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람 이야기

김흥국(58) 5대 가수협회장 - 2016.6.25. 조선 外

하늘나라 -2- 2016. 7. 1. 21:56


세상아, 비웃어라 나는 들이대겠다



[송혜진 기자의 느낌] 제2 전성기 맞은 '예능 흥행보증 수표' 김흥국

김흥국은 뜻밖에도 포토제닉한 사람이었다. 셔터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표정과 동작을 자유자재로 바꿀 줄 알았다. 대한가수협회 사무실 한편에 지게가 있었다. 김흥국은 “가수들을 위한 일꾼이 되겠다는 뜻으로 가져다 놓은 것”이라고 했다. 그는 지게를 걸치고 다양하게 표정을 변주해보였다.
김흥국은 뜻밖에도 포토제닉한 사람이었다. 셔터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표정과 동작을 자유자재로 바꿀 줄 알았다. 대한가수협회 사무실 한편에 지게가 있었다. 김흥국은 “가수들을 위한 일꾼이 되겠다는 뜻으로 가져다 놓은 것”이라고 했다. 그는 지게를 걸치고 다양하게 표정을 변주해보였다.


'그럼 다음 주 수요일 11시에 들이대시죠.'

인터뷰 요청을 했더니 김흥국(58)은 이런 문자메시지를 보내왔다. 뜬금없고, 두서없고, 맥락 없기에는 그를 따라올 사람이 없다. 김흥국은 데뷔 이후 30여년을 무작정 '들이대며' 살아왔다. 무대에서 들이댔고(노래하고 춤췄다), 축구장에서 들이댔고(공차고 응원했다), 술자리에서 들이댔고(많이 마셨다), 선거판에도 들이댔다(정치인을 꿈꿨다). 그러고서는 한동안 잠잠했나 싶더니 이젠 아예 '끓는 점'을 뛰어넘어 버렸다.

김흥국은 60세를 목전에 둔 요즘 제2의 전성기를 산다. 어딜 나와도 웃음을 터뜨리고 시청률 끌어올리는 보증수표로 등극했다. TV 광고를 찍고, 잘 나가는 가수들과 노래를 발표하고, 인기 프로그램들에 얼굴을 내밀고, 영화에 카메오 출연을 하고, 인기 뮤지컬에도 등장했다. SBS 라디오 '김흥국 봉만대의 털어야 산다'도 진행한다. 요즘 방송가에선 "김흥국 없이는 아무것도 안 된다"는 말까지 나왔다.10~20대 시청자가 새로 붙여준 별명도 그래서 '흥궈신('흥국+신〈神〉'을 중국어처럼 발음한 것)' '예능 치트키(인터넷 게임에서 쓰는 속임수 프로그램처럼 김흥국만 나오면 예능이 풀린다는 뜻)'다.

15일 서울 신촌 기차역 근처 대한가수협회 사무실에서 김흥국을 만났다. 그는 현재 5대 가수협회장이기도 하다. 김흥국은 선글라스를 낀 채로 문 앞에 서 있었다. "으아, 아침부터 들이대니까 좋네요"라며 인사말을 건네더니 칵칵칵칵 소리를 내며 웃었다. 왠지 그를 따라 일단 칵칵 웃고 인터뷰를 시작해야 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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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궈신, 방송판을 흔들다

김흥국은 녹차를 우려낸 얼음물이 가득 담긴 커다란 투명 플라스틱 컵을 들고 의자에 앉았다. 선글라스는 벗지 않았다. "어젯밤 촬영 끝나고 늦게까지 들이댔더니 눈이 부어서 이건 못 벗는다"고 했다.

―30년간 방송을 했는데도 이렇게 갑자기 뜰 수가 있네요.

"으아, 작년에 만난 점쟁이가 나한테 '올해 대운이 들었다'고 그랬거든요. '내 나이가 몇인데 대운이 또 오나' 그러고 넘어갔는데 진짜 이렇게 터지네. 이건 거의 '호랑나비'나 '아, 응애예요' 시절 수준인 거예요.(칵칵칵) 여기저기 나와 달라고 난리가 났어요. 밤이고 새벽이고 암때나 시간 나면 좀 촬영하자고 그러고. 난 촬영 오래 못하거든요, 힘들어서. 오래 앉아 있으면 당 떨어지고 허리 아파서 입을 못 털어요. 연예인 중에선 내가 유일하게 '퇴근 면허'가 있어요. 찍다가 집에 가도 나를 못 말려. 어쩔거야, 힘들다는데? 근데도 엊그저께 '런닝맨' 찍었지, '쇼미더머니'에 나갔지, 파이브('바이브'를 잘못 말한 듯)라는 가수랑 이번에 '원샷'이란 제목으로 노래 냈지…. 아이돌 그룹 누구지? 암튼 걔네 뮤직비디오 나가줬지. 바빠요. 바빠서 즐겁긴 하죠.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만들며) 이게 들어오니까.(칵칵칵)"

김흥국이 말하는 '난리'는 그러니까 올봄 시작됐다. 작년 말 종영한 한 프로그램에서 김흥국은 개그맨 조세호를 향해 밑도 끝도 없이 이렇게 물었다. "너 근데 왜 안재욱 결혼식에 안 왔어?" 조세호는 "(안재욱을) 모르는데 어떻게 가요?"라고 대답했다. 인터넷에서 이 장면을 놓고 패러디를 만들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조세호를 '프로 불참러(아무 데도 안 오는 사람이라는 뜻)'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김흥국은 "정신 차려 보니 예능 치트키가 돼 있었다"고 했다.

―왜 그런 뜬금없는 말을 하는 거죠.

"대본을 잘 안 봐요. '호랑나비' 빼면 내 노래 가사도 못 외우는데 대본은 봐서 뭐해요.(칵칵칵) 어차피 날 부르는 작가나 PD도 내가 대본대로 말할 거라고 기대하지도 않아요. 예상치 않은 소리를 하기를 바라고 부르는 거지. 대본을 안 보니까 출연자들 얘기를 듣다가 궁금하면 아무 때나 물어보는 거예요. 궁금한 건 또 못 참거든. 근데 또 사람들은 그걸 그렇게 좋아하대요?"

김흥국은 최근 한 방송에서 개그맨 양세형의 말을 불쑥 끊으며 "너 근데 목소리가 원래 그랬냐?"라고 물어봐 출연자들을 당황케 했고, 또 다른 방송에선 배우 김고은에게 출연자들이 "참 맑고 예쁘다"고 하니 "하루에 몇 번 씻어요?"라고 묻기도 했다. 김흥국은 "진짜로 궁금했다니까"라고 했다.

―고유명사는 정말 몰라서 틀리는 건가요.

"생각이 바로바로 안 나니까요. 나이 먹으면 그런 게 있어요. 이승만인지 이승복인지, 문익점인지 문익환인지 '철없는 아내'인지 '털 없는 아내'인지 바로바로 안 와요. 진짜 모르는 건 아닌데, 그냥 헛소리가 자주 나와요.(칵칵칵) 연예인 이름도 잘 몰라요. 아무리 가수협회장이라지만 가수 이름이 거미에다 비에다 엑소까지 나오는데 그걸 어떻게 다 알겠냐고요."

"알면서 모른 척할 때도 있느냐"고 하자 그는 "글쎄, 그럴 수도 있겠죠?" 하더니 "햐아아아핫"하며 배를 잡고 웃었다. "나 같은 사람까지 묻는 족족 다 알면 재미가 없잖아요. 김구라처럼 잘난 척하는 놈이 있으면, 나처럼 뭘 물어도 모르는 놈도 있어야지, 안 그래요? 방송이라는 게 원래 돈 없는 사람, 못 배운 사람, 인생살이 힘든 사람도 위로해줘야 되는 거 아니에요? '내가 김흥국보단 덜 무식할 것 같다' '내가 김흥국보단 유복하게 자랐을 것 같다' 뭐 이런 안도감을 주면 그 나름대로 좋은 거예요. 어차피 일등은 자꾸 보면 질려서 방송에 오래 못 나와요. 꼴찌는 맨날맨날 나와도 재밌는 거죠."


"올 '호랑나비' 수준 大運 든다더니… 손발 모자랄 지경"



―초등학생들도 ‘김흥국은 무식하다’고 생각한다던데요.

“(칵칵칵칵)난 그럴 때 오히려 회심의 미소를 짓죠. 물론 우리 아들 딸내미가 ‘아빠가 TV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으로 그만 나왔으면 좋겠어’라고 할 땐, 미안하지만 그래요. ‘얘들아, 무식이 매력인 사람이 대한민국에 몇이나 되겠니, 응?’ 무엇보다 사람들이 이젠 ‘김흥국은 배운 게 없고 가진 게 없어도 항상 잘 되는 사람’ ‘어디서 어떻게 나와도 잘 풀리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주잖아요? 그래서 날 보면 기분이 좋다고들 한단 말이에요. 이보다 대단한 복이 어디 있겠습니까. 안 그렇습니까?(칵칵칵)”

케이블 채널 엠넷의 ‘쇼미더 머니’를 촬영할 때의 김흥국(가운데) 모습. 요즘엔 그가 안 나오는 프로그램을 찾기 쉽지 않다.
케이블 채널 엠넷의 ‘쇼미더 머니’를 촬영할 때의 김흥국(가운데) 모습. 요즘엔 그가 안 나오는 프로그램을 찾기 쉽지 않다. /김흥국 제공

뭘 해도 되는 내 인생

김흥국은 1959년 서울 번동에서 육남매의 막내로 태어났다. 농사짓던 아버지는 그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세상을 떠났다. 축구부가 있는 초등학교로 굳이 전학을 가서 선수로 뛸 만큼 축구를 좋아했지만, 축구부 한 달 회비 6000원이 부담돼 제때 내지 못할 만큼 가난했다. 서라벌중·서라벌고로 진학했을 땐 축구 대신 밴드부에 들면서 음악으로 인생의 방향을 바꿨다고 했다. 김흥국은 “그래도 돌아가신 어머니가 평생 ‘넌 뭐가 돼도 될 놈’이라고 말씀하시곤 하셨다”고 했다.

―가난에 지치지 않았다는 얘기인가요.

“어머니가 워낙 낙천적이었어요. ‘돈 없으면 한 끼 굶으면 되고 버스비 없으면 걸어가면 되지, 뭐하러 남에게 손을 빌리고 사느냐. 한번 태어난 인생 배짱 있게 살아라’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거든요. 그래서 나도 돈 없어도 아쉬운 소리 안 해보고 살았어요. 인생 한 방인데요.(칵칵칵)”

고교를 졸업하고 그는 해병대에 입대했다. 당시 육군·공군보다 복무 기간이 짧은 데다가 멋있어 보여서 들어갔다고 했다.

―해병대가 잘 맞던가요.

“두 번 다시 갈 데는 아니에요.(푸하하핫) 죽는 줄 알았어요. 맨날 맞았으니까. 내가 그때부터 콧수염을 길렀거든요. 우리 아버지가 살아생전 그렇게 콧수염을 기르셨어요. 그래서 나도 따라 길렀는데, 해병대 들어가니 깎아야 된다는 거야. 울며 겨자 먹기로 머리랑 수염이랑 다 깎고 들어갔는데, 으아, 이건 흥국사 주지 스님이 따로 없는 거예요.(칵칵칵)”

해병대를 제대하고 김흥국은 부대 동료들과 함께 ‘5대 장성들’이라는 그룹사운드를 결성했다. 1985년엔 ‘창백한 꽃잎’이라는 노래로 솔로 데뷔했다. 그런데 정작 대중의 관심을 모은 건 1988년 MBC 다큐멘터리 ‘인간시대’ 주인공으로 나가면서였다고 했다.

선배 딸이 많이 아팠어요. 이름이 정아였는데, 제가 돈도 없고 해줄 것도 없으니 그냥 정아를 위해서 매일 병실 가서 노래를 불렀죠. 그게 방송을 타면서 화제가 됐죠.”

그 후 김흥국은 듀오 '배따라기' 리더였던 이혜민에게 '호랑나비'를 받아 1989년 발했다. 노래는 나오자마자 사건이 됐다. 그해 10월 KBS 가요 톱텐에서 1위를 했고 MBC 10대 가수상도 받았다.

―‘호랑나비’는 왜 그렇게 인기였을까요..

그게 기가 막힌 거예요. 노래가 쉽고 흥이 넘치고 춤이 아찔했고 게다가 시대랑 잘 맞아떨어졌어요. 역사가 된 거죠.”

―시대랑 잘 맞았다?

“조용필 형님이 날 보고 그러시더라고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다 못 살고 한이 많아서 노래도 다 슬펐다’고. 그런데 사람들이 좀 살 만해지고 여유가 생길 무렵에 내 노래가 나왔다는 거죠. 그냥 웃고 즐길 수 있는 노래가 마침 필요했는데, 운 좋게 ‘호랑나비’로 내가 딱 들이댄 거예요.”

김흥국은 이후 미스코리아 출신으로 모델 활동을 하던 아내 윤태영(53)을 만나 결혼해 아들 동현(26) 딸 주현(16)을 낳았다. 그는 첫아들 동현을 낳고 방송에서 “번동 출신 김흥국과 칠곡 출신 윤태영이 낳은 아이니 ‘번칠’이라고 부르겠다”고 했다. 당시 MBC TV ‘일요일 일요일 밤에’에 함께 출연했던 주병진이 “아이가 뭐라고 하면서 나왔나요?”라고 묻자 김흥국이 “아! 응애예요!”라고 대답한 얘기는 유명하다.

―밑도 끝도 없는 대답이었군요.

“‘일요일 일요일 밤에’를 연출했던 송창의 PD가 날 불러다 놓고 한 말이 있었어요. ‘당신은 원래 즉흥적으로 움직이는 사람이니까 계속 그렇게 해라. 방송을 방송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여기가 집이고, 밥집이고, 술집이라 생각하고 그냥 내키는 대로 말하고 움직여라.’ 난 그때 그대로 했던 거예요.(칵칵칵)”

“짧고 굵게”…크게 써야 크게 번다

김흥국 어록
김흥국이 늘 좋은 소리만 들었던 건 아니다. 그는 1997년 음주 뺑소니 사고로 구속됐고 2013년에도 음주 운전으로 면허정지 처분을 받았다. 2011년 재·보궐선거 때 정몽준 당시 한나라당 의원 지원 활동을 하다가 진행하던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하차하게 된 적도 있다. 김흥국은 “완벽한 사람이 어딨냐. 잘못했으면 우기지 말고 빨리빨리 사과해야 된다”고 했다.

―정치엔 더는 미련이 없습니까.

으아, 그건 잘 모르겠어요. 당장 나가겠다고 말할 순 없지만 그건 뭐랄까, 남자로서의 마지막 꿈 같은 거니까요.(칵칵칵)”

김흥국은 2000년 김흥국 장학재단을 설립했다. 매년 전국 초등학생 중에서 학교장 추천을 받은 저소득층 학생 10~20명씩을 선발해 50만원씩 장학금을 주고 있다. 김흥국은 “그 일에 같이 써 달라고 몇천만원씩 기부하겠다는 사람들이 꽤 있었는데 다 안 받았다. 이건 그냥 내가 내 돈으로 줄 수 있는 만큼 지원해주는 것”이라고 했다.

―재단에 돈이 더 많으면 좋은 일을 더 오래할 수 있잖아요.

“으아, 그런 건 필요 없어요. 남의 돈 굴려서 도와주는 건 난 못해요. 그냥 내가 번 돈에서 알아서 주는 게 좋아요. 주변에선 ‘장학금 준 학생들 10년, 20년 후에 어떻게 컸는지 연락해서 만나 보라’고 하던데 난 (장학금 준 학생들을) 한 번도 안 만났어요. 주면 끝이지 뭐하러 만납니까.”

―장학재단을 운영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내가 불교 신자거든요. 무상보수(무상보시〈無相布施〉를 잘못 말한 듯), 보답 안 바라고 그냥 조건 없이 주는 게 또 다른 복을 쌓는 길이라고 우리 어머니가 살아생전 늘 그러셨단 말이죠. 살아보니 그래요. 크게 쓰면 나중에 또 크게 들어와요.”

―가수협회장은 왜 그렇게 하고 싶어했습니까.

“내가 무명을 오래 겪었지 않습니까. 건강 검진할 돈도 없어서 고생하는 가수들이 많거든요. 내가 그래서 건강 검진 혜택 같은 복지도 늘리고, 이익 단체처럼 출연료도 더 달라고 방송국과 얘기하고 그러려는 거죠. 소원이 있다면 가수회관 하나 짓는 거예요. 원로 가수 선배들 어디 갈 데가 없거든요. 그분들 쉴 곳 하나 만들어 드리고 싶죠. 딴 얘기는 안 써도 이런 얘기는 써주세요.(칵칵칵)”

―이 인기가 얼마나 갈까요.

김흥국은 둥그렇게 나온 배를 문지르며 잠시 생각하다가 다시 ‘파하하하’하고 웃었다. “나야 모르죠. 오래오래 들이대게 될 수도 있고, 좀 들이대다 접을 수도 있고. 근데 인생은 어차피 일체유심제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를 잘못 말한 듯) 아닙니까. 잘 되는 것도, 못 되는 것도 다 맘먹기 나름이라고요. 물 들어올 때는 노 열심히 젓고, 물 빠지면 열심히 걷고 그러는 거죠. 물 빠진다고 허우적거릴 필요는 없어요. 해병대 정신으로 짧고 굵게. 그거면 으아, 다 되는 거예요.”

으아, 그렇네요”라고 대답하고 싶었다. 김흥국에게 그새 길들여져버린 것이다.




김흥국(51) 가수 '호랑나비' - 2010.7.14. 일스 外  http://blog.daum.net/chang4624/2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