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람 이야기

백황기(66) 미국 무도태권도협회장 - 2018.7.27.조선

하늘나라 -2- 2018. 7. 27. 21:47




단역 전담 무술배우, 美 해변 태권축제 주인공 되다

 



백황기 미국 무도태권도협회장

한국서 드라마·영화 악역 전문… 美 건너가 태권도 사범으로 명성


매년 6월 첫째 주 토요일 미국 샌디에이고 오션사이드시 해변에서는 'USA 오픈 엘리트 태권도 대회'가 열린다. 백황기(66) 미국 무도(武道)태권도협회장이 자신의 미국 정착을 기념해 만든 비치(beach) 태권도 대회로, 오션사이드시 연례행사로 자리 잡으며 15주년을 맞았다. 지난달 열린 올해 대회에도 캘리포니아주는 물론 유타, 네바다, 애리조나주 등의 70여 개 도장에서 1000명 넘는 선수가 참가했다. 관중을 포함해 4000여 명이 모인 대형 태권도 축제판이 벌어졌다.

백 회장은 대한태권도협회가 주최'제주 코리아오픈 국제 태권도 대회' 참가차 한국에 왔다. 방한 기간 중 조정원 세계태권도연맹(WT) 총재를 만나, 지난 5월 별세한 '미국 태권도의 아버지' 이준구씨의 뜻을 잇기 위해 내년 '국제 오픈 비치 태권도 대회'를 열기로 확정했다. 캘리포니아주에서 수련생 420명이 소속된 도장 4곳을 운영하는 백 회장은 "태권도를 향한 평생 열정이 결실을 본 것 같다"며 기뻐했다.

서울에서 만난 백황기 미국 무도태권도협회장은 “인생 1막은 한국서 배우, 2막은 미국서 태권도 사범으로 보냈고 3막은 태권도로 베풀며 살고 싶다”고 했다.
서울에서 만난 백황기 미국 무도태권도협회장은 “인생 1막은 한국서 배우, 2막은 미국서 태권도 사범으로 보냈고 3막은 태권도로 베풀며 살고 싶다”고 했다. /정병선 기자

충남 논산 출신으로 태권도 공인 8단인 그는 원래 한국에서 무술 단역배우로 활동했다. 악역 전문이었다. 영화 30여 편과 TV 드라마 '방랑자' '형사 25시' 등에 출연했지만, 단역만 전전하는 데 한계를 느꼈다. 하명중 감독 영화 ''(1985)를 끝으로 더 이상 출연하지 않았다.

1994년 아무 연고 없는 미국으로 떠났다. 비행기에서 내려 찾아간 곳이 샌디에이고 태권도장이었다. "이제부턴 태권도로 승부를 걸어보자고 결심했다"며 "말이 사범이지 3년간 도장에서 걸레질하며 밤낮으로 집집마다 홍보 전단을 돌렸다"고 했다.

태권도를 배우면서 아이들이 부모를 존경하는 태도를 갖게 되자 백 회장은 지역 주민들에게 '동양의 태권도 마스터'로 불리며 유명세를 탔다. "한국에서는 단역배우였지만 미국에서는 주인공이 된 셈"이라며 "미국 할아버지들 사이에 '손주에게 예의 가르치는 데 태권도가 최고'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인기가 높아졌다"고 했다.

미국 샌디에이고 오션사이드 해변 태권도 대회장.
미국 샌디에이고 오션사이드 해변 태권도 대회장. /백황기씨 제공

해변에서 태권도 대회를 열게 된 것도 태권도를 야외에서 하면 대중화하기 쉽겠다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낚시를 하다가 해변 노천극장에서 열린 음악 공연을 우연히 보고 '태권도를 무대에 올리자'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샌디에이고는 비치발리볼의 인기가 높은 지역이기도 하다. 태권도 대회가 열리면 사범들이 애국가를 합창하고, 김치·김밥 같은 한국 음식이 판매되고, K팝까지 어우러져 온종일 파티 분위기다. 시는 2013년부터 이 대회가 열리는 날을 '태권도의 날'로 지정했다.

백 회장은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서 활약하는 한국 선수들도 지원한다. 지난 9일 역대 72홀 최다 언더파 기록으로 우승한 김세영(25)과도 각별한 사이다. "우승 당일 세영이에게 '낚시하다가 월척을 잡았다'고 방어 사진을 보냈는데, 세영이가 '이번엔 제가 월척 낚을 차례네요' 하더니 우승해버렸어요."

백 회장은 "초등학교 4학년 때 시작한 발차기와 품새 단련을 지금껏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며 "한국의 젊은 태권도인들이 미국에서 도전해 드라마 같은 인생을 이루기 바란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