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람 이야기

김은경(64) 온양민속박물관 관장 - 2018.10.23.조선 外

하늘나라 -2- 2018. 10. 23. 17:17




유물 손때도 민속의 일부, 때 빼고 광낼 필요 없어


     



개관 40년 맞은 온양민속박물관 代 이어 운영하는 김은경 관장



"아버지는 아이들에게서 번 돈을 아이들을 위해 쓰고 싶다고 하셨어요. 재력가들이 고미술품을 모을 때 아버지는 급속도로 없어지는 민속 유물을 수집해야 한다고 생각하셨지요."

지난 11일 충남 아산의 온양민속박물관. 김은경(64) 관장은 설립자인 구정(龜停) 김원대(1921~2000) 선생의 수집 철학을 들려줬다. "아이들에게 생명력 있는 전승 문화를 보여줘야 한다며 인분(人糞)을 퍼 나르는 똥바가지, 오래된 낫과 쟁기, 짚을 엮어 만든 개집까지 돈을 주고 샀다"고 했다. 새마을운동이 한창이라 전통 생활용품이 빠르게 사라지던 시기였다.

김은경 온양민속박물관장이 문인석 30여 점이 모여 있는 야외 전시장 한가운데에 섰다.
김은경 온양민속박물관장이 문인석 30여 점이 모여 있는 야외 전시장 한가운데에 섰다. 그는“1970년대에 박물관 학예사들이 집중해서 모은 작품들”이라고 했다. /조인원 기자
1978년 아동 서적 출판사인 계몽사 설립자 김원대 선생이 세운 이 박물관이 올해 개관 40주년을 맞았다. 현재 소장 유물만 2만여 점. 상설 전시실 3곳과 야외 전시장 등을 갖춘 대지 2만5000여 평의 사립 박물관이다. 개관 40주년을 기념해 '일상의 유산×유산의 일상'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수장고에 보관 중이던 개관 초기 설계도를 비롯해 김 선생의 유품 50여 점도 전시장에 나왔다.

김 관장은 "아버지는 화장실에서 휴지를 반으로 접어 다시 쓰라고 할 정도로 검소한 사람이었다"며 "사비를 털어 유물을 구입하는 모습을 보고 놀랐다"고 했다. 김원대 선생은 1946년 계몽사 설립 후 여성 교육을 위해 1974년 고향 안동에 길원여고를 세울 정도로 교육에 관심이 컸다. "책으로 배우는 데는 한계가 있다며 실물로 볼 수 있도록 박물관 설립을 계획하셨죠."

2006년 취임한 김 관장은 김원대 선생의 둘째 딸이다. 2002년 박물관이 운영난으로 문을 닫자 '내 대(代)에서 선친의 뜻이 끊기면 안 된다'는 생각에 사비를 털어 박물관을 살리기로 결심했다. 그는 "개관 첫해 학생 50만명이 찾을 만큼 북적였던 박물관이 난방조차 되지 않는 모습을 보고 울컥했다"고 했다.

제주도에서 가져온 떼배, 전주에서 통째로 들고 온 듯한 대장간…. 김 관장은 주요 유물들을 소개하면서 "아버지는 백자 달항아리 자태에 반해 보름을 두고 보시다가도 다시 돌려보냈다"며 "'명품(名品)을 수집하기 시작하면 민속과 거리가 멀어진다'는 말씀을 늘 하셨다"고 말했다. 고려시대 청동 북인 금고(金鼓)나 조선시대 용문 촛대 등 지정문화재 10여 점을 보유하고 있지만, 개관 후 "박물관을 키우는 데 필요하다"는 주변 설득에 들여온 것들이다.

지금도 온양민속박물관 유물에는 '때 빼고 광내는 작업'을 하지 않는다. "손때도 민속의 일부"라는 김원대 선생의 신념 때문이다. 김 관장은 "목재 가구는 고목(古木) 결을 살리느라 닦아내는 게 일반적이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며 18세기 후반 작품인 '전주장(全州欌)'을 보여줬다. 사선으로 결이 난 짙은 갈색 장이 손때 묻어 반질거렸다. "사용 흔적이 남은 민속품이야말로 살아있는 역사라고 생각하셨죠."

김 관장은 "선친 뜻에 따라 명맥을 잇겠다"면서도 "옛 공간과 현재가 공존하는 박물관을 만드는 게 목표"라고 했다. "앞으로 40년 더, 그 후에도 계속 3대(代)가 함께 관람할 수 있는 박물관으로 만들고 싶어요."




온양민속박물관 재성HD

게시일: 2018. 9.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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