웃 돕는 유정식당

게시일: 2018. 6. 28.

20180629 cpbc 뉴스




방시혁(45) 빅히트 엔터테인먼트 대표 - 2017.12.1.조선外  http://blog.daum.net/soonchang4623/18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