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람 이야기

이국화(54) 국화양봉원 대표 탈북민 20190518 kbs外

하늘나라 -2- 2019. 5. 19. 14:19




[통일로 미래로] 꿀벌과 함께…탈북민 ‘달콤한 인생’ / KBS뉴스(News)  

게시일: 2019. 5. 17.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입니다.
꽃이 피면서 벌들의 움직임도 바빠지는데요.
꿀을 채취하는데 가장 중요한 시기가 바로 지금 5월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꿀 생산하기가 쉬운 일이 아니라고 하네요.
생각보다 훨씬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데요.
오늘 통일로 미래로에선 이 어려운 양봉업에 도전장을 던진 한 탈북여성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벌써 6년 째 양봉업을 이어오고 있다는데요.
열 개로 시작한 벌통이 지금은 2백 개에 이른다고 합니다.
끊임없는 노력과 주변의 도움이 더해진 결과라고 하는데요.
채유나 리포터와 함께 만나보시죠.


[리포트]
햇살이 따뜻한 5월의 주말, 이른 아침부터 분주한 모습입니다.
벌들의 날갯짓 소리로 가득한 이곳은 탈북민 국화 씨가 운영하고 있는 양봉장입니다.
5월은, 일 년 중 가장 바쁜 달이라는데요.


[이국화/양봉사업가·탈북민 : "(벌들이) 꿀을 물어오는 기간은 10일 정도밖에 안 되거든요. 그래서 우리 양봉가들에게는 정말 중요한 시기라고 볼 수 있죠. (지금이 그 황금 시기인가요?) 그렇죠."


올해 벌꿀 농사는 어떤지 궁금한데요.


[이학동/남편 : "올해는 꿀이 좀 많이 들어왔습니다. 작년에는 동해를 입어서 아카시아 꿀이 많이 들어오질 못했는데 올해는 기온이 좀 따라주니까 (꿀이 많습니다)."]


이곳은 올해로 6년째가 된 국화 씨의 양봉장입니다.
200여개의 벌통, 약 1400만 마리의 벌들이 부지런히 모여 꿀을 만드는 곳인데요.


꿀 수확인 한창인 5월, 벌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입니다.
특별한 손님이 양봉장을 찾았습니다.


국화 씨의 양봉 스승인 영일 씨가 작업장을 방문한 건데요.
[손영일/양봉전문가/경력 27년 : "빨리빨리 잘하네. (아이고 이제 6년 됐는데 이만큼도 못하면 되나요.) 고수됐네, 고수 (그럼요) 뿌듯하다, 쳐다보기만 해도. (고맙습니다)."]


이제는 스승님도 인정할만한 실력이지만 사실 국화 씨가 8년 전 한국에서 처음 한 일은 양봉이 아니었습니다.


[이국화/양봉사업가·탈북민 : "제가 톨게이트에서 근무했었는데요. 톨게이트에서는 3년밖에 근무를 못 한다고 그래서 3년 후에는 뭐라도 해야 하는데 그때까지도 뭘 해야 할지 모르고 있었어요."]


당장 구직에 나서야 하는 막막했던 순간, 국화 씨가 찾은 새로운 길은 바로 양봉이었습니다.
남편이 지인의 양봉 일을 돕고 품삯으로 받아온 열 개의 벌통이 새로운 도전이 된 건데요.


지역에서 터를 잡고 일해 왔던 전문가가 볼 때, 국화 씨 솜씨는 처음부터 남달라 기술 전수가 수월했다고 합니다.


[손영일/양봉전문가/경력 27년 : "열두 세 통을 가지고 시작했는데 일 년 만에 우리도 상상도 못 하게 60통까지 불려버리더라고요. 또 2년째 되니까 120통 넘게 불리고 3년째 되니까 200통을 넘겨버리더라고요. 나도 가르치는 입장에서도 굉장히 놀라웠어요."]


하지만 양봉 일을 제대로 된 사업으로 성장시키기까지, 겪어야했던 어려움도 만만치 않았다는데요.


[이국화/양봉사업가·탈북민 : "이걸 들어서 옮길 때 엄청 무겁습니다. 이 안에 벌만 있는 게 아니고 꿀도 같이 들어있거든요. 그런 과정을 이백 통 넘게 하다 보니까 그럴 때는 정말 허리도 아프고 관절도 아프고..."]


노동도 고되지만 더욱 힘든 것은 낯선 땅에 정착해 느끼는 외로움입니다.
그럴 때면 배달까지 직접하며 비슷한 처지의 탈북민을 찾아나서는데요.


은영 씨는 국화 씨 꿀만 먹는 최고의 고객 중 한명이기도 합니다.
가공하지 않은 꿀을 먹어온 탈북민들에게 국화 씨 꿀은 고향의 맛입니다.


[송은영(가명)/2011년 탈북 : "(언니 꿀 맛있나요?) 당연히 맛있죠. 대한민국에서 최고죠. 북한에는 진짜 토종꿀이거든요. 여기처럼 가공할 수가 없어요. 진짜 꿀을 먹어 봤으니까 아는 거죠."]


늘 밝은 국화 씨지만 고향 얘기가 나올 때면 먹먹한 마음을 숨길 수 없습니다.


[이국화/양봉사업가·탈북민 : "난 진짜 씩씩하게 살았는데 중국에서. 엄마 돌아가시고 나서 눈물이 많아지고. 자꾸 엄마 말고 또 다른 사람들이 못 보고 돌아가시면... 형제도




경남 마산 국화양봉원 이국화 2016.11.25

지금은 무려 200통으로 늘어났다. 원래 양봉 기술은 다 배우고 죽은 사람이 없다고 할...씨는 행복한 웃음을 지었다. 고향으로 보내는 영상편지-국화양봉원 이국화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