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람 이야기

신창연(53) 여행박사 창업주 - 2016.7.9. 조선 外

하늘나라 -2- 2016. 7. 9. 16:17




"지진이든 망언이든 터지면 日 관광객 뚝…

'돗토리 9900원'도 그렇게 나와"




젊은 창업자의 멘토 자청한 '여행박사' 창업주 신창연


여행사 직원 시절 10년
새벽회의·복장규제·사장실
내가 나중에 사장 되면 하지 말아야 할 것 배워

직선제로 사장자리 밀려나
매일 직원들과 점심 먹다가 외부 사람들과 약속 늘어
사장이 '바람'났다는 걸 직원들이 귀신같이 알아채

실속 여행 꿀팁

남들 안갈 때 떠나라
여행사 직원과 친해져라
일단 가면 다 쓰고 와라



지난 5일 서울 갈월동 '여행박사' 사옥. 악수하려고 손바닥을 내밀었는데 오바마식(式) '주먹치기'가 돌아왔다. 졸지에 가위바위보 하는 모양새가 됐다. 신창연(53) 여행박사 창업주와의 첫 만남이었다. 게다가 반바지에 슬리퍼 차림이라니 무슨 콘셉트인가 싶었다.

신씨가 2000년 창업한 이 여행사는 지난 2012년 제18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화제가 됐다. '전 직원이 투표하면 1억원을 용돈으로 풀겠다'는 당시 대표 신씨의 공약 때문이었다. 200명 되는 직원 모두가 투표했고, 그해 12월 직원 한 명당 50만원씩 용돈이 들어왔다. '마라톤 기록을 1분 줄일 때마다 보너스 100만원을 준다', '골프 입문 1년 내에 100타 달성 시 1000만원을 준다', '1년에 서너 번씩 해외여행을 보내준다', '회사 10분 거리에 오피스텔을 구해준다' 등 회사 복지정책이 언론에 오르내렸다. 팀장급 이상 임원을 직원들이 투표로 뽑는 인사 방식도 주목받았다.

여행박사 창업주 신창연이 회사 안내 데스크에 걸터앉았다. 밥때 모르고 일하던 시절, 들고 있는 종을 치며 “밥 좀 먹으며 하자”고 직원들을 불러모았다고 한다. 그는 “한번 망하고 난 뒤 남은 직원들끼리 둘러앉아 밥 먹던 그때가 제일 재밌었다”고 말했다.
여행박사 창업주 신창연이 회사 안내 데스크에 걸터앉았다. 밥때 모르고 일하던 시절, 들고 있는 종을 치며 “밥 좀 먹으며 하자”고 직원들을 불러모았다고 한다. 그는 “한번 망하고 난 뒤 남은 직원들끼리 둘러앉아 밥 먹던 그때가 제일 재밌었다”고 말했다. / 이진한 기자


"투표로 사장 뽑자" 했다가 낙선

2013년 10월, 신씨는 자신이 도입한 인사 방식의 역풍을 맞았다. 재신임 투표에서 떨어져 사장 자리를 내려놓아야 했다. 찬성표 70%만 얻으면 됐지만 앞서 자신이 먼저 "80% 이상 찬성표가 안 나오면 대표직을 내려놓겠다"고 공언했다. 한 표가 부족해 똑 떨어졌다.

―괜히 객기 부렸다고 후회하진 않았나.

"예상은 했다. 징조가 있었다. 2009년까지만 해도 직원들하고 밥솥에 50인분 밥 지어놓고 점심 같이 먹고 그랬다. 어느날 돌이켜보니 직원들보다 외부 사람들과 밥 먹는 때가 많더라. 사장이 바람났다는 걸 직원들이 귀신같이 알았다. 그래서 오히려 기준을 높였다. 스스로 검증받고 싶었던 거다."

―그래도 10년 넘게 지켰던 자린데 상처받진 않았나.

"원래 뭘 마음에 담아두고 그런 성격이 아니다. '사초(사장의 일본어. 당시 직원들이 신씨를 그렇게 불렀다)는 입이 두 개고 귀가 하나예요' 같은 말은 가슴에 콕 박혔다. 사장직을 그만두니 내가 직원들을 참 많이 착취했었구나 싶더라. 어느새 돈도, 자유도, 나이도 우리 회사에서 내가 제일 많아졌음을 깨달았다."

경북 문경 출신인 신씨중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상경해 구두닦이·포장마차·신문 배달 등 아르바이트 수십 개를 전전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전공 서적 끼고 길 가는 여대생을 보니 캠퍼스에서 연애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스물넷에 경원대 관광경영학과에 입학했다.

―왜 하필 관광경영학과였나.

"거기 가면 놀고 먹으며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미 10년 넘게 돈 버는 재주만 익힌 상태에서 입학했다. 공부한 기억은 별로 없고 축제 때 칵테일 만들어 팔고 졸업식 때 꽃 팔았다. 당시 '미미와 철수의 청춘 스케치'의 이규형 감독이 일본으로 무전여행 다녀왔다는 얘기를 신문에서 읽었다. 비행기삯 마련해서 일본 도쿄로 떠났다. 불법 체류하며 막노동 3개월 하니 2년치 등록금이 벌렸다."

―여행사는 어쩌다 입사했나.

"역시 놀고 먹으며 다닐 수 있을 것 같았다(신씨는 1990년 아주관광에 입사해 10년간 직장 생활을 했다). 회사서 양복 입으라 해도 죽어라 청바지만 입고 다녔더니 어느날 자회사로 좌천됐다. 부산과 일본 후쿠오카를 잇는 배편을 운항하는 해운회사였다."

위기의 순간마다 '대박'

―생각보다 꽤 오래 다녔다.

"고문관이었지만 결국 회사 망할 때까지 붙어 있었다. 10년 동안 내가 사장 되면 하지 말아야 할 것들만 보였다. 새벽회의, 복장 규제, 운전기사, 사장실…. 2000년에 동업자 셋하고 250만원을 모아서 일본 여행을 주력으로 내건 여행박사를 차렸다. 해운회사에서 일했던 경험을 살려 '배로 가는 일본 여행' 상품을 20만원대에 내놨다. 일본 패키지 여행이 80만원대를 웃돌던 시절이다. 국내 여행 가도 20만원은 기본으로 깨지는데 그 돈으로 일본 규슈 지역을 5일간 돌고 올 수 있게 만들었다. 해외여행 한번 못 가본 사람들이 신규 고객으로 들어왔다. 시간 없는 직장인들한텐 주말에 출발해 월요일 새벽에 귀국하는 '1박 3일 올빼미 도쿄여행' 상품을 내놓았더니 불티나게 팔렸다. 2007년쯤 되자 연매출 150억원이 넘었다."

―그렇게 잘나가다가 왜 인수·합병을 했나.

"2008년 당시 업계에서 상장 붐이 일었다. 욕심이 났다. 우리 직원들도 돈 많이 벌게 해주고 싶었다. 당시 T사와 인수·합병을 해 에프아이투어라는 새 이름으로 상장했다. 그러나 얼마 못 가 모기업의 불법 대출과 주가 조작으로 상장 폐지됐다. 합병 8개월 만에 파산까지 갔다."

―그런데 어떻게 6개월 만에 재기했나.

"연봉 높은 순으로 직원들 월급을 깎다가 도저히 안 되겠더라. 당시 직원이 200명이 좀 넘었는데 지금 나가면 퇴직금이라도 받을 수 있으니 나갈 사람은 나가라고 했다. 126명이 끝까지 남았다. 모두 '연봉 1원'에 계약했다. 부모한테 돈 꿔서, 전세금 빼서 직원들이 투자금 23억5000만원을 모아왔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가 한 차례 휩쓸고 지나가자 다시 여행 성수기가 왔다. 6개월 만에 직원들 월급도 주고 회사 건물도 사고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다."

―겨우 일어나니까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이 터졌다. 당시 내놓은 '일본 돗토리 9900원'은 미끼 상품인가.

"방사능 공포 때문에 나이 든 사람은 아무도 일본에 안 가려 했다. 하지만 진짜 위험한 곳이면 정부에서 못 가게 막는다. 항공편이 있다는 것은 가도 된다는 뜻이다. 9900원 상품도 거저 떼왔다. 관광업이 침체되자 일본 지자체, 선사(船社), 호텔에서 너도나도 먼저 협찬해주려 했다. 배는 매일 뜨는데 자리는 텅텅 남았다. 그걸 다 공짜로 가져왔다. 돈 한 푼 안 들이고 9900원씩에 상품을 판 거다. 미야자키 2박 3일 패키지도 당시 10만원대까지 내려갔다. 지진이든 독도 망언이든 문제가 생기면 패키지부터 손님이 뚝 끊긴다. 교통과 숙박만 포함된 자유여행 상품이 싸게 나오자 젊은이들이 벌떼처럼 몰렸다."

2013년 여름 일본 미야자키로 떠난 첫 꼴통 투어. 처음 보는 사람 수십 명이 4박 5일 동안 밤낮으로 웃고 떠들었다.
2013년 여름 일본 미야자키로 떠난 첫 꼴통 투어. 처음 보는 사람 수십 명이 4박 5일 동안 밤낮으로 웃고 떠들었다. / 신창연씨 제공


2030 '꼴통'들의 창업 멘토로

여행박사는 2014년 6월 모바일 벤처회사 옐로모바일에 인수·합병됐다. 여행박사 브랜드와 영업권이 200억원에 팔렸다. 그중 현금 60억원이 직원이자 주주인 110명에게 돌아갔다. 2008년 회사가 망했을 당시 '1원 계약'을 했던 직원들이 수천만원씩 받아갔다. 직원들 부자로 만들겠다는 신씨의 목표가 어느 정도 이뤄진 셈이다. 여행박사는 지난해 기준 매출액 266억원 규모의 회사로 컸다.

―21% 지분 갖고 있던 본인도 부자가 됐다. 그 돈으로 뭐하고 사나.

"내가 요즘 서울에 있는 때가 한 달 중 일주일도 안 된다. 그냥 이 옷차림으로 공항 가서 표 끊고 비행기 탄다. 내일 죽어도 상관없을 정도로 내 맘대로 살고 있다. 사장 잘리고 제일 좋은 점이 내 또래 나이 든 사람들 안 만나도 되는 거다. 젊은 사람들 만나려고 부단히 노력한다. 특히 스타트업 창업자들에게 자칭 엔젤 투자자로 나섰다. 지난 3년간 투자한 스타트업만 50개가 넘는다. 다른 것 안 보고 대표 한 명 만나보면 답이 나온다. 나는 마흔에야 내 사업을 시작했는데 젊은 사람들은 하루라도 일찍 도전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하나 규칙적으로 하는 일이라면, 3년 전 '꼴통 투어' 상품을 만들어서 개그맨 오종철, 총각네야채가게 이영석 대표와 함께 3개월마다 한 번씩 해외여행을 간다. 참가비 100만원만 내면 누가 오든 상관없다. 주로 대학생이나 취업 준비생, 젊은 창업자 등 20~30 세대가 모인다. 베트남·캄보디아·일본·태국 등 벌써 열세 번 다녀왔다."

―패키지 상품치고 비싼 편인데 해외여행을 대중화하겠다는 초심을 잃은 게 아닌가.

"이제 여행 싸게 갈 사람들은 다 싸게 가는 시대다. 시간 되고 꼴통 투어 취지에 공감하는 사람들만 받겠다는 거다. 가이드 팁과 쇼핑도 없고, 출발시간이나 계획표도 없다. 그냥 하루 종일 숙소에 틀어박혀 새벽까지 연애 상담할 때도 있다. 하루는 공항에 제시간에 안 온 사람들이 있기에 그냥 떼어놓고 한국에 왔다. 전화로 막 항의를 하더니 결국 제풀에 지쳐 남은 세 명이 일주일 더 무전여행을 했단다. 그 청년들이 지금 다 자기 사업 하고 잘살고 있다.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이고 부딪쳐보는 것, 그게 여행이 주는 힘이고 여행사가 앞으로 팔아야 하는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실용적인 여행 '꿀팁' 좀 알려달라.

"첫째, 남들 안 갈 때 가라. 2005년에 태풍이 온다고 해서 일본에 각서 쓰고 갔다. 내일 죽을지도 모르는데 뭐가 무서워서 몸을 사리나. 째, 여행사 직원을 사귀어라. '사'자 들어가는 직업(변호사, 의사, 여행사라고 그는 말했다) 알아둬서 나쁠 게 없다. 시간 많으니 싼 표 나올 때 연락달라고 해놓으면 탐색 비용을 줄일 수 있다. 셋째, 일단 갔으면 쓰고 와라. 대학생 때 일본에서 도쿄 디즈니랜드를 가고 싶은데 돈 아까워 못 갔다. 결국 나중에 도쿄행 비행기표를 다시 끊어서 갔다. 입장료 3만원이면 될 것을 30만원에 막았다."

―연차도 눈치 보며 쓰는 한국 직장인들에게는 비현실적인 얘기 같은데.

"그 정도 용기도 없으면 평생 못 간다. 직장에서 핵심 인재가 돼라. 그러고 나서 지랄 염병을 해서라도 꼭 가라."







여행박사 홋카이도 [70B_t]

게시일: 2015. 6. 3.





신창연(48) 여행박사 사장 - 2011.7.29.중앙 外  http://blog.daum.net/chang4624/3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