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왜 고독하고 집착할 수 밖에 없나… '생각의 속임수' 저자 권택영씨
"아이는 가짜 젖꼭지에 매달리지만 어른은 사회가 인정하는 어떤 대상에 매달린다. 마음속 공허, 불안, 시간의 지루함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자신을 지탱해줄 무언가를 추구한다. 이런 욕망이 생존의 동력이다. 따라서 욕망을 비우는 것은 불가능하다. 문제가 되는 경우는 대상을 향한 과도한 집착이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연인(戀人)이다. 이는 삶을 살아가게 하는 숭고한 목적이 된다. 하지만 너무 높은 곳에 있어 닿을 수 없다고 느낄 때 자신이 초라해지면서 대상을 파괴하려는 증오와 폭력으로 변질될 수 있다. 연인이 배반했다고 죽이는 극단적 행위가 그런 예다…."
'생각의 속임수'라는 이 책은 인간은 왜 고독하고 무언가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지를 학문적으로 다룬 역작(力作)이었다. 그녀가 경희대 영문과 교수로 퇴임한 뒤 3년에 걸쳐 썼다고 한다. 하지만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를 논하는 것은 요즘 세태와 안 맞는 모양이다. 언론 매체에 서평 한 줄 없었고 3000부도 안 팔렸다.

"지그문트 프로이트(오스트리아 정신분석학자)는 '사랑은 너와 내가 하나가 되고 싶은 본능'으로 봤습니다. 유아기에 엄마와 한 몸으로 지낸 꿈이 투사된 게 남녀의 사랑이라는 것이지요. 둘이 하나가 되려면 상대를 파괴할 수밖에 없습니다. "
―사랑을 '한 몸이 된다'는 식으로 표현하지 않습니까?
"몸만이 아니라 의식까지 하나로 지배·종속 하려는 걸 말합니다. 현실에서 이는 범죄 행위입니다. 결혼은 파괴에 이르지 않고 둘이 하나가 되는 장치로 고안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이를 통해 두 사람의 사랑이 하나가 되는 것이지요."
―처음부터 모호하군요. 책에서 '첫사랑이든 마지막 사랑이든 사랑의 환상과 아픔이란 아무것도 아닌 것을 감춘 베일의 거부하기 어려운 절대적 힘에서 온다'라고 썼더군요. 사랑은 '아무것도 아닌 것'인데, 베일로 숭고하게 포장됐다는 뜻인가요?
"목숨 걸었던 사랑도 세월이 지나면 식게 마련입니다. 서로 원수처럼 돌아서기도 합니다. 시간에도 못 견디는 사랑의 실체란 대단한 것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지요. 여기서 '베일'은 쉽게 닿을 수 없는 금지(禁止)를 의미합니다. 베일 사이로 무언가 아련히 비치는데 금지된 어떤 숭고함, 그것이 나를 유혹하는 것이지요. 사람은 이런 금지된 사랑에 더 끌립니다. 금지될수록 희소가치와 높기 때문입니다."
―금지를 하면 욕망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없던 욕망도 생긴다는 뜻인가요?
"그런 금지를 거역하고 싶은 본능이 인간에게 내재돼 있는 겁니다. 자크 라캉(프랑스 철학자)은 '이 욕망이 우리를 살게 하는 에너지'라고 했지요. 동물은 힘으로 구애(求愛)하지만, 사회적 동물로 진화한 인간은 돈, 권력, 직위, 명예 등을 획득해 대상을 얻으려고 합니다."
―책에는 '결혼식장에서 신부의 베일을 걷는 신랑의 손은 사랑의 두 번째 단계로 들어섰다는 신호다. 서로에게 결혼 이전에 보여준 행동, 마음 그리고 들려준 약속이 허식이라는 것, 이젠 달라진다는 것, 지금부터 솔직하게 짐승이 된다는 것의 신호다'라고 썼더군요.
"베일은 연인을 유혹하고 빠져드는 과정에서 작용합니다. 이로 인해 연인에 대한 숭고함을 갖거나 아니면 연인에 비해 자신을 초라하게 느낍니다. 결혼이란 그 단계가 매듭되는 걸 의미합니다. 이제부터 '짐승'이 될 수 있다는 걸 인정하며 일상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베일이 걷힌 실체에 대해 이해와 공감을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 파탄이 기다립니다."
―선생도 결혼 뒤 '짐승'이 됐나요? 인격과 정신적 고상함을 갖춘 부부 관계가 더 많지 않습니까?
"학문적으로 인간의 본능을 '짐승'이라고 한 것인데 과격한 표현 같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를 감추는 분위기에서 살았습니다."
―고독의 문제를 다루면서, 진화에 의해 자의식(自意識)을 갖게 된 인간은 숙명적으로 고독할 수밖에 없다고 했더군요.
"인간은 의식의 진화로 '자의식'을 갖게 된 것입니다. 내가 나를 의식하는 것입니다. 내가 남들과 다르다는 개체화로 인해 고독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남들과 같다면 외롭지 않겠지요. 인간은 고독하기에 사회에서 인정받고 사랑받으려는 욕구를 갖습니다. 이 욕구는 영원히 충족될 수 없기에 우리를 더 외롭게 합니다."

―사람은 행복해지기 위해 욕구를 추구하는 것이 아닌가요?
"우리는 행복을 욕망하지만 그게 달성돼도 오래가지 못합니다. 시간이 가면 옅어지고 다시 불만이 생깁니다. 마음의 공허를 충족시킬 것처럼 보이는 현란한 대상의 본질은 신기루와 같습니다. 얻으면 한정된 기간의 만족을 줄 뿐 세월이 지나면 다시 공허가 찾아들고 불만을 낳습니다."
―인간에게는 이런 욕망과 불만이 숙명처럼 따라붙겠군요.
"하지만 욕망과 불만은 삶의 동력입니다. 그것 없이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불만을 없애버리려는 갈망은 죽음에 이르는 길이라고 했습니다."
―선생은 영문학을 가르치고 문학평론을 해왔는데, 어떤 계기로 이런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까?
"저는 1990년 '포스트모더니즘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으로 국내에 포스트모더니즘을 소개했습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서구의 합리주의와 이성주의에 반기를 든 운동이었지요. 이는 '욕망의 억압'을 주요 테마로 삼았던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과 라캉의 현상학 등을 기반으로 한 겁니다. 이런 공부를 하면서 자연히 인간의 본질과 심리 세계, 뇌(腦)과학으로 관심이 옮겨왔습니다."
―책에서는 '고독, 착각, 후회와 집착의 모든 원인은 의식(意識)이 주인이면서 동시에 아니라는 데 있다. 의식은 문패를 붙이고 사는 입주자다. 그러나 실제 집주인은 감각이다'라고 했더군요. 나를 실제 움직이는 것은 내 생각과 판단이 아니라는 뜻인가요?
"집주인은 무의식, 본능, 습관, 감각, 몸 등으로 표현합니다. 인간의 뇌 진화에서 가장 초기 단계에 형성된, 소위 '파충류 뇌'가 관할해온 영역입니다. 그런데 진화 과정에서 늦게 태어난 의식이 마치 우리의 집주인인 듯 행세합니다. 그때그때 기억하고 느끼고 판단해야 현실을 따라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과 의식을 '파충류 뇌'의 무의식·본능이 몰래 조종하고 속이고 있다는 겁니다."
―'생각의 속임수'라는 책 제목처럼?
"우리는 일상에서 이런 생각의 속임수를 모르고 삽니다. 속임수는 의도적인 것이 아니라 뇌 진화의 결과로 그렇게 된 것입니다. 가령 어떤 사람이 사회 정의를 주장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무의식에 의해 몰래 조종되고 있다는 것이지요. 속임수가 들어간다는 것이지요. 언어로 표현되는 의식보다는 이런 본능, 감각이 오히려 내가 누구인지를 더 정확하게 드러냅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철학자 데카르트의 말은 유명한데 이를 부정했더군요. '나는 생각하지 않는 곳에서 존재한다'라고 했나요?
"데카르트 이래 우리는 의식으로 느끼고 판단한다고 생각해왔지만, 오히려 의식 아닌 세계가 훨씬 더 크고 강력하다는 겁니다. 프로이트는 이를 무의식, 본능, 기억의 흔적이라고 했고, 라캉은 이를 상상계로,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는 이를 몸, 혹은 물질성이라고 했습니다. 최근 뇌과학자들은 '우리는 과거의 기억과 감정, 느낌으로 판단한다'고 말합니다."
―죽음이야말로 인간 존재를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일 겁니다.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이 간혹 인간을 공허와 허무에 빠지게 하지요.
"동물이 갖고 있지 않은 시간을 느끼면서 살아가는 게 인간 진화의 핵심입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제일 먼저 시계를 보지 않습니까. 기술이 발달할수록 사람은 시간에 쫓기며 삽니다. 실존주의 철학자는 인간의 존재 조건을 불안, 불만, 공허, 심연 등의 용어로 규정했습니다. 프로이트는 문명 속의 불만, 라캉에게는 결핍, 하이데거는 이를 지루함이라고 했습니다."
―'지루함'이라는 표현이 적절하군요. 우리는 오래 살기를 원하면서 막상 주어진 하루하루를 습관처럼 반복하지요. 그런 지루함이 쌓였을 때 세월이 덧없다는 느낌을 갖는 것이지요.
"하이데거에 따르면 누구나 시간에 대한 텅 빈 느낌을 두려워합니다. 기술 문명은 지루함이라는 불만을 줄이기 위해 발전하고 있지만, 어떤 한계를 넘어서면 내 마음속 불만이라는 괴물을 더 키울지 모릅니다. 더 빨리 더 멀리 갈수록 나는 가장 가까이 있는 것들과 멀어집니다. 심지어 나 자신과 멀어지는 겁니다."
―인간의 문제를 학문적으로 연구했으면,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답을 갖고 있습니까?
"욕망의 크기만큼 마음의 공허도 커집니다. 욕망은 아무리 채워도 그 갈증을 해결할 수 없습니다. 스스로 욕망을 줄이는 수밖에 없습니다. 소위 '자족(自足)'의 삶을 택하라는 겁니다. 제가 꼭
그렇게 살아왔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단지 학문하는 사람으로서 '인간 존재란 이런 것'이라고 말하고 있을 뿐입니다."
☞권택영은…
1947년생. 대전여고 수석 졸업. 경희대에 장학생으로 입학해 수석 졸업. 미국 네브래스카 대학 영문학 박사. 학술저서 14권과 번역서 7권. 한국연구재단 우수학자로 5년간 선정. 한국현대정신분석학회와 한국아메리카학회 회장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