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람 이야기

이호철(54) 무예 연구가 - 2017.10.26.중앙

하늘나라 -2- 2017. 10. 26. 19:03




합기도는 발차기 같은 타격술 갖춰 …                  일본 아이키도와 다른 한국 무예죠

이호철씨가 서울 방이동 대한합기도경무관에서 ‘주먹 날치기’ 자세를 취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이호철씨가 서울 방이동 대한합기도경무관에서 ‘주먹 날치기’ 자세를 취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합기도는 한국에서 가장 대중적인 무술 중 하나지만 종종 논란에 휩싸인다. 일본 무술 아이키도(合氣道)와 한자명이 같은 데다, 합기도를 창시한 최용술(1899~1986) 사범이 일본 무술인 대동류유술(大東流柔術)의 대가 다케다 소가쿠(武田惣角·1859~1943)의 제자였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합기도가 일본의 것이란 인식이 퍼졌다.
 


아시아 무예 연구가 이호철씨


합기도, 아이키도와 한자명 같고
창시자가 일본인 제자라 적통 논란
UFC 등 승패 겨루는 격투기 유행
무도를 저급한 문화로 잘못 인식



합기도를 비롯해 아시아 무예를 연구하는 무예 연구가 이호철(54)씨는 “합기도에 쏟아지는 냉소적인 비난이 안타깝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평생 합기도를 수련하며 관련 연구 활동도 병행해온 자타 공인 ‘합기도 박사’다. 실제로 이씨는 고려대에서 교육학을 전공한 뒤 호주 그리피스대에서 스포츠경영학 석사 학위를, 경남대에서 스포츠교육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중학생 때 합기도에 입문해 대학 시절부터 본격적인 수련을 시작했다. 검도 등 다른 무술도 섭렵했는데, 모두 합한 단수가 12단이다.
 
그는 지난달 22일 그동안의 연구를 바탕으로 책 『합기도는 왜 한국무예인가?』(북랩)를 펴냈다. “평가 절하된 합기도의 공헌과 잠재성을 알려 올바른 평가를 받도록 하고 싶다”는 그를 20일에 만났다.
 
합기도의 정체성 논란에 대해 얘기하자 그는 동남아시아 무술 이야기를 꺼냈다.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에는 ‘실랏’이라고 이름이 같은 무술이 있어요. 두 나라 모두 국기(國技)로 여기는 전통 무예입니다. 그런데 두 나라 중 어느 곳도 정체성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지 않아요. 실제 두 나라의 실랏은 조금 다릅니다.” 같은 한자명을 가진 합기도와 아이키도 역시 한·일 양국 문화에 영향을 받아 독자적인 근대 무예로 변화·발전했다는 얘기다.
 
최용술 사범은 우에시바 모리헤이(植芝盛平·1883~1969)와 함께 다케다 소가쿠 아래에서 대동류유술을 배웠다. 이후 그는 한국에서 합기도를, 우에시바는 일본에서 아이키도를 창시했다. 해방 이후 귀국한 최 사범은 1951년 대구에 도장을 마련한 뒤 본격적으로 합기도를 전파하기 시작했다. 합기도는 아이키도와 달리 발차기 등의 타격술을 갖고 있다. 산이 많은 지형 때문에 골반이 발달해 발 쓰는 걸 좋아하는 한국의 문화가 반영됐다. 이씨는 “학계에선 대동류유술이 삼국시대 무예가 일본에 전이돼 오랜 세월 실전 무술 형태로 발전한 무술이라는 견해도 있다”며 “정체성 논란 자체가 무의미한 논쟁이다”라고 주장했다.  
     
이씨는 합기도에 대한 논란보다 “무도를 대하는 무도인들의 자세가 문제”라고 꼬집었다. 자신이 하는 운동을 깊이 공부하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그는 “무술의 종목은 19세기 후반부터 갈라졌다. 이전에는 한·중·일 모두 상박(相撲)이나 수박(手搏)이라는 용어로 모든 무술을 통칭했다. 이런 배경을 모르는 사람들이 합기도의 정체성에 집착한다”고 말했다. 이씨는 최근 유행하는 UFC 등 격투기 스포츠에 대해서도 일침을 놨다. “단순히 이기고 지는 싸움과 기술에 집중하다보면 무술이 저급한 신체 문화로 남을 수밖에 없다”는 비판이다.
 
“흔히 UFC 챔피언을 존경한다고 하진 않잖아요. 반면 무도인은 존경의 대상이 됩니다. 운동을 잘해서, 실력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무도에는 가치가 배어있기 때문이에요. 기술만 중시해 승패를 가리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건 편협한 ‘무협지 무예사관’입니다. 운동하는 사람은 무식하다는 잘못된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까닭이기도 해요. 무도가 역사성과 가치를 인정 받아 고급 문화로 발전하기 위해선 무도인 스스로 깊이 공부하고 연구해야 합니다. 이번 책을 쓰게 된 가장 큰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준호 기자 ha.junho1@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