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람 이야기

전뢰진(90) 조각가 ‘조각일로 사제동행’ - 2018.9.29.조선 外

하늘나라 -2- 2018. 9. 29. 23:00




한평생 차가운 돌에 온기를 새겼다… 이게 내 팔자




구순 맞은 원로 조각가 전뢰진,

제자 20명이 기념 특별전 마련


이름 한가운데 박힌 바위()가 90년째 흔들리지 않는다. "돌은 생명이 없으나 쪼고 깎으면 살아난다. 평생 돌에 생명을 불어넣는 게 내 일이었다."

조각가 전뢰진(90·홍익대 명예교수)의 구순을 기념해 제자들이 준비한 특별전 '조각일로 사제동행'이 서울 인사동 선화랑에서 열리고 있다. 전뢰진의 대표작 15점과 그를 따르는 제자 20인의 작품이 10월 10일까지 선보인다.

원로 조각가 전뢰진은
원로 조각가 전뢰진은 "조각하다 빗나가 돌이 쪼개지면 그 상태에서 다시 구상하라"고 조언했다. "그럼 다른 작품이 나온다. 실패한 것이 아니다." 작가 앞 조각상은 현재 작업 중인 '화애'다. /고운호 기자
사람 좋기로 평판 자자한 전뢰진을 상징하는 건 특유의 온기(溫氣). 가족과 동물의 형상이 전달하는 둥그런 미소다. "처음엔 사실적 묘사에 열중했다. 그러다 기왕이면 기뻐하는 얼굴이면 좋지 않겠나 싶었다." 돌은 하나이나 그의 환조(丸彫)는 여러 모습을 내보인다. "앞에서 보면 여자, 뒤에서 보면 남자, 옆에서 보면 아이…. 재밌지 않나? 여러 반찬 같기도 하고."

부산 태종대 일명 자살바위 위에 1976년 그'모자상(母子像)'설치한 후 죽는 이가 급감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부산시장이 만나자고 하더라. 사람이 자꾸 죽는다고. 조각 하나 세우자고." 전북 익산의 단골 광산에서 대리석을 사다 서울 신림동 집에서 깎았다. 돌이 커서 집 마루를 뜯어냈다. "모자상을 보고 가족을 떠올리니 죽으러 갔다가 발길을 돌린다고 하더라. 다만 내 집은 엉망이 됐다."

1970년대부터 그린 미공개 드로잉 90점도 걸렸다. 주머니에 넣고 다니던 켄트지(紙)에 이따금 떠오른 영감을 옮긴 것으로 지난 5월 제자들이 그의 예전 집에서 뭉치째 400여점을 찾아냈다. 그는 모형 없이 드로잉을 곧장 조각하는데 자전거나 우주선, 고래를 타고 어딘가로 떠나는 밑그림이 많다. "갈 수만 있다면 우주에 가고 싶다. 한데 경비가 얼마나 많이 들겠나…." 드로잉과 글을 모은 단행본도 출간됐다. 제목은 '모든 것이 사랑이었다'.

화가를 꿈꾸며 1949년 서울대 도안과에 입학했으나 고교 은사의 권유로 돌조각을 시작해 1953년 홍익대에 편입했다. 이듬해 심부름으로 서울 반도호텔 분수 제작 현장 감독을 하다가 심심해서 마당에 있던 돌덩이로 소녀 두상(頭像)을 만들었다. "보름 동안 조각해 국전에 출품해 입선했고, 이를 이승만 대통령이 미국 아이젠하워 대통령 선물용으로 가져가면서 이름이 알려졌다." 그는 이 일련의 과정을 "팔자"라는 말로 요약했다.

구순의 현역은 지금도 신림동 작업실과 집을 오가며 혼자 작업한다. 먼지 탓에 창 밖에 연결된 호스를 코에 끼우고 일한 적도 있다. "편하면 작품이 안 나온다"는 게 그의 지 론. 현재 작업 중인 미완성작 '화애(和愛)'도 전시장 한쪽에 있다. 아기를 안은 엄마, 그 뒤에서 강아지가 꼬리를 흔든다. "사람의 마음, 특히 아이의 마음이 전달되면 좋겠다. 돌이 거칠다 하는데, 참 성미가 곱다." 평생 망치와 정을 들었으나 아프지 않은 까닭일 것이다. "술 먹고 넘어져 갈비뼈 부러진 걸 제외하면 부상도 없다. 궁합이 맞는 모양이다."





조각가 전뢰진 구순기념 특별기획초대 “彫刻一路 師弟同行” - 선화랑

게시일: 2018. 9. 18.

조각가 전뢰진 구순기념 특별 기획초대 “彫刻一路 師弟同行”전

주최: 선화랑(대표 원혜경)
주관: 전뢰진기념사업회(회장 김수현)
전시기획: 미술평론가 김윤섭
전시기간: 2018. 9. 12(수) ~ 9. 29(토) *추석명절휴무
전시장소: 인사동 선화랑 1-3층 전시장 전관
출품작품: 전뢰진선생님 대표조각작품15여점, 미공개 드로잉 100여점, 사제동행전 20인조각가의 조각, 드로잉 작품
부대행사: 작은세미나_2018. 9. 12(수) 3:30-4:50pm 전시 오프닝 및 전뢰진 드로잉단행본 출판기념회_2018. 9. 12(수) 5:00pm
전시문의: 02) 734-0458

참여작가

彫刻一路 전뢰진 선생님
師弟同行 20인 조각가(가나다순)
강관욱, 고경숙, 고정수, 권치규, 김경옥, 김성복, 김수현, 김영원, 김창곤, 노용래,
박옥순, 박헌열, 이일호, 이종애, 전덕제, 전소희, 전용환, 정 현, 한진섭, 황순례


전시내용

선화랑(대표 원혜경)에서는 2018년 9월 12일(수)부터 9월 29일(토)까지 우리나라 조각계의 참 스승으로 존경받는 전뢰진 각백(刻伯)님의 구순(九旬)을 기념하여, 조각일로(彫刻一路) 사제동행(師弟同行) 전이란 뜻 깊은 특별전을 마련하였다. 한평생 오로지 돌조각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자 천착해 오신 전뢰진 각백님의 한결같은 가르침은 학계를 초월해, 한국 석조각계의 기반을 다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 ‘조각일로(彫刻一路) 사제동행(師弟同行)‘ 전에는 전뢰진 각백님의 예술혼이 깃든 대표작과 최초 공개되는 드로잉 100여점이 선보일 예정이며, 전뢰진 각백의 드로잉을 한 데 모은 대형 드로잉 단행본을 출판(한길사) 기념식을 함께 연다. 더불어 스승의 신념과 행보를 훌륭하게 이어온 제자 20인의 작품을 함께 소개하고자 한다.

전시서문

전뢰진 각백, 조각일로의 영원한 본을 세우다
김윤섭 (한국미술경영연구소장, 계간조각 편집장)

흔히 화가(畵家)를 높여 부르는 말이 ‘화백(畵伯)’이다. 그러니 조각가(彫刻家)를 높여 부르면 ‘각백(刻伯)’이겠다. 전뢰진 각백을 처음 뵌 것은 23년 전이다. 미술전문지 기자 생활을 시작한 1995년이었다. 적지 않은 인연의 시간이 흘렀다. 당시만 해도 이미 칠순을 바라보는 조각계의 중견으로서 큰 존재감을 지니고 있었다. 미술계 전반의 평가 또한 매우 너그럽고, 누구 하나 적이 없는 ‘포용의 아이콘’이었다.

전 각백을 뵙게 될 사람이면, 첫인상부터 이미 주변의 호평을 이내 수긍하게 될 것이다. 작품은 작가를 닮는다했다. 작품엔 작가의 내적인 감수성이 온전히 스며들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전뢰진 각백만큼 작가와 작품이 한 몸처럼 닮은 경우도 매우 드물지 않을까. 수년 전 전뢰진 작품집이 발간되었을 때 추진위원장을 맡았던 고정수 작가의 “크고 작은 번거로움과 타인을 배려하는 사랑 앞에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고, 욕심 없는 삶속에서 의연하게 지켜 오신 인생철학은 진정한 인간의 가치가 무엇인가를 일깨워 주셨다”고 강조한 대목을 깊이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田雷鎭(전뢰진), 타고 난 이름에서 이미 곧은 신념은 시작되었다. 우레 혹은 천둥 뢰(雷), 진압할 진(鎭). 해석하면 ‘우레와 천둥의 험한 기운을 스스로 진압할 수 있는 성품’을 지닌 셈이다. 그래서 비록 흔하디흔한 화강암 돌이지만, 억겁의 정질로 완성된 전 각백의 작품엔 ‘태고의 기운’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젊은 시절, 이승만 대통령이 미국 아이젠하워 대통령을 방문하며 선물용으로 ‘전뢰진 작가의 돌조각’을 가지고 간 것도 우연은 아닐 것이다. 아마도 전 각백 작품에 스민 소박한 고졸미에서 풍기는 따스함이 우리의 동시대적 감성과 민족적 감성혼을 대변하기에 충분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나라 조각계의 참 스승으로 존경받아온 전뢰진 각백이 구순(九旬)을 맞았다. 구순(九旬)은 나이 ‘아흔 살’ 90세를 높여 부르는 우리말이다. 한자 ‘순(旬)’이 ‘열[十]’을 뜻하기에 ‘9×10=90’이 된 셈이다. 일본식으론 ‘아홉 구(九)’와 ‘열 십(十)’을 초서(草書)로 써서 세로로 합한 모양이 ‘졸(卒)’자와 같다하여 90세를 ‘졸수(卒壽)’로 부르기도 한다. 여하튼 이전엔 아흔 살이 그만큼 귀했지만, 현재는 경우에 따라 청년 못지않다. 전 각백이 그렇다. 지금도 여전히 망치와 정을 들고 돌조각 작업을 쉬지 않고, 한 자리에서 막걸리 서너 병은 거뜬하다. 전 각백 앞에선 진정으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이번에 선화랑과 전뢰진기념사업회(회장 김수현)가 함께 마련한 조각일로(彫刻一路) 사제동행(師弟同行)‘전은 오로지 ‘조각가 전뢰진’을 위한 뜻 깊은 특별전이다. 지난 60여 년 동안 한평생을 돌조각에 매진해온 전 각백의 작가정신을 새롭게 되새겨보자는 남다른 의미를 가졌다. 전시제목에 ‘사제동행(師弟同行)’이란 표현처럼, 전뢰진 각백의 신념과 행보를 이어온 제자들이 함께 나서 완성한 아름다운 전시의 본이다. 특히 전 각백의 예술혼이 깃든 대표작은 물론 최초로 공개되는 드로잉 100여점이 선보인다.

작가에게 드로잉은 작품을 위한 생각의 첫 출발점이다. 전 각백의 드로잉 역시 작품의 특성이 고스란히 함축된 간결한 선묘의 백미를 자랑한다. 허투루 버릴 선이 하나 없이, 마치 만들어진 작품을 보고 그린 것처럼 실감난다. 그만큼 드로잉 자체만으로도 작품성과 완성도를 겸비했다. 평소 작은 스케치북 노트를 지니고 다니며, 떠오른 순간적인 감흥을 놓치지 않으려 애쓴 작가적 열정이 느껴져 더욱 설렌다. 더구나 가장 왕성기였던 30여년 이전의 드로잉이 대거 선보이는 것은 이번 전시가 처음이라서 ‘전뢰진 돌조각의 새로운 면모’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전뢰진 각백의 조각은 마치 회화의 부드러움을 돌에 옮긴 것처럼 생동감이 넘친다. 이렇게 달관한 여유로움을 습득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타고난 재능도 있어야 하겠지만, 아마도 기복 없이 꾸준한 노력을 병행하는 삶의 자세가 더욱 주요하게 작용했을 것이다. 그 연구하는 자세의 실증이 바로 드로잉이다. “나는 그림을 결코 예술작품으로 그리지 않는다. 모든 것은 연구이다. 나는 끊임없이 탐구를 하며, 내 모든 시도는 논리를 바탕으로 한다. 그래서 나는 그림에 번호를 매기고 날짜를 기입한다.” 피카소의 말이다. 전 각백 역시 가벼운 드로잉에도 제작년도를 기입했다. 대가(大家)들의 예술관이나 작가로서의 자세는 통하기 마련이다.

이번 ‘조각일로 사제동행’ 전의 또 다른 하이라이트는 부대행사들이다. 우선 전뢰진 각백의 드로잉을 한 데 모아 대형 드로잉 단행본을 한길사에서 출간했다. 한양여대 고종희 교수의 시선으로 정리된 이 드로잉북은 무려 4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이다. 아마도 개인 미술가의 드로잉 전문서적 중엔 국내 최대 규모일 것이다. 더구나 전 각백 뿐만 아니라 적지 않은 주변 인물들을 일일이 인터뷰하여 정리한 글을 요소요소에 포함해 ‘드로잉 아트에세이’ 역할도 한다. 드로잉을 매개로 ‘전뢰진의 예술가적이고 인간적인 면모’를 동시에 입체적으로 가늠할 수 있어 기대감을 더욱 부추긴다.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제자 20명의 작품이 함께 한다는 점이다. 강관욱, 고경숙, 고정수, 권치규, 김경옥, 김성복, 김수현, 김영원, 김창곤, 노용래, 박옥순, 박헌열, 이일호, 이종애, 전덕제, 전소희, 전용환, 정 현, 한진섭, 황순례. 적게는 10여년 많게는 40여년 이상 인생 후배이자 제자들이다. 전 각백을 기점으로 한국 돌조각의 약사(略史)를 지탱해온 주역들이 한 자리에 모인 셈이다. 자칫 ‘돌’이란 소재는 표현의 범주가 넓지 않고 한정적일 것이란 선입견을 가질 수 있다. 그 생각이 얼마나 기우((杞憂))였나를 이번 ‘사제동행(師弟同行)’ 전시가 보기 좋게 증명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전뢰진 각백의 ‘조각일로(彫刻一路)’ 정신을 다시 생각할 수 있는 작은 세미나도 마련되었다. 주제발표는 4명이 나선다. 전뢰진기념사업회 김수현 회장은 ‘왜 한국의 조각계에서 전뢰진 작가와 작품세계를 재조명하고 주목해야 하는지’를 발표한다. 이어서 수십 년을 함께 활동해온 고정수 원로조각가는 ‘동료 조각가에게 전뢰진 각백은 어떤 존재였는지’를 다시 한 번 되새길 수 있도록 증언한다. 또한 성신여대 김성복 교수는 ‘전뢰진 각백을 본으로 삼아 정진하는 후배 조각가들의 마음가짐과 새로운 비전’에 대해 언급하며, 고종희 교수가 ‘드로잉으로 새롭게 만나는 전뢰진 각백의 인간상’이란 주제로 마무리하게 된다.

누구나 예술은 좋아할 수 있어도, 아무나 예술가가 될 수는 없다. 예술가로서 살아가는 것은 개인의 노력으로 가능하겠지만, 예술계가 존경하는 예술가로 남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그래서 역사에 한 획의 존재감을 남길 만한 예술가의 행보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조각일로(彫刻一路) 사제동행(師弟同行)’ 전은 ‘한국 돌조각사의 새로운 이정표’로 남을 것이라 기대된다. 그것은 ‘전뢰진’이란 주인공과 성심으로 동행해준 ‘훌륭한 조연(助演)’인 제자들이 합심해 연출한 덕분일 것이다. 가는 것을 멈추면 더 이상 길이 아니다. 그런 면에서 ‘조각일로(彫刻一路)’는 사제동행으로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