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람 이야기

국수호(68) 안무가 겸 춤꾼 ‘조택원 학춤’ - 2016.7.5.중앙 外

하늘나라 -2- 2016. 7. 5. 16:03




살포시 지르밟은 버선발…‘학’ 76년 만에 다시 춤추다

한 마리 학(鶴)이 날아온 듯 우아하게 치켜든 소맷자락이 날개처럼 휘어진다. 살포시 지르밟은 버선발이 재게 움직이니 새 발자국이 찍히는듯하다. 학창의를 정갈하게 차려입은 국수호(68)씨 홀로 추는 학춤에 관람객 시선이 출렁였다. 지난 3일 오후 일본 돗토리 시 와라베칸(童館) 소극장은 잠시 76년 전 역사 속으로 순간 이동했다. 조선 신무용가 조택원(1907~76)이 1940년 일본 도쿄 히비야공회당에서 선보였으나 악보를 분실해 자료만 남아있던 한국 최초 무용극 ‘’ 의 일부인 ‘’ 장면이 이날 11분 분량으로 복원돼 무대에 오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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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일본 돗토리시 와라베칸에서 조택원 안무의 조선 최초 무용극 ‘학’을 76년 만에 복원해 공연하는 국수호씨. [사진 연낙재]


아아, 봄이로구나/ 겨우내 얼었던 얼음이 녹아, 시냇물 졸졸 흐르누나/ 자아, 흐르는 물에 부리를 씻어라…/ 자아, 다리를 쭉 뻗고 날개를 펼쳐라/ 몸도 마음도 활짝 펴라.” 소프라노 마츠다 치에의 노래에 국씨의 몸짓이 하늘로 솟구친다. 일제강점기 조선인의 고단한 심신을 학의 비상으로 풀어준 작곡자의 마음이 도탑다. 곡 중간에 ‘아리랑’ 선율을 조화시킨 배려도 뭉클하다.


국수호 ‘조택원 학춤’ 복원 공연


1940년 일본 작곡가 다카기와 협업
악보 사라져 11분 분량으로 재구성
근대 한·일 예술혼 교류 되살렸다



학(鶴)’은 무용시(舞踊詩)라 불린 전 4막의 1시간짜리 대작이었다. 조택원은 일본 작곡가 다카기 도로쿠(高木東六, 1904~2006)에게 음악을 부탁하며 조선풍 발레 조곡을 꿈꿨다. 전통무악의 거장 한성준(1874~1941)에게 배운 학춤을 바탕으로 아비 어미 학과 새끼들이 사계절을 보내는 전원 풍광을 동양철학이란 주제로 엮었다. 올해 한성준예술상을 받은 국씨가 ‘’을 되살려냄으로써 한성준-조택원-송범-국수호로 이어지는 춤 계보가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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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 일본 도쿄 초연 당시 학 분장을 한 조택원.


이날 공연에 앞서 열린 학술발표회에서는 다카기의 옛 집에서 악보를 발굴한 후지이 코키(藤井浩基) 시마네대학 음악교육과 교수와 이를 기증받은 춤자료관 연낙재 관장인 성기숙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각기 관점에서 ‘’을 평가했다. 후지이 교수는 “오늘 이 자리는 돗토리 현 출신 근대 작곡가인 다카기의 10주기 기념을 겸해 더 뜻 깊다”며 “프랑스 유학 당시, 모리스 라벨에게 영향 받은 흔적이 ‘볼레로 풍’ 가락에 남아있다”고 분석했다. 성 교수는 “근대 시기 한국과 일본 예술계의 두 거장이 협업해 일궈낸 공연문화유산을 오늘의 시각에서 재구성하고 반추한다는 점에서 귀하고 가치 있는 작업”이라고 의미를 뒀다. 피아노 연주를 맡은 마츠모토 테페이(松本哲平) 코마자와여대 교수는 “일제강점기 양국의 종속 관계를 뛰어넘은 예술혼의 교류를 통해 그 시대를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됐다”며 기뻐했다.

이날 행사를 지켜본 다카기 작곡가의 딸 다카기 미도리씨는 “선친의 음악을 멋진 춤으로 표현한 국수호 선생의 독특한 안무 창작과 발놀림 등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고마워했다. 협소한 공간 탓에 130여 명 초대 손님만 모신 공연장에는 돗토리 시 거주 재일교포들이 찾아와 감동의 순간을 함께 했다.

’은 다음달 26일 서울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역사의 계승과 확산이라는 새 경지를 선보인다. 국수호씨를 비롯해 현대무용의 김복희, 발레의 이원국씨가 합세해 장르를 뛰어넘은 재창조를 선보일 예정이다.
 
조택원=  근대 신무용을 개척한 대표 안무가 겸 춤꾼. ‘춤이란 움직이는 사색’이라 정의한 ‘무상론(舞想論)’을 정립하고 한국 춤을 무대예술로 승화시킨 선구자다. 일제강점기로부터 1970년대까지 약 1500 여회 체계적인 해외순회공연을 벌여 한국 춤의 세계화를 일궜다. ‘만종’ ‘포엠’ ‘가사호접’ ‘춘향조곡’ ‘’ 등의 신무용 명작 레퍼토리를 남겼다. 1974년 금관문화훈장 제1호를 수상했다.

돗토리시(일본)=정재숙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국수호 명무 - 남무

게시일: 2016. 5.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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