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25년차 手語 베테랑… "말투 강한 후보 통역 땐 손짓 커져요"
TV 대선토론 手語 담당한 조성현 수어통역사협회장
20년 전 대선 때부터 맡아
당시 手語 대신 手話로 불려… 지금처럼 한쪽 끝 배치했는데
TV 보는 데 거슬린다며 항의 전화 많이 왔다더군요
19대 대선 후보마다 특징
문재인·안철수 후보는 강약 없고 부드러운 편이라
手語 동작이 수그러들어 다른 후보는 공격적이라…
넥타이 안 매는 이유
16대 대선 때 황금색 착용 특정 黨 색깔과 비슷해 혼쭐
세월호 땐 검은색 매려다가… 이젠 웬만하면 안 맵니다
TV 대선 토론 끝나면 녹초
2시간 내내 카메라 앞에서 허리 꼿꼿이 펴고 목 들고 정좌로 앉아서 수어 통역
꿈결에도 手語 통역
수어로 잠꼬대하기도… 주변서 막 놀리기도 해요
제19대 대선을 앞두고 지난 2일 열린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 주관 방송 토론회. 한마디라도 더 하려는 후보들만큼이나 바쁘게 손을 움직인 사람이 수어(手語) 통역사 조성현(51)씨다. 토론회 화면 오른쪽 아래 동그라미 안에서 후보들의 말들을 수어로 통역하느라 "후보들보다 다섯 배는 더 바쁘다"고 했다. 지난달 26일 서울 여의도 KBS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언제 통역할 일이 생길지 몰라 계속 대기해야 해서 방송사에서 보자고 했다"며 "대부분 일정이 잡혀 있지만 혹시 긴급 뉴스가 생기면 통역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수어 통역 방송만 25년째
그는 25년차 수어 통역사다. 뉴스를 비롯한 프로그램은 1992년부터, 대선 토론은 1997년 제15대 대선 때부터 맡았다. 당시 최초로 합동 TV 토론회가 열렸다. 당시는 청각 장애인 언어를 수화(手話)라고 칭했으나 작년 한국수어법이 마련되면서 공식 명칭이 '수어'로 바뀌었다. 수화가 하나의 언어로 인정받은 셈이다.
수어 통역 방송만 25년째
그는 25년차 수어 통역사다. 뉴스를 비롯한 프로그램은 1992년부터, 대선 토론은 1997년 제15대 대선 때부터 맡았다. 당시 최초로 합동 TV 토론회가 열렸다. 당시는 청각 장애인 언어를 수화(手話)라고 칭했으나 작년 한국수어법이 마련되면서 공식 명칭이 '수어'로 바뀌었다. 수화가 하나의 언어로 인정받은 셈이다.

―처음 대선 토론 통역할 때와 지금이 많이 다른가요?
"그때는 수어가 뭔지 모르는 사람들도 많았어요. 1989년 장애인복지법이 만들어지면서 처음으로 방송국에 수어를 도입했으니까 아직 대중에게 낯설 때였죠. 지금이랑 비슷하게 화면 한쪽 끝에 통역사를 배치했는데, TV 보는 데 거슬린다며 항의 전화가 많이 왔었어요. 지금은 수어가 뭔지 모르는 분들은 거의 없지요. 제가 처음 수어를 배운 것도 그때쯤이었어요."
―화학공학과를 졸업했는데 수어 통역을 하고 있네요?
"동네에서 함께 자란 소꿉친구 때문에 이 일을 하게 됐어요(웃음). 그 친구가 여자였는데 자기 남자 친구라며 청각 장애인을 데리고 나왔어요. 수어로 막 뚝딱거리더니 둘이 깔깔거리면서 웃는 거예요. 너무 황당하더라고요. 내 소꿉친구를 뺏긴 것 같아서 조금 질투를 했던 것도 같아요. 그때 처음 수어를 배우기 시작했어요. 집이 경기 파주였는데 서울 역삼동까지 수어를 배우러 다녔어요. 그 뒤로 2년 정도는 미친 듯이 배웠죠."
―그때쯤 처음 방송을 한 건가요?
"1992년 KBS에서 방영한 '사랑의 가족'이라는 장애인 프로그램에서 처음 수어 통역을 했어요. 당시엔 사회복지원에서 일하면서 일주일에 이틀 정도 아르바이트 식으로 왔다갔다했죠. 그 뒤에 방송이 많아지면서 15년 정도 일했던 복지원을 그만두고 방송에만 매진하게 됐어요. 작년 한 해 방송 출연 횟수만 1000번 정도 되는 것 같아요. 한때는 365일 내내 방송한 적도 있어요. 휴가는커녕 쉬는 날조차 없던 때였죠. 요즘은 후배들이 많이 생겨서 주말엔 대개 쉬어요."
문·안은 부드럽고 홍·유·심은 공격적
그가 화제가 된 건 지난 18대 대선 때부터다. 이정희 전 후보의 말이 너무 빨라 그의 손도 덩달아 빨리 움직여야 했기 때문이었다. 후보들의 말을 입으로 읊으면서 통역을 하다 보니 사회자가 "물 좀 드시고 하시죠"라고 권했고 "후보자보다 통역사가 물을 먼저 마시더라"는 말도 들었다. 올해는 대선 출마자가 많은 만큼 주요 정당 후보 다섯 명, 군소 후보 아홉 명의 말을 전달하느라 정신없다고 했다.
―통역을 하다 보면 후보마다 특징도 눈에 띌 것 같아요.
"홍준표·심상정·유승민 후보는 말투가 직설적이고 공격하는 내용이 많아요. 그러면 저도 강하게 딱딱 끊어서 전달해요.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는 강약이 별로 없고 부드럽게 이야기하는 편이에요. 공격을 받아도 두루뭉술 넘어가는데 그러면 제 손짓도 부드러워지고 동작도 수그러들어요."
―어떤 후보 의견이 가장 잘 전달되나요?
"홍준표 후보가 가장 전달이 잘 됩니다. 강하게 말할수록 수어 동작이 커지거든요. 수어로는 싸움을 전달할 때가 가장 전달력이 좋아요. 홍 후보는 토론 때 싸우는 것처럼 되묻거나 자기주장을 내세우는 편이죠. 그러면 전달하기도 편하고 보는 청각 장애인들도 명확하게 인지하고요."
―후보들 이름은 어떻게 표현하나요?
"문재인이라고 하려면 맨 처음에만 'ㅁㅜㄴㅈㅐㅇㅣㄴ'이라고 표현해주고 그 뒤로부터는 '문 후보'로 표현합니다. 평소에 우리가 이름을 전부 부르지는 않는 것과 똑같죠. 자모음을 조합하지 않더라도 웬만한 성씨는 수어로 다 표현이 됩니다. 김씨를 표현할 땐 양손 검지와 엄지로 동그라미를 만들어 돈을 표현해요. 그러면 쇠 금(金)자와 비슷해지죠."
―다섯 명이 말하는 걸 통역하려면 몸이 부족하겠어요.
"화면 왼쪽에 문재인, 오른쪽에 안철수 후보가 등장한 상태라면 문 후보가 이야기할 때는 제 몸을 오른쪽으로 약간 틀고, 안 후보가 말할 때는 왼쪽으로 약간 틀어요. 사회자가 이야기할 때는 정면을 바라보고 통역하죠. 청각 장애인들이 저만 봐도 지금 누가 말하고 있는지 알 수 있게 하려는 거죠."
―말이 빨라도 통역이 다 되나요?
"전부 가능합니다. 대신 받아들이는 사람이 쫓아오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죠. 일반인들도 말이 너무 빠르면 못 알아듣는 것과 같아요. 그리고 수어 어휘는 우리가 쓰는 어휘의 10분의 1 정도밖에 안 돼서 더 빨리 전달해야 해요. WHO를 알파벳으로 말해주면 어리둥절할 수 있으니 세계보건기구라고 바꾸는 식으로 복잡한 말은 풀어서 전달해야 하는 거죠."
―말이 겹치면 어떻게 합니까?
"토론을 주도하는 사람 말을 먼저 통역해요. 상대방은 발언권이 없는 타이밍에 말을 하는 거니까요. 후보들끼리 언쟁이 붙을 때에는 한 손으로는 질문자의 말을, 다른 손으로는 대답하는 사람의 말을 통역하는 경우도 있어요. '예, 아니요'나 '맞습니까?' 같은 간단한 말은 한 손으로도 통역할 수 있거든요."
"그때는 수어가 뭔지 모르는 사람들도 많았어요. 1989년 장애인복지법이 만들어지면서 처음으로 방송국에 수어를 도입했으니까 아직 대중에게 낯설 때였죠. 지금이랑 비슷하게 화면 한쪽 끝에 통역사를 배치했는데, TV 보는 데 거슬린다며 항의 전화가 많이 왔었어요. 지금은 수어가 뭔지 모르는 분들은 거의 없지요. 제가 처음 수어를 배운 것도 그때쯤이었어요."
―화학공학과를 졸업했는데 수어 통역을 하고 있네요?
"동네에서 함께 자란 소꿉친구 때문에 이 일을 하게 됐어요(웃음). 그 친구가 여자였는데 자기 남자 친구라며 청각 장애인을 데리고 나왔어요. 수어로 막 뚝딱거리더니 둘이 깔깔거리면서 웃는 거예요. 너무 황당하더라고요. 내 소꿉친구를 뺏긴 것 같아서 조금 질투를 했던 것도 같아요. 그때 처음 수어를 배우기 시작했어요. 집이 경기 파주였는데 서울 역삼동까지 수어를 배우러 다녔어요. 그 뒤로 2년 정도는 미친 듯이 배웠죠."
―그때쯤 처음 방송을 한 건가요?
"1992년 KBS에서 방영한 '사랑의 가족'이라는 장애인 프로그램에서 처음 수어 통역을 했어요. 당시엔 사회복지원에서 일하면서 일주일에 이틀 정도 아르바이트 식으로 왔다갔다했죠. 그 뒤에 방송이 많아지면서 15년 정도 일했던 복지원을 그만두고 방송에만 매진하게 됐어요. 작년 한 해 방송 출연 횟수만 1000번 정도 되는 것 같아요. 한때는 365일 내내 방송한 적도 있어요. 휴가는커녕 쉬는 날조차 없던 때였죠. 요즘은 후배들이 많이 생겨서 주말엔 대개 쉬어요."
문·안은 부드럽고 홍·유·심은 공격적
그가 화제가 된 건 지난 18대 대선 때부터다. 이정희 전 후보의 말이 너무 빨라 그의 손도 덩달아 빨리 움직여야 했기 때문이었다. 후보들의 말을 입으로 읊으면서 통역을 하다 보니 사회자가 "물 좀 드시고 하시죠"라고 권했고 "후보자보다 통역사가 물을 먼저 마시더라"는 말도 들었다. 올해는 대선 출마자가 많은 만큼 주요 정당 후보 다섯 명, 군소 후보 아홉 명의 말을 전달하느라 정신없다고 했다.
―통역을 하다 보면 후보마다 특징도 눈에 띌 것 같아요.
"홍준표·심상정·유승민 후보는 말투가 직설적이고 공격하는 내용이 많아요. 그러면 저도 강하게 딱딱 끊어서 전달해요.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는 강약이 별로 없고 부드럽게 이야기하는 편이에요. 공격을 받아도 두루뭉술 넘어가는데 그러면 제 손짓도 부드러워지고 동작도 수그러들어요."
―어떤 후보 의견이 가장 잘 전달되나요?
"홍준표 후보가 가장 전달이 잘 됩니다. 강하게 말할수록 수어 동작이 커지거든요. 수어로는 싸움을 전달할 때가 가장 전달력이 좋아요. 홍 후보는 토론 때 싸우는 것처럼 되묻거나 자기주장을 내세우는 편이죠. 그러면 전달하기도 편하고 보는 청각 장애인들도 명확하게 인지하고요."
―후보들 이름은 어떻게 표현하나요?
"문재인이라고 하려면 맨 처음에만 'ㅁㅜㄴㅈㅐㅇㅣㄴ'이라고 표현해주고 그 뒤로부터는 '문 후보'로 표현합니다. 평소에 우리가 이름을 전부 부르지는 않는 것과 똑같죠. 자모음을 조합하지 않더라도 웬만한 성씨는 수어로 다 표현이 됩니다. 김씨를 표현할 땐 양손 검지와 엄지로 동그라미를 만들어 돈을 표현해요. 그러면 쇠 금(金)자와 비슷해지죠."
―다섯 명이 말하는 걸 통역하려면 몸이 부족하겠어요.
"화면 왼쪽에 문재인, 오른쪽에 안철수 후보가 등장한 상태라면 문 후보가 이야기할 때는 제 몸을 오른쪽으로 약간 틀고, 안 후보가 말할 때는 왼쪽으로 약간 틀어요. 사회자가 이야기할 때는 정면을 바라보고 통역하죠. 청각 장애인들이 저만 봐도 지금 누가 말하고 있는지 알 수 있게 하려는 거죠."
―말이 빨라도 통역이 다 되나요?
"전부 가능합니다. 대신 받아들이는 사람이 쫓아오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죠. 일반인들도 말이 너무 빠르면 못 알아듣는 것과 같아요. 그리고 수어 어휘는 우리가 쓰는 어휘의 10분의 1 정도밖에 안 돼서 더 빨리 전달해야 해요. WHO를 알파벳으로 말해주면 어리둥절할 수 있으니 세계보건기구라고 바꾸는 식으로 복잡한 말은 풀어서 전달해야 하는 거죠."
―말이 겹치면 어떻게 합니까?
"토론을 주도하는 사람 말을 먼저 통역해요. 상대방은 발언권이 없는 타이밍에 말을 하는 거니까요. 후보들끼리 언쟁이 붙을 때에는 한 손으로는 질문자의 말을, 다른 손으로는 대답하는 사람의 말을 통역하는 경우도 있어요. '예, 아니요'나 '맞습니까?' 같은 간단한 말은 한 손으로도 통역할 수 있거든요."

넥타이 색깔 때문에 곤욕 치르기도
―개인적인 정치 성향에 따라 통역이 편중되는 건 아닌가요?
"저도 투표를 해야 하니까 선호하는 후보가 있지요. 그렇지만 편애해서 그 후보 의견만 전달한다면 통역사 그만둬야죠. 토론회의 경우 동시통역이기 때문에 그런 걸 계산할 시간조차 없어요. 한 후보의 의견만 더 잘 통역해주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해요."
―정치 토론 통역이어서 어려운 점도 있습니까.
"16대 대선 토론 통역 때였어요. 황금색 넥타이를 매고 인터뷰를 한 적이 있어요. 열린우리당 색깔이 노란색이었지만 황금색이라 괜찮을 줄 알았죠. 그런데 사진을 보니까 넥타이가 너무 노랗게 나온 거예요. 그때 혼쭐이 나고는 정당 색을 피해서 넥타이를 고르려고 하는데 이번 대선에는 후보가 15명이나 되다 보니까 어느 색을 골라도 피할 수가 없죠."
―오늘은 넥타이를 안 맸네요?
"세월호 사고 이후로 넥타이를 잘 안 매게 됐어요. 그날 사고가 나고 낮 뉴스에 앵커가 검은색 넥타이를 맸는데 피해자 가족들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았다더라고요. 아이들이 죽은 게 아니라 실종된 것뿐인데 왜 검은색을 맸느냐고요. 저도 마침 준비해 간 넥타이가 검은색이었어요. 여분으로 가지고 간 것은 심지어 빨간색이었고요. 그냥 넥타이 없이 통역을 했는데 청각 장애인들 반응이 오히려 더 좋더라고요. 더 깔끔해 보이고 수어를 알아듣기에 거슬리지 않는다고요. 그 뒤로부터는 차이나 칼라 셔츠를 입는다든지 웬만하면 넥타이를 안 하려고 합니다."
―양복도 줄곧 검은색을 입지요?
"찾아보니 집에 다른 색깔 양복도 있긴 하더라고요. 20년 전에 사놓고 그 뒤로 한 번 도 안 입은 거죠(웃음). 헤어 스타일도 거의 안 바꿔요. 반지와 시계, 매니큐어는 수어 통역에서 절대 금물이에요. 청각 장애인들이 볼 때 거슬리거든요. 결혼반지도 안 낀 지 10년 넘은 것 같아요. 통역할 때마다 주머니에 넣어놓다 보니 자꾸 잃어버리더라고요."
반지는 절대 금물
이야기를 하던 도중 그가 압박 붕대를 풀었다. 어깨와 목도 수시로 주물렀다.
―손목이 아픈가요?
"고질병이에요. 손목을 많이 쓰다 보니 터널증후군이 수시로 오는 건 물론이고 손가락 관절염도 생겼어요. 목 뒤부터 허리까지 디스크가 온 것도 당연하고요."
―손을 쓰는데 허리는 왜 아프죠?
"통역을 하려면 카메라 앞에서 허리를 꼿꼿이 펴고 있어야 해요. 허리 펴고 목 들고 정좌로 앉아야 하죠. 두 시간이 넘는 대선 토론회 같은 경우엔 두 시간 내내 그 자세로 움직이면 안 돼요. 하도 허리를 펴고 앉아 있으니까 제 키가 180㎝쯤 된다고 생각하는 시청자들도 있더라고요." 실제 그의 키는 166㎝다.
―두 시간 내내 앉아 있는 것도 힘들겠어요.
"후보가 5명이고 9명인 것보다 긴 시간 동안 앉아서 통역한다는 게 더 힘들어요. 끝나면 녹초가 되죠. 후보들 말이 겹칠 때 말고는 그렇게 곤란하지는 않아요. 시간이 문제이지요. 올림픽 개막식 때는 통역을 4시간 넘게 하기도 했어요. 그럴 때는 정말 교대해 줄 사람이 절실해요. 쉬는 시간이 없으니까요."
―중간에 말이 안 나올 때 잠깐씩 쉬면 안 되나요?
"일반인들과 달리 청각 장애인들은 TV를 볼 때 수어 통역사를 계속 쳐다봐야 해요. 제가 화면에서 사라지면 '말이 안 나오나 보다'라고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말이 중간에 끊겼다고 받아들이죠. 어떤 PD들은 말소리가 안 나오면 수어 통역사를 화면에서 빼고 말이 다시 나오면 넣고 해요. 그렇게 하면 안 돼요. 청각 장애인들은 언제 말이 나오는지 알 수 없으니까 통역사가 있던 빈자리만 빤히 쳐다보고 있거든요."
그는 두 손을 의식적으로 마주 잡고 있다가도 어느새 손을 움직였다. 말하면서 손을 움직이는 게 버릇이 됐다고 했다.
―직업병이군요.
"제가 자는 모습을 아내가 촬영한 적이 있어요. 촬영한다는 소리를 잠결에 듣고는 갑자기 수어를 하더래요. 녹화된 걸 보니 '아시아 인구가 얼마나 된다'는 식의 별것 아닌 내용이었어요. 꿈에서 일을 하고 있었나 봐요. 주변에서는 이 이야기를 듣고 막 놀려요. 잠꼬대도 수어로 한다고요."
그는 지난 3월 만들어진 한국수어통역사협회 초대 회장에 취임했다. 현재 자격증이 있는 수어 통역사는 1480여명, 활동하는 사람은 300명 안팎이다.
―25년차 베테랑이면 수입도 꽤 많을 것 같아요.
"대선 토론회 통역을 하면 주변에서 다들 물어봐요. 대통령 관련된 통역하니까 돈 많이 받겠다고요. 저는 방송국 직원이 아니라 프리랜서예요. 시급으로 돈을 받는데 그 시급 기준이 방청객, 엑스트라 연기자 수준이죠. 아무리 대기 시간이 길 고 연차가 쌓여도 20년 전에 비해 급여가 오르지를 않아요. 저야 오래 했으니까 괜찮지만 이렇게 되면 앞으로 통역사가 안 나올 거예요. 최근에 한국수어통역사협회를 만든 이유도 그런 것을 개선해 보려는 거예요. 협회 차원에서 통역사를 체계적으로 기르고 좀 더 나은 환경을 만들자는 취지죠. 그래야 청각 장애인들도 좀 더 정확한 정보를 접할 수 있지 않겠어요."
―개인적인 정치 성향에 따라 통역이 편중되는 건 아닌가요?
"저도 투표를 해야 하니까 선호하는 후보가 있지요. 그렇지만 편애해서 그 후보 의견만 전달한다면 통역사 그만둬야죠. 토론회의 경우 동시통역이기 때문에 그런 걸 계산할 시간조차 없어요. 한 후보의 의견만 더 잘 통역해주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해요."
―정치 토론 통역이어서 어려운 점도 있습니까.
"16대 대선 토론 통역 때였어요. 황금색 넥타이를 매고 인터뷰를 한 적이 있어요. 열린우리당 색깔이 노란색이었지만 황금색이라 괜찮을 줄 알았죠. 그런데 사진을 보니까 넥타이가 너무 노랗게 나온 거예요. 그때 혼쭐이 나고는 정당 색을 피해서 넥타이를 고르려고 하는데 이번 대선에는 후보가 15명이나 되다 보니까 어느 색을 골라도 피할 수가 없죠."
―오늘은 넥타이를 안 맸네요?
"세월호 사고 이후로 넥타이를 잘 안 매게 됐어요. 그날 사고가 나고 낮 뉴스에 앵커가 검은색 넥타이를 맸는데 피해자 가족들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았다더라고요. 아이들이 죽은 게 아니라 실종된 것뿐인데 왜 검은색을 맸느냐고요. 저도 마침 준비해 간 넥타이가 검은색이었어요. 여분으로 가지고 간 것은 심지어 빨간색이었고요. 그냥 넥타이 없이 통역을 했는데 청각 장애인들 반응이 오히려 더 좋더라고요. 더 깔끔해 보이고 수어를 알아듣기에 거슬리지 않는다고요. 그 뒤로부터는 차이나 칼라 셔츠를 입는다든지 웬만하면 넥타이를 안 하려고 합니다."
―양복도 줄곧 검은색을 입지요?
"찾아보니 집에 다른 색깔 양복도 있긴 하더라고요. 20년 전에 사놓고 그 뒤로 한 번 도 안 입은 거죠(웃음). 헤어 스타일도 거의 안 바꿔요. 반지와 시계, 매니큐어는 수어 통역에서 절대 금물이에요. 청각 장애인들이 볼 때 거슬리거든요. 결혼반지도 안 낀 지 10년 넘은 것 같아요. 통역할 때마다 주머니에 넣어놓다 보니 자꾸 잃어버리더라고요."
반지는 절대 금물
이야기를 하던 도중 그가 압박 붕대를 풀었다. 어깨와 목도 수시로 주물렀다.
―손목이 아픈가요?
"고질병이에요. 손목을 많이 쓰다 보니 터널증후군이 수시로 오는 건 물론이고 손가락 관절염도 생겼어요. 목 뒤부터 허리까지 디스크가 온 것도 당연하고요."
―손을 쓰는데 허리는 왜 아프죠?
"통역을 하려면 카메라 앞에서 허리를 꼿꼿이 펴고 있어야 해요. 허리 펴고 목 들고 정좌로 앉아야 하죠. 두 시간이 넘는 대선 토론회 같은 경우엔 두 시간 내내 그 자세로 움직이면 안 돼요. 하도 허리를 펴고 앉아 있으니까 제 키가 180㎝쯤 된다고 생각하는 시청자들도 있더라고요." 실제 그의 키는 166㎝다.
―두 시간 내내 앉아 있는 것도 힘들겠어요.
"후보가 5명이고 9명인 것보다 긴 시간 동안 앉아서 통역한다는 게 더 힘들어요. 끝나면 녹초가 되죠. 후보들 말이 겹칠 때 말고는 그렇게 곤란하지는 않아요. 시간이 문제이지요. 올림픽 개막식 때는 통역을 4시간 넘게 하기도 했어요. 그럴 때는 정말 교대해 줄 사람이 절실해요. 쉬는 시간이 없으니까요."
―중간에 말이 안 나올 때 잠깐씩 쉬면 안 되나요?
"일반인들과 달리 청각 장애인들은 TV를 볼 때 수어 통역사를 계속 쳐다봐야 해요. 제가 화면에서 사라지면 '말이 안 나오나 보다'라고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말이 중간에 끊겼다고 받아들이죠. 어떤 PD들은 말소리가 안 나오면 수어 통역사를 화면에서 빼고 말이 다시 나오면 넣고 해요. 그렇게 하면 안 돼요. 청각 장애인들은 언제 말이 나오는지 알 수 없으니까 통역사가 있던 빈자리만 빤히 쳐다보고 있거든요."
그는 두 손을 의식적으로 마주 잡고 있다가도 어느새 손을 움직였다. 말하면서 손을 움직이는 게 버릇이 됐다고 했다.
―직업병이군요.
"제가 자는 모습을 아내가 촬영한 적이 있어요. 촬영한다는 소리를 잠결에 듣고는 갑자기 수어를 하더래요. 녹화된 걸 보니 '아시아 인구가 얼마나 된다'는 식의 별것 아닌 내용이었어요. 꿈에서 일을 하고 있었나 봐요. 주변에서는 이 이야기를 듣고 막 놀려요. 잠꼬대도 수어로 한다고요."
그는 지난 3월 만들어진 한국수어통역사협회 초대 회장에 취임했다. 현재 자격증이 있는 수어 통역사는 1480여명, 활동하는 사람은 300명 안팎이다.
―25년차 베테랑이면 수입도 꽤 많을 것 같아요.
"대선 토론회 통역을 하면 주변에서 다들 물어봐요. 대통령 관련된 통역하니까 돈 많이 받겠다고요. 저는 방송국 직원이 아니라 프리랜서예요. 시급으로 돈을 받는데 그 시급 기준이 방청객, 엑스트라 연기자 수준이죠. 아무리 대기 시간이 길 고 연차가 쌓여도 20년 전에 비해 급여가 오르지를 않아요. 저야 오래 했으니까 괜찮지만 이렇게 되면 앞으로 통역사가 안 나올 거예요. 최근에 한국수어통역사협회를 만든 이유도 그런 것을 개선해 보려는 거예요. 협회 차원에서 통역사를 체계적으로 기르고 좀 더 나은 환경을 만들자는 취지죠. 그래야 청각 장애인들도 좀 더 정확한 정보를 접할 수 있지 않겠어요."
일과 사람(다름의 미학)
게시일: 2013. 12. 29.
다름의 미학
조성현 수화 통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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