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람 이야기

강동근(66) 방송대와 나홀로 소송 - 2016.6.25.조선

하늘나라 -2- 2016. 7. 1. 22:13



3700명이 포기한 싸움, 나 혼자 간다



방송대와 나홀로 소송 강동근 씨

5년째 이어진 소송전
기성회비 반환소송 때 학생 수천명의 소송 대표, 패소한 뒤 나 홀로 소송중
1979년엔 일찍 출발한 고속버스 상대로 첫 소송… 승소해 2260원 돌려받아


21일 서울 구로동에서 만난 강동근(66)씨는 양복 차림에 배낭을 메고 있었다. 악수를 나누자마자 배낭에서 두툼한 봉투를 꺼냈다. 봉투에서 꺼낸 A4 용지 200여장은 법원 판결문과 그 판결문에 불복하는 항소·상고 이유서, 검찰의 불기소 처분을 반박하는 항고장 등이었다. 한국방송통신대에 재학 중인 강씨는 2012년부터 5년째 방송대와 줄기차게 소송전을 벌이고 있다. 기성회비 반환 소송에서 최종 패소하자 기성회 임원 자격을 문제 삼는 소송을 걸었고 방송대 전 총장을 고소하기도 했다. 한때 수천명 동료 학생들의 소송 대표였던 그는 다른 이들이 포기한 뒤에도 굴하지 않고 '나 홀로 소송'을 벌이고 있다.

2012년 1월 서울대 등 8개 국·공립대 학생 4200여명은 "부당하게 강제 징수한 기성회비를 돌려달라"며 각 대학을 상대로 낸 반환소송(이하 1차 반환소송)에서 1심 승소했다. 재판부는 대학들에 학생 1인당 10만원씩 반환하라고 선고했다. 당시 방송대 환경보건학과에 재학 중이었던 강씨는 이 소식을 듣고 그해 3월 방송대를 상대로 같은 소송을 걸었다. 방송대가 매 학기 30여만원씩 걷었던 기성회비를 전액 반환하라는 취지였다.

기성회는 1963년 문교부 훈령을 근거로 중·고교와 대학교에 만들어진 학교 후원 단체다. 재학생의 학부모가 주된 회원이다. 기성회비는 이 단체의 회비이고 학생들이 내는 수업료에 더해 학교 재원을 충당하는 데 쓰여 왔다. 자율적 납부가 원칙이지만, 그간 등록금처럼 반드시 내야 하는 돈으로 굳어져 왔다.

강씨를 비롯한 방송대 학생 10명은 이듬해 8월 1심에서 1600여만원 전액에 대해 승소했다. 그는 이에 대해 "당연한 결과"라며 "재학생 상당수가 30대 이상인 방송대에서 학부모회 성격의 기성회가 운영된다는 건 난센스"라고 말했다. 학교 측은 항소했지만, 소송에 참여하는 학생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 작년 초엔 3700여명의 방송대 학생이 총 63억여원의 기성회비 반환을 요구했다. 강씨는 이들을 대변하는 '방송대 기성회비 반환소송 추진위원회'대표였다.

전국 20여개 국·공립 대학교에서 돌풍처럼 불던 기성회비 반환소송전은 작년 6월 25일 이후 갑자기 잠잠해졌다. 이날 대법원이 2심까지 이기고 처음으로 3심에 올라온 1차 반환소송 학생들에게 패소 판결을 했기 때문이다. 이후 관련 소송에서 학생들은 줄줄이 패소했다. 대법원은 기성회비가 고등교육법상 대학 경영자가 징수할 수 있는 '그 밖의 납부금'에 해당한다고 보아 학교가 위법하게 걷은 게 아니라고 판단했다. 또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기성회비를 내왔으므로 학생 자신이 이미 기성회에 가입한 것으로 봤다. 정상적인 회비 납부라는 얘기다. 강씨는 이에 대해 "등록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기성회비를) 내온 걸 대법원이 자발적인 의사로 해석하는 데서 힘이 쭉 빠졌다"고 말했다.

강동근씨는 ‘사단(社團)’ ‘승계(承繼)’ ‘취득(取得)’ ‘영조물(營造物)’ 등 법률 용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했다. “소송 중에 터득한 것이냐”고 묻자 “한때 법조인의 꿈을 꾼 적도 있었다”고 말했다.
강동근씨는 ‘사단(社團)’ ‘승계(承繼)’ ‘취득(取得)’ ‘영조물(營造物)’ 등 법률 용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했다. “소송 중에 터득한 것이냐”고 묻자 “한때 법조인의 꿈을 꾼 적도 있었다”고 말했다. / 성형주 기자


많은 학생들이 법정에서 발길을 돌릴 때 강씨는 "혼자라도 싸운다"고 결심했다. 3심에서 패소한 뒤 두 달 만에 변호사도 없이 '방송대 기성회 임원자격정지 가처분'을 법원에 신청했다. "학생이 기성회 회원이라는 대법원 논리에 따르면 임원을 뽑을 때 저를 포함한 학생에게 총회 소집 통보가 왔어야죠. 그런데 그런 적이 없으므로 부적법한 총회를 통해 선출된 임원은 자격이 없다고 봅니다." 그러나 법원은 강씨가 기성회 회원이 아니어서 당사자가 될 수 없다는 이유로 지난 1일 각하 결정을 내렸다. 강씨는 "학생을 자발적 기성회원으로 본 대법원 판결과 모순된다"며 이에 대해 항소한 상태다.

강씨는 재작년 방송대와의 민사소송 와중에 조남철(64) 전 방송대 총장을 형사 고소하기도 했다. 2013년 감사원 감사 결과 총장이 기성회비 41억원을 불법 전용한 것으로 드러났는데, 그는 이것이 업무상 배임죄에 해당한다고 보고 서울 혜화경찰서에 고소장을 제출한 것이다. 고등검찰청에 항고까지 해 작년 8월 기어이 기소 결정을 받아냈다. 조 전 총장은 현재 재판을 받고 있다.

방송대 관계자는 "작년 6월 (대법원) 판결로 기성회비는 적법한 것으로 결론이 났고, 조 전 총장 재판은 개인의 배임 혐의에 관한 것으로 학교와 직접 관련이 없다"고 말했다.

이번이 강씨의 첫 소송은 아니다. 그는 29세 때인 지난 1979년 고속버스 회사를 상대로 '버스비 환불 소송'을 걸었다. 서울에서 고향인 대구에 가려고 버스표를 샀는데 버스가 출발 예정 시각 전에 떠나버려 표를 다시 사야만 했다는 것이다. 당시 제대로 된 환불 규정이 없어 일어난 일이었다. 이 소송은 1979년 9월 22일자 조선일보에 보도됐었다. 이 소송에서 이겨 버스표 값 2260원을 돌려받은 강씨는 적절한 환불 약관 규정을 만들라며 교통부 장관을 상대로 소를 제기했다. 1980년 4월 5일자 동아일보는 강씨를 "무관(無冠)의 변호사"로 소개하며 "강씨의 끈질긴 도전에 교통부는 지난 1월 회사 측의 과실이 있을 경우 전액을 환불하도록 운송업자에게 권유했다"고 보도했다. 경북대 교직원 출 신인 그는 현재 울산에 있는 한 무역회사 고문으로 재직 중이다.

그의 명함에는 '120국제클럽 회장 강동근'이라고 적혀 있다. 그는 "평균수명 120세 시대를 대비하고자 하는 민간단체"라고 말했다. "좀 막연하게 들린다"고 하니 그는 빙그레 웃었다. "버스 환불 약관이나 기성회비 반환 모두 처음엔 비슷하게 들렸겠죠. 공익 활동이라는 게 원래 외로운 겁니다."