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람 이야기

김성구(60) 샘터사 대표 '샘터 창간 50주년' 20200327 가톨릭外

하늘나라 -2- 2020. 3. 30. 10:45




 "월간 `샘터` 50주년...평범한 삶의 기쁨과 행복 계속 전할 터"


[인터뷰] 김성구 대표




○ 방송 : cpbc 가톨릭평화방송 라디오 <열린세상 오늘>
○ 진행 : 윤재선 앵커
○ 출연 : 김성구 월간 <샘터>사 대표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월간 <샘터> 50년 전 당시 최대 50만부 발행

평범하고 진솔한 사람들의 이야기, 웃음과 감동 전해

작년 폐간 위기 넘긴 건 독자들이 일으켜 세웠기에 가능

평범한 하루의 기쁨과 삶의 행복 전하는 게 <샘터> 역할




[인터뷰 전문]

월간 <샘터>하면 올해 창간 50주년을 맞는 국내 최장수 잡지입니다.

그런데 오랫동안 쌓여온 적자로 지난 연말 무기한 휴간이라는 비보를 전했는데요,

샘터의 오랜 독자들의 응원과 격려금으로 폐간 위기를 넘기고 50주년을 맞았습니다.

김성구 <샘터사> 대표 연결해 <샘터> 50년의 발자취와 기념호 발행에 관해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김성구 프란치스코 대표님, 안녕하십니까?

▶네, 안녕하세요. 김성구입니다.


▷월간지 <샘터>가 50살이 됐습니다. 창간 50주년 기념호 발행의 의미는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50년 됐으니까 이제 좀 쉬라고 했으면 좋겠는데 여기서 멈출 수 없다는 생각을 누군가가 전해주는 것 같아요. 그거는 결국은 샘터는 행복이고 행복을 추구하고 결국은 행복은 권리이며 의무라는 깊은 뜻을 계속해서 이 세상에 알리라는 뜻이라고 봅니다.


▷샘터가 창간된 게 정확히 언제였습니까?

1970년 3월이죠. 3월에 4월호를 발간한 거죠.


▷어떤 계기로 창간을 하게 된 겁니까?

▶그 당시는 산업화 시대였고요. 산업화 시대라는 건 우리나라 사회적인 성장이나 이런 것들의 초기단계였죠. 그렇게 해서 산업화 일꾼들이 열심히 일을 해서 일단 잘 먹자. 잘 살아보자 이게 하나의 큰 틀이었죠. 그런데 그때 샘터를 발간하셨던 분이 저희 아버지셨어요. 그때 이제 기능올림픽위원장을 맡았었어요. 기능올림픽이라는 것은 여러 가지 분야 벽돌공이나 이발사라든지 여러 가지 기능으로 전문가들, 기능공이죠. 기능공들이 전 세계의 다른 기능공들과 함께 콘테스트를 벌였죠, 올림픽처럼. 그래서 거기에서 금메달도 따고 은메달도 따고 이런 분들이었는데 그분들과 함께 얘기를 나누다 보니까 스스로 굉장히 자기연민에 빠져 있는 거예요. 자긍심도 없고 자부심도 없고. 자존감이 없는 거죠. 부모 잘못 만나서 공부를 못해서 나는 이렇게 공돌이, 공순이만 하고 있다는 생각에만 치우친 거예요. 그게 굉장히 안타깝고 그게 결코 아닌데 자기 삶에 자존감을 갖고 그 일뿐만 아니라 삶의 깊은 행복에 대한 생각을 가져야 되는데 그걸 갖지 못하는 걸 굉장히 안타깝게 생각하셨죠.


▷그래서 아마 대중들에게는 삶에 대한 행복, 자존감을 일으켜 세워주는 의미로 <샘터>가 그런 역할을 하지 않나 싶네요. 말씀 들어보니까.

▶맞습니다. 그런데 당시에는 TV나 라디오 매체가 활발하게 진행됐던 것도 아니었고 요즘처럼 인터넷 매체가 있던 것도 아니고 그러니까 잡지가 TV나 라디오만큼의 영향력이 컸었죠.


▷최장수 잡지라는 역사부터 <샘터>가 만들어 온 여러 기록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네, 많습니다. 우선은 우리나라에서는 최초 문화교양지죠. 매달 200자 원고지를 기준으로 봤을 때 900매 정도의 원고지가 샘터에 전해졌어요. 그걸 총 펼쳐놓으면 잠실 축구장의 3배가 넘는 면적이랍니다. 그리고 그 당시에 인구가 3500만 명 정도인데 최대 부수가 50만 부였으니까요. 그렇지만 50만 부라고 50만 명만 본 게 아니라 곱하기 정말 가족 수대로...


▷최소 100만 명 이상은 본 셈이겠네요.

100만 명 그 이상이죠.


70년대 후반에 이 잡지를 50만 부를 발행했다는 건 글쎄요. 이런 비교가 맞나 모르겠습니다만 오늘날의 1000만 관객 영화보다도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봐야 되겠는데 이렇게 독자들한테 사랑을 받아온 비결은 뭐라고 보십니까?

▶그거는 앞서 말씀드린 대로 그 당시에는 큰 다른 매체들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부족했죠. 그래서 샘터에 매달 4, 500통씩의 편지를 보내서 그분들의 사연들을 알리고 샘터에 자기 글이 소개되고 자기 소식이 전해졌을 때 그게 가문의 영광, 과장되게 얘기하면. 그 정도까지도 좋아하셨어요. 원고, 투고 비율로만 보면 평균 200:1의 경쟁이었었죠.


▷<샘터>에 실리는 게 정말로 엄청난 자긍심을 갖게 되는 일이었군요.

▶참 일화가 많죠.


▷국민잡지, 대중잡지 만들어 오시면서 가장 기뻤던 일, 의미 있는 일은 무엇이었습니까?

▶샘터의 필자가 크게 세 부류로 나눠져요. 그러니까 글을 잘 써서 벌어먹고 사는 사람들. 한마디로 작가죠. 그다음에 또 한 부류는 인생에 어떻게 보면 지위나 사회적인 성공을 했다고 생각하는 그런 사람들의 자기의 경험담을 쓰는 분들이 계시고 또 한 분은 정말 이름도 알려지지 않고 평범한 삶을 사는 분이지만 그분들이 진솔하게 정직하게 삶을 알차게 사시는 분들 그렇지만 글을 제대로 배우지도 못한 분들도 많으셨고요. 크게 보면 세 부류가 있는데 마지막에 일상의 평범한 사람들이지만 그 삶을 진솔하게 사신 분들의 얘기가 결국은 감동이고 그리고 그분들의 글이 가장 큰 웃음과 울음, 감동을 전해줬어요. 그런 분들을 많이 만난 게 저로서는 정말 행운이고 그분들을 통해서 정말 샘터의 역할이 무엇인지 그다음에 사명감 이런 것들을 느끼게 됐죠.


▷정말 진솔한 삶의 밑바닥 이야기가 감동과 웃음을 전해준 거네요.

▶그분들 중에는 정말 11번씩이나 암수술 받고도 오히려 주변 사람들의 건강을 걱정해 주는 분 그다음에 70대가 넘어서야 글자를 깨우치고 몽당연필로 샘터에 원고를 보내면서 스스로 뿐만 아니라 주변 분들에게 힘과 용기를 북돋아주신 분들 여러 분들, 그분들의 만남의 장소가 샘터였죠.


▷이렇게 웃음과 감동, 그 동안에 여러 가지 일들이 많았는데 지난 연말에 무기한 휴간이라고 하는 비보를 전하기도 하셔서요. 얼마나 많은 어려움들을 감내하고 결정을 미루고 미뤘을까 감히 짐작조차하기 어려운 데요. 그때 마음이 어떠셨습니까?

▶우선은 제가 능력도 부족하고 좀 더 충실하지 못해서 이런 상황이 벌어졌다는 자책감도 많이 느꼈어요. 그러면서 이 시대에 잡지로서만 <샘터>의 정신과 가치를 전하는 게 너무 게으르지 않았었나. 시대 변화에 적극적으로 다가섰어야 되는 게 아니었나 하는 생각들을 많이 했죠. 그리고 무엇보다도 제일 가슴 아팠던 것은 잡지를 멈춘다는 것은 우리 많은 샘터 식구들이 자리에서 떠나야 된다.


▷일자리를 잃게 되는 아픔을 생각하시다보니...

▶그게 사실은 가장 컸죠. 그게 경영하는 입장에서는 가장 가슴 아픈 일이죠.


▷그럼에도 계속 발행하기로 결심한 결정적 이유가 있으셨을 것 같아요. 절망 속에서도 어떤 희망을 보셨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은데 어떠셨습니까?

▶그거는 결국은 독자들이 일으켜 세웠습니다. 그야말로 그 소속이 전해지자마자 참으로 많은 분들이 정확하게는 그 당시로만 보면 정기구독이 한 2400명 정도가 늘었어요. 그리고 개인적으로 후원금, 기부금 이런 것들도 많이 보내주셨고 그다음에 큰 기업들도 광고를 해주셨고 이렇게 생각지도 못했던 기적 같은 일들이 많이 주변에서 일어났죠. 그분들이 다시 샘터를 일으켜 세우고 여기서 멈추지 말고 더 열심히 샘터를 만들라는 격려를 보여주신 거죠.


▷앞으로 샘터의 독자들과 후원자들에게 어떤 약속을 전하고 싶으십니까?

▶지금 코로나바이러스가 사실은 샘터가 더 열심히 역할을 하라는 뜻으로도 저는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코로나 사태 이전과 이후는 삶의 방식이 엄청나게 바뀔 것 같아요. 독자들뿐만 아니라 이 삶을 사는 분들이 오히려 자칫하면 보다 더 이기적이고 개인적이고 폐쇄적인 삶을 살 가능성이 저는 많다고 봐요. 그렇지만 한편 사소한 일상이 얼마나 귀중한지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웃으면서 밥도 먹고 목욕탕에 가는 것 이런 것들. 정말 평범한 하루의 기쁨, 자유 이런 사소한 것들이 눈 맞춤, 웃음 이런 것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이런 거를 더 느끼고 깨달을 수 있는 계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더 미워하지 말고 용서하며 살아가는 삶이 얼마나 귀중한지 이런 것들을 샘터가 더 적극적으로 알리고 공감대를 넓혀가야 되는 게 어떻게 보면 샘터가 앞으로 50년 더 이어져서 독자들에게 이런 역할을 해야겠다는 게 약속이죠.


▷알겠습니다. 올해로 창간 50주년을 맞이한 <샘터사>의 김성구 프란치스코 대표와 함께 이야기 나눴습니다.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cpbc 윤재선 기자(leoyun@cpbc.co.kr) | 최종업데이트 : 2020-03-27 18:00



    창간 50년 앞둔 월간
    창간 50년 앞둔 월간 '샘터' 무기한 휴간
    연합뉴스 2019.10.21. 네이버뉴스
    김성구 샘터사 대표는 21일 "1990년대부터 계속 적자였던 '샘터'를 단행본 수익으로 메워왔지만, 구조적으로 개선이 어려워 600호를 채우지 못하게 됐다"며 "이대로는 그동안 최선을 다한 직원들 퇴직금도 못 줄 수 있다는...

    대학로 전 샘터 사옥. 1979년부터 38년간 샘터 사옥이었다. [샘터사 제공]

    대학로 전 샘터 사옥. 1979년부터 38년간 샘터 사옥이었다. [샘터사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