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심상치 않은 기업 줄도산… 다가오는 경제위기
중국 기업의 디폴트(채무불이행) 상황이 심상찮다.
[중앙일보] 입력 2018.09.08 00:01
미·중 무역전쟁이 한창인 와중에 소비심리가 위축되면서 실물경기는 둔화되고 자금 경색까지 겹쳐 근근이 버티기도 힘에 겨운 모양이다.
일단 디폴트 규모부터 확인해보자.
올해 7개월 디폴트 규모 역대 최고 2016년의 83%
미·중 무역전쟁에 소비심리 위축,경기둔화 삼각파도
국유은행 통한 유동성 공급도 국영기업 독차지
성장의 허파 역할한 민영기업은 각자도생 숙명
2018년 1~7월 디폴트 규모는 321억 위안(약 5조2500억원)으로 집계됐다. 역대 최고였던 2016년 385억 위안의 83%에 달했다. 7개월치만으로도 역대 최고치의 턱밑까지 올라온 것이다. 추세로 볼 때 나머지 5개월분의 수치를 합하면 기록 경신은 불 보듯 뻔한 상황이다.
자금 경색의 직격탄은 민영기업이 집중적으로 얻어 맞고 있다.
8월20일 중국 최대 민영 에너지기업 화신에너지공사(CEFC)의 자회사인 상하이화신국제가 21억위안(3450억원) 규모의 1년짜리 기업어음(CP)를 상환하지 못했다. 지난 7월에는 융타이 에너지가 114억위안(1조9000억원)을 갚지 못해 디폴트를 선언했다. 중국 전기차 배터리 제조업체 3위인 워터마(沃特瑪·옵티멈나노)는 지난 3월 만기가 도래한 부품 대금을 지불하지 못해 디폴트에 빠졌다.
중국은 4대 은행을 비롯해 크고 작은 은행들이 국영기업 위주로 유동성을 공급한다. 국영기업에 빌려준 돈은 어떻게든 국가가 나서 원금 손실을 막아주고 수익을 보전해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반면 민영기업은 안중에 없다. 맨땅에 헤딩하듯 각자도생(各自圖生)해야 한다. 연줄이 있으면 연줄을 동원하고 이도저도 없으면 고리의 그림자금융에 손을 벌려야 한다.
펑파이(澎湃)신문 8월27일자에 자금줄이 말라버린 민영기업가의 호소를 담았다. 그의 하소연에는 자금 흐름이 왜곡된 중국 제조현장의 현주소가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었다. 고정밀 무인항공기용 렌즈와 부품을 생산하는 업체를 운영하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한 이 업주는 자금 경색과 디폴트 위협에 노출된 원인을 세 가지로 압축했다.
2009~2013년 렌즈시장은 수익성이 좋았다. 순이익률이 70%에 달했다. 1000위안어치를 팔면 700위안이 수중에 떨어졌다. 변화의 시작은 2013년 초였다. 대량의 자금이 시장에 유입됐다. 생산량이 2~3배씩 늘면서 재고가 쌓이자 가격 전쟁에 불이 붙었다.
이제는 이익률이 10% 남짓까지 떨어졌다. 이래선 투자금을 회수하려면 10년이 걸린다. 2013년 전까지만 해도 1~2년이면 끝날 일이었다.
생산라인 증설을 놓고도 딜레마에 빠진다. 주저하고 있으면 경쟁자가 기회를 채간다. 생산이 시장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면 시장 퇴출 압력이 커진다.
이런 스트레스를 받으며 생산라인에 수억 위안을 투자하는 업주가 있다고 치자. 몇 년에 걸쳐 설비를 늘리고 나면 문제는 주문이다. 생산 능력을 흡수할 수 있는 주문이 안 들어온다. 생산라인 한 두 개는 놀게 된다. 이젠 이판사판이다. 한정된 수요를 놓고 가격파괴 치킨게임에 들어갈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몰린다.
생산라인을 안 늘리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대량 주문이 안 들어온다. 화웨이,오포 같은 메이저 업체는 다량의 주문을 소화할 수 있는 생산역량을 납품업체 선정 기준으로 삼는다. 메이저 업체와의 거래는 박리다매가 시장의 룰이 됐다. 수익률이 박할 수 밖에 없다.
중소업체는 30% 정도의 수익률이 보장되지만 주문량이 얼마 없다. 대금을 떼어먹고 도주하는 위험도 있다.
이래저래 생산을 해보지만 들어오는 돈이 얼마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
순이익 30%가 났다면 16%는 부가가치세를 내야 한다. 연말에는 30%의 법인세 부담도 돌아온다. 게다가 인건비도 계속 오른다. 임금 뿐 아니라 5대보험에 연금도 들어줘야 한다. 임금이 13000위안인 직원은 회사에서 별도로 7000위안을 추가 부담해야 한다.
중국의 제조업계 현실은 이렇다. 제품을 받고는 현장에서 결재란 게 거의 없다. 몇 번에 걸쳐 추가 요구사항을 들어줘야 한다. 이 기간이 길어지면 자금 흐름에 문제가 발생한다. 화웨이나 ZTE 같은 대기업이라고 사정이 나은 건 아니다. 납품 대금을 최대한 이른 시일 안에 회수하는 게 이 바닥에서 생존하느냐 마느냐를 결정하는 핵심 역량 가운데 하나다.
민영기업의 자금 경색은 금융 접근성이 떨어지는 데서만 발생하는 게 아니다. 과당경쟁으로 수입원이 줄었다. 나가는 비용은 많아 가격 경쟁력은 떨어지는데 그나마 대금 회수도 녹록치 않은 형편이다. 도처에 터질 일만 남은 지뢰밭인데 근근이 공장을 돌리며 버텨보다 결국 자금 경색을 맞게 되는 한계 상황인 것이다.
외부 경제 상황도 당장의 낙관론을 펴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시진핑 정권 들어 경제당국이 주도하고 있는 공급측 구조개혁 여파, 그리고 대대적으로 벌인 반부패 캠페인으로 인해 정부지출에 족쇄가 채워지면서 기업의 투자와 민간의 소비가 위축되고 있다.
민영기업 등 민영 사이드는 중국 경제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맡아왔다. 성장의 허파 같은 역할을 했지만 이제 생산성 정체, 임금상승 등 성장의 덫에 걸려 도태의 위기에 몰리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국유은행을 통해 국영기업 위주로 특별 융자도 해주고 저리의 특혜도 제공한다. 공급측 구조개혁을 하면서도 고용을 보장한다.
반면 정부의 정책지원이 성장성 있는 산업에 몰리면서 전통 제조업은 정부의 시선이 닿지 않는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자금도 정책 지원도 기대할 수 없는 처지다. 처절한 각자도생. 중국 민영기업은 출발점에 있든 퇴출 직전에 있든 이 매커니즘이 무겁게 짓누른다.
「 다시 정밀 렌즈공장 사장 얘기로 돌아가보자. 」
소처럼 일해도 손에 쥐는 게 없고 자금줄은 갈수록 말라가는 등 막다른 골목에 처한 그는 공장을 그만 접을까. 그의 소원은 이랬다.
"고향에 돌아가 얼마를 벌든 작은 공장이라도 돌리는 게 마지막 목표입니다. 가족을 부양하며 근근이 먹고 살기만 하면 됩니다."
중국 경제를 초고속으로 성장시켰던 민영 부문의 견인차는 이렇게 식어가고 있다. 민영기업의 숙명이다.
차이나랩 정용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